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가방 든 여인’과 걷는 철길
호수 따라 철길 따라···‘다산유적지’ 팔당 호반을 찾아
사운 거리는 강바람을 쐬며 호숫가의 숲과 철길을 거닐었다. 팔당의 남양주 다산길은 다산유적지 외에도 12개 코스의 둘레길이 있다. 이 중에서 팔당~능내역 구간이 가장 평판이 좋다.
탁 트인 팔당 호반엔 전망 데크, 원두막도 갖춰져 있다. 팔당에서 능내역까지의 구 중앙선 철로는 폐쇄되어 사람들이 걸을 수 있게 됐다. 아스라한 옛 정취를 회상하며 철길 따라 철교도 건너고, 소리 울림 치는 터널을 엉금엉금 기어가는 재미가 마치 유치원생의 소풍놀이 같다.
갈대 호반길을 뚜벅뚜벅 걷다보니 엉뚱하게도 50여 년 전에 보았던 이태리 영화 ‘가방을 든 여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순박한 여인, 떠도는 여인. 가출-여행-방황. 리얼한 흑백 영화에 구슬픈 ‘색소폰’ 배경음악이 간장을 졸였다. 들녘 갈림길에서 내일의 자기를 잃은 가방을 든 여인. 그 장면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풍경과 흡사한 ‘봄이 가을같은’ 갈대길이었다.
‘소피아 로렌’에 버금가는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지금 생각해도 매력적인 여성이다. 좋았던 포인트는 ‘모더니즘’한 상업주의 영화가 아니라, 안타까운 물음으로 조아리는 ‘니힐리즘’이었던 것 같다.
가방 든 여인과 맨발로 마냥 걷고 싶다.
이어 내가, 열렬히 사랑하는 한 여인과 손을 맞잡고 한가롭게 철길을 걸으며 침목 따먹기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다, 갑자기 그 여인을 번쩍 껴안고 신나게 왈츠 춤을 추다, 같이 쓰러져 웃음꽃을 피우는 늙은 망상을 그려 본다.
나는 산을, 그리고 여로(旅路)를
자신의 생으로 받아들여
안으로 안으로 캐들어 가는 광부의 고난을 본받아
고도의 긴장을 인내하며
평온을 얻기 위한 고난의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