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과거와의 단절없인 원하는 삶 살 수 없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습관만이 전부라 여기고, 딴 방법으로 사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남들대로 살지 않으면 불안해서인지? 변화가 두려워서인지? 그만큼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기는 어렵다. 과거가 현재의 구속이다.
과거와의 단절 없이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 원하는 삶의 길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출발이다. 항상 다음 또 다음으로 미룬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도 오늘 실천한 작은 일보다 못하다.
그간 우리는 ‘원리로 보는 삶’을 저버리고 있지나 않았는지? 문화 해석의 커다란 두 가지의 흐름을 살펴보자.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문화 속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태어난 그 순간부터 ‘기존의 문화 속에 구속당하고’ 자란다.
이런 관점을 ‘문화 결정론(White와 Spengler의 견해)’이라 하고 이와 대립하는 견해를 ‘문화 자유의지론’(Kant와 Cassirer의 견해)이라고 한다. 두 이론을 취사선택하여 융통성 있게 생활하는 것은 전적으로 각 개인의 자유 선택권이다.
핵심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문화 결정론> 자들은 인간행동의 목표와 목적은 인간이나 집단의 자유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의 기존문화 안에서만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즉, 전통 제일주의 적이며 보수적이고 운명론적 색깔이 짙다. 윗사람이나 부모 틀에서 못 벗어난다.
<문화 자유의지론> 자들은 문화교육을 통해, 사회나 개인을 변화시켜서 우리의 자유의지에 들어맞도록 할 수 있다고 한다. 진보적이며 진취적인 견해이다. 각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창조성을 강조하고 끊임없는 변화를 강조한다.
‘원리와 본질’로 보는 삶 추구
우리 사회는 전통을 중히 여기는 유교 사회의 역사이다. 우리는 예부터 구조화된 안정된 환경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도록 시스템화된 가정에서 생활하지 못했다. 새 문화를 만드는데 주력하지 않고 전통은 유전되고 계승되는 것으로만 여겨 가정이나 사회 속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이상의 시사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는 문화가 지향할 길이다. 우리 국민의 수만큼이나 문하를 보는 수준의 차이가 다양하다. 물론 취향 문화에 따라 큰 부류로 나누어질 수 있겠으나 각자의 가치관과 합일되는 문화 표출은 고급문화, 대중문화, 저급 문화 등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아주 지능이 높다는 것이다. 문화를 만들어 온갖 향유를 즐긴다. 동물은 반대로 생존을 위한 먹이만 찾는다.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사고능력’이 대단하지만 ‘원리와 본질’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원리와 본질’은 모른 채 단순 주입식 지식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는 가족력이나 어릴 때부터의 교육의 영향에 기인한다. 여하튼 ‘원리와 본질’로 모든 사물을 보는 고민 없이는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려서 시야가 좁아져 새로운 환경에 적응 못 한다.
‘인생의 이해’ 바꾸어 말하면 ‘원리와 본질’로 보는 삶이라 해도 좋고, 문화라 해도 좋다. 이제 모든 현안을 ‘원리와 본질’로 해석하는 습성을 길러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의 Geert Hofstede의 저서 ‘세계의 문화와 조직’에 의하면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계사람은 대부분 ‘불확실성 회피문화’의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본질을 회피하고 현상을 쫓는다는 흥미 있는 연구이다.
늘 참기 어려운?불안을 자신이 스스로 유발한다. 인간의 개인적 미래를 의존적 종교에 의지한다. 자기 확신이 부족하고 느낌으로 살피고 산다. 말할 때 손동작을 함께하며 목소리를 높여 감정표출이 심하다.
동료오?어울려 불만을 토하고 술 모임이 잦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문화적 생활 태도가 부족하다. 분석 비판의식을 회피한다. 감정적 욕구가 심하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다.
오토캠핑으로 아이들 정서 바꿀 수 있어
과연 우리 가정에서 결혼 전부터, 루소의 ‘에밀’을 학습하고 자연주의 육아 방식을 고민하며 또는 발달 심리학에서 가르치는 육아교육을 통해, 5~6세 이전부터 교육한 가정이 과연 몇 집이나 되겠는가?
다시 강조하면 어린 시절에 이미 형성된 성격은 평생 바꿀 수 없는 거의 본성과 같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부부간에도 네가 나를 닮으라고 서로 전쟁을 벌이기 일쑤다.
이를 해결하는 특효약으로는 문화를 완충지대에 놓고 문화의 힘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 문화가 바로 아웃도어의 취향 문화다.
성격을 바꾸라고 전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문화로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게 ‘오토캠핑’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생활화하는 주말 영농이며, 산행, 걷기, 뛰기, 레포츠, 레저, 여행의 역동적 행위 문화이다.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가 주창한 취향 문화라는 아비투스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행동은 엄격한 합리성과 계산을 근거로 행해지기보다는 일정한 체험을 통한 기억과 습관 그리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사회적 전통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얻어진 인간들의 문화 차이를 ‘구별 짓기(La distinction)’로 문화생활의 계층을 구분 지었다.
아웃 도어를 중심으로 하는 야외 취향 문화가 없다면 그 가정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하더라도 ‘생계와 생물적’ 의미에 불과한 하위 문화가정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