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아득한 숲의 소리 ‘트로이메라이’


모든 나무들과 숲도 흰 상복을 벗게 될 것이니. 나만이라도 흰 상복을 갖추고, 진달래 가지에 물오르기 전에 문상을 떠나야겠다. 샘골의 비닐움막에서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본다. 밖에는 눈이 내린다. 한가롭게 책을 폈다.

끊겼다 이어질듯 가냘픈, 들릴까 말까하는 작은 음악을 옆에 하고 책을 뒤적인다. 없어서는 못살 정도로 좋아하는 클래식과 집시의 팝이다.

한곡은 Mischa maisky가 첼로로 연주한 슈만의 ‘Traumerei’이고 또 한곡은 Pan Flute의 제왕인 루마니아의 게오르게 잠피콘이 연주한 독일의 James Last가 작곡한 ‘외로운 양치기(Lonely shepherd)’이다.

‘트로이 메라이’는 한편 ‘어린 시절의 꿈’으로도 알려진 곡으로, 뺨에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듣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서정적이고 감미로우면서 속을 파고드는 선율이다.

‘외로운 양치기’는 한국에서도 뜨거운 호응 속에 낯설고 신비한 새로운 악기 팬플룻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다.

팬플룻은 천상의 화신의 악기라고도 불리며, 길이가 다른 대나무관을 뗏목 짜듯이 나란히 엮어서 플롯처럼 여러 소리를 내는 단순한 악기로, 예전부터 동유럽과 남미, 멜라네시아, 아프리카, 중국 등에서 민속악기로 애용해왔다.

잠피콘은 고국인 루마니아 전래의 20파이프를 22~25~30 파이프까지로 확장하여 더욱 깊고 풍요하고 다양한 음색을 세계인에게 각인시켰다. 끊길 듯 이어지며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이 선율은 마음과 육신을 잠재우는 잔잔함에 자신도 모으게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쉬게 한다. 허허벌판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바라다보는 세느강변의 정경이 선하게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이곡을 끼고 고독의 여로를 깊게 한다.

‘트로이 메라이’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들으면서,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는 선곡이다. ‘외로운 양칙기’는 내가 배낭여행을 하며. 동경의 신주쿠 거리 한복판에서 해질 무렵에 남미 칠레에서 온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것을 배낭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깊은 애수에 잠겨 눈물지으며 어두워지는 도심하늘을 초점 없이 바라보며 한 때에 잠겼었다.

이때 옆에 있던 한 여인이 자기도 마음이 동하였는지, 슬픈 눈빛으로 나에게 여행자냐고 속삭이듯 물어왔다. 결국 그 여인과 우에노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벤치에 앉아 밤을 지새워 일본문학과 세계문학을 줄다리기 했던 게 어제일 같다.

그 젊은 여인과 20년이 된 오늘까지도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외로운 양치기’를 오늘도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트로이메라이’와 ‘외로운 양치기’는 나를 살게 하는 아득한 숲의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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