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길을 버리고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다 느슨한 풀숲에 주저앉았다. 폭풍우가 지난 뒤 스치는 바람은 이미 가을이다. 흰 구름이 머무는 저 아득한 산 너머를 그리며, 멀리 내려다보이는 침묵의 숲은 한 편의 시다. 일망무제(一望無際)의 허허로운 산빛을 쇼핑한다. 벌써 가을을 타는 가보다. 남자의 계절은 왜 사추기(思秋期)라 하지 않는가?
높은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마냥 좋다. 아무 말 들어 보지 않아도 좋고 아무 말 묻지 않아도 좋다. 부질없는 생각과 움츠러든 마음은 온데간데 없다. 보이는 기쁨 보이지 않는 감동···. 어느새 운해가 뭉게뭉게 골짜기를 감싸고 싸리재를 덮어온다. 자연의 현묘(玄妙)한 세계와 숭고(崇高)한 자태여···. ‘우주교(宇宙敎)’는 어디에 있는가.
산을 잊고는 살 수 없다. 수려하고 넉넉한 저 능선에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들···. 모두 근심걱정 없이 자라는 숲의 기풍이고 싶다. 진퇴유곡의 심산을 두고 어디로 떠난단 말인가? 스스로 살아가는 개별화된 생명들은 제각각의 향취를 풍기는 아름다움의 총화였다. 나뭇잎 스치는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는 산의 호흡인가.
도시생활에 부대끼다 그대로 아득한 원시에 있다. 청설모가 겁 없이 굴참나무를 타고 논다. 절묘한 재주를 부리며 노는 그놈에게 넋을 잃는다. 여름에는 몸을 담황갈색으로, 꼬리는 암갈색으로 치장하지만, 겨울에는 회갈색으로 위장한다. 한참이나 바라보다 바이 바이하고, 계곡 모퉁이를 돌아설 때 이끼 낀 바위를 헛디뎌 벌컥 넘어졌다. 얼마나 청설모는 고소해했을까.
주인 없는 들풀만 외로운 풀숲 사이로 돌무덤이 보일까 말까 흩어져 보인다. 아 아··· 여기다. 이게 얼마만인가. 엄청 헤매다 찾아낸 ‘화전민’ 집터자리이다. 아득한 40~50년 전에, 생각나면 훌쩍 찾아들던 화전민집이다. 집은 흔적도 없고 돌 몇 개만이 이끼를 머금고 나뒹굴고 있다. 도통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잡초만 우거져 옛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휑한 폐허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버려진 땅은 이러하고나. 가을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이 곳에 있게 된다.
주인 없는 퇴락한 뜰에도 계절은 있었는지, 이름 모를 풀꽃들이 한창이다. 장독대가 있던 돌 틈 사이에 억새풀이 무심하게 나부낀다. 외지고 외롭고 쓸쓸한 환영(幻影)이 가을빛에 표류한다. 낯선 풍경이지 않은 낯선 풍경에 있다. 밤낮없이 들리던 여울소리··· 영혼을 맑게 해주던 그 소리,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화전민 혼백이 나를 붙잡고 왜 이제 왔느냐고··· 왜, 왜, 한다. 적막···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