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샘골 레저농원서 만난 고3수험생②

박상설 선생과 그를 따르는 캠프나비 가족들. 사진은 2021년 여름 장면이다


아이들 한 톨 도토리처럼 스스로 싹틀 힘 내재

나는 기선 학생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사람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의 가정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교육은 변해야 한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모든 학부모 선생님, 사회지도층 할 것 없이 온 나라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떱니다. 오직 학교성적, 명문학교, 영어·수학 경쟁만이 전부일 뿐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틈새마저 빼앗아버렸습니다. 부모는 자기 탓 안하고 학교선생님만 원망합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식민지화하여 완전 점령해야 속이 시원해지는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생계 타령만 늘어놓고 세상을 원망합니다. 모두 소용없는 헛소리입니다. 옛날에는 학교 선생님의 지도와 영향력이 나름대로 권위가 지켜지고 컸지만 지금은 부모의 지나친 등쌀이나 무관심과 사회의 저질 상업문화의 범람으로 선생님의 영향력이나 지도력이 거의 땅에 떨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아이들 자신이 스스로 치열하게 살려고 하는 생명과 영혼을 갖고 있는 원초적인 본능 그 자체입니다.??마치 하나의 생명 씨앗인 도토리와 같습니다. 어른들은 ‘아직 어린애잖아’, 네가 뭘 알아, 하며 부모의 생각으로만 지나치게 과보호 하지만, 아이들은 한 톨의 도토리처럼 스스로 싹을 트이고 자라나는 힘이 내재돼 있습니다.

생명과 영혼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유아기 때 어른들이 잘못 길 들여놓아 자생력을 잃게 했습니다(아기의 재롱에만 팔려 부모의 본능적 욕심 채우기에 몰두할 뿐, 아기 자신의 원초적인 삶의 의지에 직간접으로 간섭해 상처를 입힌 잘못).

사림은 5세 이전의 부모의 교육이 평생을?갑니다. 5세 이전 냉정한 사랑의 교육이 한 평생의 삶을 만듭니다. 사람의 성격은 5세 이전에 만들어지고 형성됩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옛말이 있습니다.?6세 이후에는 자녀의 자생력을 자세히 관찰하며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칭찬해가며 여유롭게 먼 장래를 목표로 도와줘야합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인공시설이 없는 자연에서 뛰놀게 유도해야 합니다. 공부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한도로 관찰하며 몰아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도 안하는 공부는 한계라고 여기어 본인이 좋아하는 쪽의 공부를 도와주면 됩니다. 그 이상은 자녀를 죽이는 공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일등을 목표로 하지 말고 일품(一品)을 희망해야 합니다. 공부만 잘하는 게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아동 발달심리학책을 펴들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권합니다. 프로이드를 위시해 칼융, 에릭슨, 스키너, 피아제, 로렌스의 아동 발달과 성숙의 의미를 살펴보면 인간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맺게 되는 대인관계의 질과 정신기능 그리고 사물과 자연을 대하는 감성의 자율성도 역시 5세 이전의 부모의 교육에 달려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만 성장하면서 사회 속에서 습득되는 인식과 지식은 에고의 정체성과 당사자의 DNA등에 좌우되고, 끊임없는 자각과 자기수정의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요.

사람의 기본은 부엌… 음식 조리와 설거지는 기본

일찍이 자기 자신을 알고, 자연을 사랑하고, 어디로 가는 길인지를 내다본 기선이는 사람들이 모두 혈안이 되어 탐내는 그 상업성 늪에서 이미 발길을 돌려 녹색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삶의 진리는 다수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자신 속에 있습니다.

사람의 기본은 ‘부엌’입니다. 먹어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사람들은 부엌데기를 천시하고 대접 받아야 신분 상승으로 여깁니다. 샘골 캠핑에서 기선이는 농사일에 열중했습니다.?그리고 부엌 설거지도 다 해치웠습니다. 무엇이 사람에게 꼭 필요합니까? 밥, 음식입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10세가 돼도 밥 하나 못하고 찌개 하나 못 끓입니다. 설거지도 못 합니다.

아니, 못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못 하게 막았습니다. 내 아이만은 안 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공부에 시간 빼앗기면 안 되고, 곱게 길러야하니까? 모든 잘못은 부모가 원죄입니다. 남의 자식은 신문 배달해도 괜찮고, 내 자식에게 만은 그런 일 시킬 수 없다는 소시민적 이기주의로 꽉 차 있습니다.

이제는 행동으로 답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루소의 에밀을 몇 번이나 읽어 보셨나요? 그리고 그 배움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나요? 이런 변화의 실천이 문화의 실험이며 훈련이고 또 그것이 부모의 의무이자 자격입니다.

문화는 훈련으로 얻어집니다. 우리는 삶의 문화를 위해 무슨 훈련을 했고, 또는 지금 앞으로도 무슨 훈련을 계획하고 있습니까? 부모는 그리고 교사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줄 뿐입니다. 모든 잘못은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루소는 말했습니다. 사람은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울어서 슬프다고. 아기의 태를 자를 때의 첫 ‘울음의 자연생태’를 자연교육의 성전(聖典)으로 삼아야 합니다. 부모가 하기에 달려있습니다. 딴 방법은 없습니다.

변화를 일으키는 동기 부여의 원천이 못 되는 교육은 한낱 사람만 괴롭히는 허구입니다. 배움의 최종 목표는 변화이고 행동입니다. 기선이는 스스로 용기 있게 큰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답은 행동입니다.

인생을 행동으로 이끌어 몸으로 때워야 합니다. 기선이는 자기 나름대로 공부에 힘 쓴다고 했습니다. 나는 몇 가지 권고와 자연에 대해 말해 줬습니다. 기선이가 하는 학교식의 공부는 그가 원천적으로 안 받아들입니다.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마음 내키는 것을 하면 됩니다. 영어 공부의 중요성도 말해줬습니다.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배우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인간의 개인별 능력 차이와 그 한계를 알아야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샘골에서 헤어졌습니다. 말하자면 독일식 학교 교육제도와 사회와 국민이 오랜 전통을 통해서 국민 행복을 공유하는 정의로운 훈련된 부러움을 말입니다.

이번 5월25일(일)에는 화학산(1460m)을 등산하기로 약속하고 6월 말경에는 설악산을 종주하기로 했습니다. 기선이의 진로결정이 있기까지는 부모와의 갈등이 컸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포기했고 기선이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정신적으로는 남남이 됐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됐습니다. 한국 가정의 비극입니다. 부모들은 반성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삶의 뿌리를 내릴 샘골 캠핑과 주말 영농에 힘쓰는 한편 산에 더 열심히 가고, 전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오토 캠핑’으로 세계를 누비는 꿈에 부풀어야 하고 꼭 그렇게 행동으로 해내야 합니다.

인생은 한번 뿐입니다. 틀을 깨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뿐입니다. 이렇게 살면 모든 가정의 갈등은 80%이상은 해결되고, 생활비도 30% 정도는 절약됩니다. 돈 벌 생각에 몰두하지 말고 틀을 깹시다. 가장이 5% 변하면 가족은 50%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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