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의 웰빙 100세] 부탄국민이 행복한 이유
지난주 6월 26일 고등학교동창회 오찬모임에서 헤드 테이블 옆자리에 앉은 사공일 박사(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前 재무부 장관)와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최근 독일 메르켈 총리가 주최한 포럼(International German Forum)에서 부탄 국민총행복위원회 카르마 치팀 장관(Karma Tshiteen, Secretary, Gross National Happiness Commission, Royal Government of Bhutan)이 ‘국민행복정책’에 관하여 발표를 했다고 전했다.
경북중고 39회 재경동창회(회장 이수강 전 한국중공업 사장)는 매월 오찬모임을 개최하고 있으며, 또한 취미별, 종교별, 지역별 소모임도 정기적으로 열어 지난 50여 년간 이어온 따뜻한 우정을 계속 나누고 있다. 동창생들이 대부분 70대 중반의 나이지만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면서 은퇴 후 노후생활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국제독일포럼’은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59세, 물리학박사) 총리가 경제발전, 삶의 질, 불평등, 차별, 빈곤 등 세계가 마주한 문제의 중장기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창설을 주도한 포럼이다. 지난 6월 5일 총리 관저에서 열린 포럼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와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석했으며, 한국에서는 사공일 박사가 참석하여 메르켈 총리에게 당면 문제에 대해 자문을 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한국경제신문>이 지난해 말 1000명에게 질문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33%만이 “행복하다”고 답했다.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이 세계 148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97위에 머물렀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32위에 해당하는 순위이다.
조선시대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실학자이며 우리 겨레의 선각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정치의 목적, 나라 역할의 첫째가 ‘백성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국민행복지수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여야 한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취임식(2013.2.25)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의 뜻에 부응하여 경제부흥(economic rejuvenation)과 국민행복(happiness of the people), 문화융성(flourishing of culture)을 이뤄낼 것입니다. 새 정부는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그리고 문화융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꿈이 이루어지는 ‘국민행복시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경제발전으로 나라는 부유해졌는데 국민들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 21세기의 가장 어려운 질문에 도전하기 위해 부탄 왕국(Royal Government of Bhutan)은 국정의 최고 지표로 성장이 아니라 행복을 택했다. 이에 국민총생산(GDP) 중심 성장모델이 아닌 국민총행복(GNH)으로 대체한 새로운 발전모텔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느껴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히말라야 산자락에 위치한 부탄 왕국의 인구는 약 70만명이며, 2011년 1인당 국민소득은 2121달러(구매력 평가기준 6112달러)에 불과한 신비와 은둔의 작은 나라이다. 긴 협곡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수도 팀푸(Thimphu)에는 약 12만명 주민이 밀집되어 있다. 부탄은 중국의 티베트자치구와 북쪽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나머지 삼면은 인도로 둘러싸여 있다.
1907년 부탄 전역을 통일한 왕추크(Wangchuck) 왕조는 1910년 영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여 영국의 외교자문을 받기로 했다. 인도가 1947년 영국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했다. 부탄 지도층의 대부분이 인도 유학파이며, 부탄에서 인도는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 사람들은 부탄 비자도 필요 없으며, 하루 200~250달러의 관광비를 지불하지 않고 자유롭게 부탄을 여행하는 특권을 누린다.
부탄 관광청은 고급ㆍ고가 정책으로 관광객 수를 제어하고 있다. 즉 관광객은 여름과 겨울의 비수기에는 하루 200달러, 성수기에는 하루 250달러의 패키지 여행비를 입국 전에 미리 지불해야 한다. 이 금액에는 호텔과 식사, 교통, 관광, 가이드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관광객이 2012년 10만5000명이었으며, 2018년까지 2배로 늘리는 계획이다.
부탄의 ‘행복정책’은 1972년 당시 4대 국왕 지그메 싱기에 옹추크(Wangchuck)가 성장(GDP)이 아니라 행복(GNH)을 국가발전의 잣대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부탄의 행복정책이 제대로 꽃을 피우기까지는 30년이 더 걸렸다. 2008년에 들어선 부탄의 첫 민주정부가 국민총행복을 국정의 핵심 틀로 채택하고, 체계적인 정책의 실천에 들어갔다.
2008년에 제정한 부탄 헌법에 “국가는 국민총행복 정책을 추진하는 여건을 마련하고”(9조) “모든 개발행위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총행복의 증진에 있다”(11조)고 천명했다. 즉 집대성한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정책’을 통해 행복의 여건을 만드는 것이 국가 발전의 목표라고 밝혔다. 국제연합(UN)은 부탄 정부가 발표하는 ‘국민행복지수’에 착안하여 매년 3월 20일을 ‘세계 행복의 날’로 2012년에 지정하였다.
부탄 정부는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경제발전, 문화의 보존 및 진흥, 환경보호, 민주적 관리를 국민총행복을 증진하는 4대 축으로 삼았다. 심리적 웰빙(well-being), 건강, 시간 사용, 교육, 문화적 다양성, 민주적 관리, 공동체 활력, 생태 다양성, 생활수준 등 9개 영역에 33개 세부항목을 설정해 이를 측정하는 국민총행복(GNH) 지수를 개발했다. 9개 영역의 33개 지표 및 각 지표가 차지하는 비율(%)은 다음과 같다.
1.심리적 웰빙: 삶의 만족도(33%), 영성(33), 긍정적 감정(17), 부정적 감정(17).
2. 건강: 건강한 일 수(30%), 장애(30), 정신건강(30), 스스로 평가한 건강상태(10).
3. 교육: 문자해독(30%), 학교교육(30), 지식(20), 가치(20).
4. 문화다양성과 복원력: 전통 문화예술 이해(30%), 문화적 참여(30), 고유 언어 사용(20), 부탄식 행동규범(20).
5. 시간 이용: 일(50%), 수면(50).
6. 민주적 관리: 정치 참여(40%), 기초생활 서비스(40), 정부 효율성(10), 기본권(10).
7. 공동체 활력: 기부(30%), 안전(30), 소속감과 신뢰(20), 가족(20).
8. 생태다양성과 복원력: 야생동식물 피해(40%), 도시화 이슈(40), 환경 책임감(10), 생태적 이슈(10).
9. 삶의 수준: 1인당 소득(33%), 자산(33), 주거(33).
부탄 정부는 국민총행복(GNH)을 잣대로 모든 정책을 심사한다. 즉 새로운 정책이 제안되면 GNH에 영향을 끼치는 형평성, 양성평등, 부패, 수질과 대기오염, 스트레스 등 26개 항목별로 점수를 매긴다. 채점 결과 GNH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정책은 심사를 통과하지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정책은 채택될 수 없다.
부탄은 더디지만 행복(幸福)과 부(富)를 함께 추구하는 선순환의 기운을 타고 있다는데 전문가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행복정책은 세계적인 자연환경과 신비의 불교문화 자산을 보유한 부탄의 현실과 부합하는 국가경영전략이다. 부탄의 경제도 수년째 평균 8%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가치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사회경제발전으로 물질이 넉넉한 계량화된 경제 수치적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아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인간은 자기실현의 경지에 이르면 품성이 긍정적이게 되며, 가능한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정신자세가 행복감과 밀접하게 연계된다.
미국 클레어몬트대 칙센트미하이(Csikszentmihalyi) 교수는 현대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할지라도 사람들은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자주 회의를 느끼게 되어 물질 만능주의는 오히려 정신의 공허함을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게 되면서 ‘부유한 것’과 ‘행복한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성공과 참되고 행복한 삶의 원천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이룩하기 위해 사회정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