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행복의 속삭임’ 가족 속에 있다

세상은 사변적인 말이나 글의 기교로 설명되는 곳이 아니다. 박상설 캠프나비 호스트가 캠핑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모습.


‘국민행복’ 제안
 : 매마른 마음 치유

자연 가까이 하는 부탄 왕국의 행복 기준

경제적 진보와 물질적 소유는 중요하다. 이는 삶을 크게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제적 진보는 다른 목표들과 동시에 추구될 때만이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조건이 요구된다. 즉 국민소득(GDP)보다 행복추구(GNH: Gross national happiness)가 국민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만능이 우리를 행복으로 바꿔놓지는 않는다. 정신건강, 문화 확대와 응용, 여가선용, 취향생활, 건강한 레저생활, 공동체 의식증진에 의한 총체적 삶이 행복을 이끌어준다. 국민이 높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국민 총 행복지수(GNH)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몸과 마음의 건강 ▲내적마음의 생활 ▲심리적 웰빙 ▲자연과 함께하는 개방교육 ▲자연과 밭과 함께하는 여가생활의 시간증대 ▲문화적 다양성 ▲즐거운 시간 보내기 ▲공동체와의 활성화 ▲자연을 가까이하는 생태적 보전 등의 9가지를 ‘행복과의 합일(合一)’로 국제기구와 부탄왕국에서 채택 권고하고 있다.

현대를 흔히 ‘자기 상실의 시대’ ‘불안의 시대’ ‘갈등의 시대’ ‘소외의 시대’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 시대가 그 어느 시대보다 물질적 욕구가 강하고, 문명의 이기(利器)가 양산돼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대량소비와 관능적 쾌락의 광장으로 너나 할 것 없이 휘몰아 가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탄탄하고 행복한 국가를 건설하는데 200~300년의 산업화과정과 문화계몽과 그 진흥의 진통과정을 겪었다. 이제 40여 년의 개도국 과정에 있는 한국은 경제 건설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아야한다. 역사에는 월반이 없다는 진리이다.

월반을 한 나라는 앞선 국민보다 문화를 위시해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품격을 높이는 과외공부’를 몇 십 배를 해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월반을 하는 과정에서 잃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을 골수에 사무치도록 깨우치고, 이제라도 ‘행복하지 못한 설움’을 채우는 꿈을 온 국민이 뭉쳐서 이루어 내야한다.

삶의 방식에 모종의 비합리적 질서 있어

우리나라는 혼란스러우면서도 어중간하게 질서가 잡혀 있는 나라이다. 혼란에 친숙해있으면서도 적당히 질서를 헤쳐 나가는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체계를 갖고 있다. 삶의 방식에 모종의 비합리적 질서가 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게 문제이다. 우리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롭다. 이런 것이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다. 도대체 이 비합리적인, 질서 아닌 질서란 무엇인가?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일인데도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서는 원인은 말하지 않고 처방만을 대신한다. 앞서 말한 선진국이 200~300년에 이룩한 문명을 30~40년에 따라잡으려는 후유증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다.

여가생활을 바로 잡아야 한다. 모든 습관은 정의나 윤리도덕의 가르침이 잘못된 게 아니라 무질서하게 노는 방법이 손의 지문처럼 배었다. 우리는 산업화와 정보화 물결 속에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멀리하고 자연에 목말라 하면서도 자연을 겉으로만 스쳤다. 일에서 벗어나 레저 활동을 하는 문화가 ‘즐거움’ ‘자유’ ‘자기발전’의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메커니즘이다. 넓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세계로 자연으로 나아가야 한다.

쌀과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맑은 행동과 마음의 풍요가 행복이다. 사회통합으로 가는 소통의 길은 국민 모두가 자연을 매개로 하는 초원의 주말생활이 ‘행복의 해법’이다.

초원의 캠핑은 국민들에게 ‘감성과 정서’를 풍부하게 길러주어 화기애애한 이웃이 되게 하여 사회를 밝게 만들고 사회악을 줄이는 효자다. 모든 답은 초원의 자연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의 순화에 달려있다. 이런 의욕적인 시책은 과거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새마을 운동보다 더 높은 차원의 현대적 정신을 담아 미래의 행복을 당겨오는 지혜로운 제2의 새마을운동이다. 이는 국민에게 감추어진 국민이 행복을 소망하는 명령이라고 여겨야 한다.

역사에는 월반 없다는 진리 깨달아야

문화로 자연을 본다. ‘제레미 리프킨’은 인류가 기술혁신에 의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지, 선진산업사회의 모순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예시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세계에서의 에너지제도, 경제·정치·과학·교육·종교·군사·가치관 등의 변화를 엮어 보이고 있다.

<엔트로피> <공감의 시대> <유러피언 드림> <소유의 종말> 등을 통해 새로운 우주관을 토대로 자연과 감성적 세계관을 희망하고 행동하는 동기를 갖게 한다. 자연과 인간의 꿈을 말한다. 인간은 원래 사람들과 정서적 교감을 통해 살아간다. 기쁜 일이건 나쁜 일이건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그 속에서 일하며 놀며 고통도 나누며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의 ‘공감’ 본능이라고 한다. 서로 이해관계로 얽혀 부대끼며 경제활동과 여가를 즐기며 서로가 지니고 있는 색다른 풍경에 끌려 인간 홍수에 휩싸인다. ‘공감’의 역사가 곧 일류 ‘문명’이다. 여기에서 이제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인간애 없는 문화 곤궁을 넘어 자연과 호흡하는 인성으로 화합하여야 한다.

행복으로 가는 초원의 캠프! 우리는 이제 꼭 이렇게 살아내야 한다. 세상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우리 가정의 모습은 그대로이다. 땀방울을 통해 자연스런 변화로 이끄는 행복의 속삭임은 가족 속에 있다. 우리는 너무나 마음이 매말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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