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개인 문제가 국가 탓이라고?

우리는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개인적인 ‘인생항로’는 모호한 채로 두고 타인과 사회와 국가의 탓으로만 돌린다.

흙에서 난 몸 흙과 함께 살아야

“너는 흙에서 난 몸이니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성경 창세기3장 19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모든 생명은 본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흙을 힘들여 경작해서 양식을 얻어, 노동 선(勞動 善)으로 살다가 결국에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원래자리인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살아내기 위해 열심히 노동을 해야? 하는 일이 인간의 마음과 몸을 정화시키고, 건강하게 사는 자연의 은혜입니다. 흙은 우리의 고향이며 어머니의 품과도 같이 포근하고 정겨운 근원입니다. 생계를 위한 일을 넘어 주말 레저와 농사일로 즐기는 ‘자연인’의 삶은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자기구원의 힐링(Healing)입니다.

자유의지의 믿음을 언제나 자연에 의지하고 그 너머에서 찾습니다. 이렇게 사는 방법은 조금은 힘들고 복잡하지만 그래야 재미나는 일들이 예상 밖으로 생겨납니다. 삶의 재미는 자신을 자연에 투영하여 다양한 방식을 찾아내는 기쁨입니다. 삶을 만드는 일이란 결국 자연의 거울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지요. 그래 나는 언제라도 자연에 뒹굴 수 있는 잡동사니 도구를 한 짐씩 늘 지고 다니는 미련한 풍옹(風翁) 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챙겨봅니다.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의 길이 있겠지만, 개개인의 삶과 직결된 ‘삶의 방식’이 그 당사자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근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개인적인 ‘인생항로’는 모호한? 채로 두고 타인과 사회와 국가의 탓으로만 돌립니다.

더 가관인 것은 우리나라의 신문, 잡지, TV에 실리는 논객과 정치인이 왜 그리도 많은지 놀랐습니다. 국민들은 제 갈 길에 여념이 없는데도, 그들이 못살겠다고 외쳐대며 선동을 일삼습니다. 자기네들끼리의 이익과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국민들을 선동해 서로 적대시하게 만드는 패거리로 갈라 놓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은 생계나 삶의 질 향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네들만의 이익을 위한 목적에 이용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의 ‘엔트로피’ 위협확산에 더하여 또 다른 조작된 인간의 ‘엔트로피’ 독소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지요. 이들이 자행(恣行)하는 쓸모없는 행사에 소비되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폐해(弊害)의 손실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올 뿐 입니다.

모든 정신적 발전이 물리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엔트로피’ 법칙의 완전한 이해와 그 실천이 필요하다. 자료사진은 화천 산천어축제 모습

?‘엔트로피’ 법칙의 이해와 실천 필요?

‘엔트로피’를 간략하게 설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요지만 정리합니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화합니다.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이며, 우주의 에너지는 늘 일정하지만 그 형태는 끊임없이 바뀌며 한번 바뀐 에너지는 일방적이어서 다시는 원상태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엔트로피’는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손실을 나타내는 물리량이며 그것은 사용가능한 에너지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것은 질서가 있고 값어치가 있는 상태에서 무질서하고 값어치가 없는 상태로의 한 방향으로만 변합니다. 나무 조각이나 석탄, 기름을 태웠을 때, 열이 발생하며 연기와 재와 탄산가스, 아황산가스 등 화학 반응을 일으켜 변합니다. 그 변해버린 열과 연기, 가스와 재는 지구상에 영원히 ‘엔트로피’ 공해물질로 남고, 원상태의 나무, 석탄, 기름으로는 절대 환원이 될 수 없는 우주의 자연법칙입니다.

‘엔트로피’ 법칙은 역사를 발전으로 보는 개념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이 중세 기독교 세계관을 대치하게 될 때처럼 ‘엔트로피’ 법칙은 현재의 세계관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엔트로피’ 패러다임은 세계의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규명되고 있습니다. ‘엔트로피’ 법칙을 현존하는 세계관에 덧붙여 이식시키려면 자연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의 적립 없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람중심으로 보던 세상을 자연을 중심으로 하는 우주관으로 새롭게 배우고 실행해야 합니다.

정치가는 이것의 중요성을 에너지와 ‘엔트로피’ 문제부터 – 비무장 문제까지의 모든 문제를 놓고 논하게 될 것입니다. 신학자는 ‘엔트로피’ 법칙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성경 해석을 할 것이고, 기술자는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생긴 과학을 우주법칙에 융합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경제학자는 고전 경제이론을 보다 자연에 친근할 수 있는 구조에 맞게 수정할 것이고, 심리학자나 사회학자는 ‘엔트로피’를 기준으로 인간 본질을 재조명하게 될 것입니다.

열역학 법칙은 모든 물리적 현상에 적용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화학자 ‘소디’는 열역학 법칙이 모든 정치체제의 흥망성쇠, 국가의 자유나 속박, 산업의 움직임, 가난이나 부의 근본, 그리고 모든 종족의 행복까지도 관장한다고 말했습니다. ‘엔트로피’ 법칙은 모든 것이 한정되어 있고 생물들이 결국은 죽게 되는 물리적인 세계에 적용됩니다. 정신의 세계란 경계나 한정이 없는 비물질적 무한대의 세계입니다.

내면적인 세계를 무한한 전체(全體)라고 본다면, 물리적 세계는 그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엔트로피’ 법칙은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을 관장하지만, 또한 이를 인식하는 인간의 영적인 힘에 의해서 전체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문명이 물리적 실체를 조직화하는 방법과 물질에 부여하는 중요성의 정도는 정신의지 계몽의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우주적 세계관일수록 인간의 욕망은 덜해 갑니다.

문명이 물리적 세계에 덜 부착돼 있을수록 인간은 물질의 한계를 초월하고 내면세계의 진수를 누리게 됩니다. 열역학 법칙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해 나가느냐가 바로 인간의 행복이 번영할 것인가 소멸될 것인가를 결정짓습니다. 모든 정신적 발전이 물리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엔트로피’ 법칙의 완전한 이해와 그 실천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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