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강원도 정선 골짝 귀촌청년의 행복①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에 위치한 자개골. 무릉도원을 구경하려면 자개문을 지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박지산, 발왕산, 두루봉에서 발원한 물들이 상원산(1421.7m)과 다락산(1018m)이 자개문 역할을 하여 입구가 문처럼 되어 있으나 계곡의 길이가 20킬로미터가 넘는 청정 계곡이다. <자료사진=정선군>

한 달 10만원으로 자연과 벗하며 자유롭게

맑은 가난 길 따라 나는 늘 떠나는 사람이지만 오늘만은 특별한 날이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 먼 길을 떠났다. 지금쯤 독거 청년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산길을 휘돌아 굽이굽이 흐르는 맑은 개천을 끼고 달렸다. 그는 정선 오지산골 농막 집에서 홀로 산다. 그는 나를 본 채도 않는데 애달아간다. 찾아 간다고 전화하니 외지에 나가 막노동 중이여서 20여일 후에나 집으로 돌아간단다.

그래도 갔다. 문득, 그가 없는 농막 터를 베이스캠프로 삼아야겠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별 5개 호텔은 안중에 없다.

아 아··· 저 푸른 숲이여, 들꽃이여, 산새소리, 깊은 산중의 적막한 석양, 밤하늘의 별들, 초승 달, 밤이슬, 으스스 스며드는 밤안개, 고독··· 그의 개인적 신상에 대해선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의 삶의 모습이 나를 움직인다. 농사일하다 돈이 떨어지면 노동 품팔이로 연명을 한다.

돈 모으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무심한 자연에 들어 자유롭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에 뜻을 둔다. 그리하여 최소한의 생활을 견뎌내며 가능한 자기를 위한 일에 시간을 쓴다. 일신의 쾌락이나 들뜬 상업주의 거품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자연 중심의 절제된 생활과 내면세계의 자유 확보를 위한 소박한 삶에 가치를 두고, 때때로 좋아하는 음악과 독서를 즐긴다. 라디오로 뉴스만 듣고 TV는?없다. 이런 절재된 비움의 단순한 삶(simple life)과 자연을 사색하는 조용한 생활을 으뜸으로 한다.

틈나면 가끔 정선읍에 나가, 도서실이나 문화공간을 찾아 정보를 얻고 번잡한 고뇌의 근원을 멀리 하며 여백을 즐긴다. 최소한의 생활비만 있으면 됐지 그 이상의 돈벌이에 열중하면 진짜 원하는 삶은 없어지고 모든 것은 망친다는 믿음을 그대로 지켜나간다.

약간의 돈이 생기면 여행하다 돌아오고 의미를 잃게 되면 또 떠날 채비를 한다. 사람보다 자연을 찾아서··· 외국의 높은 산도 등반하고, 아프리카 오지를 찾는 빈한한 탐험대열에 끼기도 한다. 이런 해외 원정은 경비가 만만치 않아 몇 년을 절약해서 모은 돈으로 초라한 거지가 되어 근근이 다녀온다.

일상의 생활도 영세한 농사로 자급자족하며, 돈이 필요한 생활은 최대한으로 절약하여 한 달에 10만원 안팎으로 견뎌 낸다. 이처럼 적은 돈으로도, 어느 많은 연봉자 보다 마음만은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에 늘 고마움을 간직하고 산다. 그 어느 누구도 부러울 것 없고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지금의 삶은 바로 ‘자연스러운 삶’의 은혜이리라.

이런 이야기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의 실생활을 직접 접하며 간간이 흘러나오는 말들을 엮어 어렵고도 귀하게 추려낸 내 마음을 비쳐주는 잠언이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말수가 적은 젊은이다.

정선 시내에서 그의 농막까지는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산골길이지만 그는 돈도 없거니와 자동차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편도 2시간 반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다닌다. 그 길은 사색의 길이며 그를 지탱하는 사유의 근원이다. 그를 만나고 오면 나는 그에게 갇힌다. 떠나온 그곳을 비우지도 채우지도 못 한 채 그 산촌에 메인다.

그는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다 접어치우고 단돈 3만8000원을 들고 8년 전, 어는 늦가을 해질 무렵에 정선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는 소란하고 번잡한 도시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자연의 삶을 중히 여기는 청년이여서 단단한 결심을 하고 산촌에 든 것 같다. 그 후 노동으로 약간의 돈을 마련하여 국유지에 버려진 다 쓰러져가는 지금의 농막을 100만원에 사들여 수년 동안 조금씩 수리해가며 산다.

주인 없는 휘휘한 빈집 마당이 더없는 하룻밤의 보금자리가 됐다. 얼마만에 다시 찾은 뜻 깊은 여정인가? 지난 1월 중순에 폭설이 내리는 산길을 뚫고 찾아간 길이다. 그 집 방은 흔히 볼 수 없는 희한하게 만들어진 방이다.

북쪽 벽을 허물고 통 유리를 통째로 끼운 쇼룸 같은 방이다. 방안에 앉아 있어도, 마치 산속의 야지에 나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푹 빠져든다. 그 방에서 독거 청년과 찻잔을 마주하고 하염없이 내리는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그 엄청난 광경에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이런 감동은 나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휘황찬란한 풍경을 뛰어넘는 설명할 수 없는 공간정서에 압도당할 뿐이다. 나의 삶은 바로 이런 설명될 수 없는 것들에 숨어 있는 슬픔, 오묘함, 놀라움, 환희와 열정을 흠모하는 환영(幻影)의 점철(點綴)인 것 같다.

설명되지 못하는 것들의 행간을 헤매는 일상성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눈 속에 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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