[박명윤의 웰빙 100세] 장수만세의 조건···슬로푸드, 친환경유기농, 로컬푸드
현대사회는 먹거리가 풍요로워 보이지만, 글로벌화된 푸드시스템 속에서 취약계층은 오히려 건강한 먹거리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세종대왕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고 식(食)은 백성의 하늘이므로, 국가는 농업과 식량에 전심전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식량(食糧)의 식(食)은 사람 인(人)과 좋을 량(良)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좋은 사람(良人)이 되려면 매일 일정한 양의 음식(糧)을 먹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지난 10월초 남양주에서 열린 ‘아시오 구스토’의 아시오(AsiO)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Oceania)’가 합쳐진 합성어이며, 구스토(Gusto)는 이태리어로 ‘맛’을 의미한다. 남양주 ‘아시오 구스토’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리는 ‘살로네 델 구스토(Salone del Gusto)’와 유럽 대회인 프랑스 투르의 ‘유로 구스토(Euro Gusto)’와 더불어 세계 3대 슬로푸드대회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서 처음 열린 슬로푸드 국제대회는 슬로푸드문화원, 슬로푸드국제본부, 남양주시가 주최하였다. 산업형 농업의 확산과 세계 식량체계의 지배로 인해 세계 농업과 음식의 보고(寶庫)인 아시아ㆍ오세아니아에서 농업과 음식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농업과 음식의 지속가능성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대회조직위원회는 ‘음식과 정의, 평화’, ‘음식과 영성 그리고 깨달음’ 등 11개 주제로 먹거리에 대한 학술적인 내용과 체험을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맛 workshop’을 통해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외에도 가족밥상의 날, 농부장터, 슬로푸드 요리경연대회, 지역 먹거리 부스, 슬로 청춘들의 요리가무, 아시오 슬로뮤직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관람객들에게 선보였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의 브라(Bra)라는 마을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패스트푸드 기업인 맥도날드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려 하자 카를로 페트리니와 그의 동료들은 그들의 전통음식을 밀어내고 맛의 획일화를 강요하는 자본에 저항하는 작은 외침을 시작했다. 현재 세계 150여 개국에서 동참하는 거대한 물결이 되었다.
이는 자본을 앞세운 글로벌 식품기업에 의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단절돼가는 사이에 지구촌에서 전통 먹거리들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슬로푸드(slow food)는 즉석 식품인 패스트푸드(fast food)에 반대하기 위한 일종의 반어법적인 표현으로 식탁에서부터 시작되는 서두르지 않는 라이프스타일(life style)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음식을 매개로 한 지속가능한 삶의 질 개선과 지역사회 경제활성화를 위한 운동이다. 유전자 조작ㆍ조미료ㆍ첨가물 등을 사용한 대량생산이 아닌 전통방식의 다양한 먹을거리 운동이며, 소규모 공동체의 네트워크 활성화와 가족농(家族農) 중심의 전통식문화 복원과 더불어 지속되도록 한다. 또한 지역 농수축산물의 근거리 가공ㆍ유통ㆍ판매를 원칙으로 하여 로컬푸드(local food)를 실현하며, 먹을 권리(The Right to Food)를 구현한다.
슬로푸드 운동의 강점은 자연환경, 역사, 문화, 전통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키며, 지역 고유의 우수 농수축산물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다. 또한 농특산 자원개발을 통한 지역 경쟁력을 제고하며, 지역경제와 연계한 쾌적한 삶과 먹거리를 지향하여 관광 및 농식품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다.
남양주 슬로푸드국제대회는 다른 음식 축제와 달리 슬로푸드 철학을 다뤄 몸에 좋고 자연과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생산자가 공정하게 보상 받는 음식의 중요성을 관람객들에게 인식시켰다. 특히 슬로푸드국제본부의 핵심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Ark of Taste)’를 대대적으로 소개하여 소멸 음식과 종자의 보존 필요성의 공감대를 만들었다.
국제본부는 76개국의 사라질 위기에 있는 음식과 종자 1179가지를 ‘맛의 방주’에 등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푸른콩 된장’과 ‘흑우’, 경남 진주 ‘앉은뱅이밀’, 충남 논산 ‘연산오계’, 충남 태안 ‘자염’, 경북 울릉도 ‘칡소’와 ‘섬말나리’, 전남 장흥 ‘돈차’ 등 8종이 포함됐다.
제주도 지역 속명이 ‘푸린독새기콩’인 ‘푸른콩’은 제주도 토종 대두(大豆)이다. 급격한 식문화 변화로 인하여 수요가 적어 푸른콩 재배가 급격히 감소되고 있다. 이에 된장의 비중이 큰 제주도 음식을 고려하여 ‘푸른콩장’ 식문화 자원 보존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경북 울릉도 ‘삼말나리’는 줄기가 50cm?1m까지 자라는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며, 6월?7월에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 6?7송이의 꽃이 핀다. 울릉도 섬말나리는 전세계 백합과 100여종 식물의 원시(原始) 조상격이며, 원시 자연이 살아있는 울릉도는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을 낳은 또 하나의 ‘갈라파고스(Galapagos)’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2009년 울릉도 성인봉에서 섬말나리 씨앗을 채취하여 2011년 재배에 성공하였다. 2013년 섬말나리를 재료로 섬말나리 산채비빔밥, 섬말나리범벅 등을 개발하였다.
경남 진주 ‘앉은뱅이밀’은 기원전 300년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먹던 밀로서 다른 밀에 비해 키가 50?80cm로 작아 붙여진 이름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은 앉은뱅이밀을 농림10호로 개량했고, 미국 농학자 노먼 몰로그는 농림10호를 개량하여 1970년 인류식량증산에 이바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충남 논산의 ‘연산 오계(烏鷄)’는 조선시대 임금 숙종이 중병을 앓다 이 닭을 먹고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오계는 뼈와 깃털, 껍질, 살, 발톱, 부리, 눈까지 온통 검은빛이다. 오계논산문화원은 천연기념물 256호 연산오계 육성을 위하여 ‘연산오계 문화제’를 개최한다. 오계알에 그림 그리기, 오계마라톤, 닭싸움, 백일장 등 문화행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1900년대초까지 한우(韓牛)는 황소, 칡소, 흑소, 백소 등 9종을 흔히 볼 수 있었으며, 1928년 일제시대 보고서에 의하면 전체 한우의 3% 가량이 ‘칡소’였다. 세로 무늬줄이 있는 칡소를 호랑이를 닮은 줄무늬가 악귀를 물리친다고 해서 마을마다 칡소를 길렀다고 한다.
1920년대 일제는 모색통일(일본은 흑소, 조선은 황소)정책을 펴 조선은 황갈색 소만 기르게 하고 다른 색깔 소들은 모두 수탈해 갔다고 동아일보(1938.12.21)가 보도했다. 해방 후에도 일제 기준을 적용하여 1970년 개정된 한우심사표준에서도 황색만 한우로 규정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칡소 복원이 본격화되어, 현재 전국 약 1500마리가 사육되고 있으며, 27%가 울릉도에서 사육하고 있다.
제주 ‘흑우(黑牛)’는 토종 한우로서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여있다. 쇠고기의 감칠맛을 내는 성분인 올레인산 함량이 다른 한우 품종보다도 높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보존 및 증식 사업을 벌여 현재 1500여 두가 사육되고 있다.
‘자염(煮鹽)’이란 가마솥에 끓여서 만든 소금이란 뜻으로 천일염이 생산되기 전 전통적으로 소금을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즉, 갯벌의 흙을 갈아 햇볕에 말리면 염도가 높아지므로 이 흙을 갯벌 구덩이에 채운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 이 흙을 통과하므로 염도가 12-17도로 높아지며, 이걸 끓여 소금을 얻는다. 정제염이나 천일염보다 짠맛과 쓴맛이 덜하고 구수한 맛이 나며, 입자가 희고 곱다. 1950년대 생산이 중단됐다가, 최근 충남 태안 마금리와 전북 고창 사등마을에서 복원됐다.
장흥 ‘돈차’는 동글납작하고 가운데 구멍이 있어 옛날 돈(엽전)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남 장흥 등 한반도 남해안에 자생하는 찻잎을 5월경 채취해 가마솥에 찌고 절구에 빻아 동그란 덩이차로 빚는다. 햇볕에 건조하고 구멍을 뚫어 6개월에서 길게는 20년까지도 숙성한다. 약한 불에 구운 뒤 물에 넣고 끓이거나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면 해독, 해열, 변비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
먹거리와 식생활 환경이 점차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농업과 먹을거리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을거리를 위해 힘쓰고 있는 ‘슬로푸드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슬로푸드 운동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의 회복과 함께 전통식사 형태를 회복함과 동시에 건강한 식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전통 한식(韓食) 식사패턴 지수가 증가할수록 고혈압, 비만, 대사증후군 등의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전통음식은 대부분 슬로푸드이며 장(醬), 김치, 젓갈, 식혜 등 발효식품(醱酵食品)이 많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이 시대의 키워드(key word)는 생명과 환경이다. 이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구 환경과 함께 살아야 지속가능하므로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은 반드시 친환경 유기농(organic food)운동과 로컬푸드(local food)운동과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