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러시아 ‘다차’를 벤치마킹하자

현직에서 은퇴한 노인들은 가족과 떨어져 다차로 가서 농사일도 하고 가축을 기르며 건강을 위한 취미생활을 한다. 주말에는 가족과 만나 어울린다. 사진은 러시아 다차 모습. <자료 사진=orphantree blog>

주말이 되면 교외로 나가는 차량들로 교통체증이 극심하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행렬일까??외식을 하러 또는 놀러가는 차들이 태반일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를 보자. 대부분의 차들이 주말농장인 다차(Dacha)로 향한다.

러시아에는 다차가 약 3200만 곳이 있고, 인구는 1억3700만 명이니, 4.5명당 다차가 1개씩 있다(2004년 3월 현재, 농업인구를 제외하면 3.7명당 1곳). 전 국민 거의가 다차를 갖고 있는 셈이다.

국민들을 다른 생각 못하도록 만든 통치수단이었을까? 여하튼 다차는 러시아인들의 고향이며 향수이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 러시아 국민정서가 담겨있는 다차를 알려면 근대 러시아의 문예 진흥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이해해야 한다.

1860년부터 1917년 붉은 혁명까지의 제정 러시아는 한마디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물결로 가득한 찬란한 예술의 시기이다.

도스토에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부활’ 등은 러시아인들에게 예술가와 문학가, 시인들이 만들어주는 꿈을 안겨다 주었다. 이런 풍조는 러시아인들에게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문예부흥의 계몽운동으로 번져 삶의?문화바탕을 넓혀줬다. 인생을 자연과 아울러 넓게 관조하는 사조가 퍼져 나갔다.

볼쇼이예술단(발레)도 그때 조직됐다. 이런 배경으로 러시아의 귀족과 지식층은 품위 있는 향수를 잊지 못해 풍광이 수려한 농촌지역에 여러 가지 형태의 별장을 지어 그곳에서 소설을 쓰고 시를 논하고 그림을 그리는 한편 사냥과 낚시를 하며 문화생활을 즐겼다. 이런 문예적인 풍토가 일반 러시아인들에게도 세월이 지나면서 전파되어갔다.

서민과 노동자의 생활 속으로도 차차 번져 나가면서 소규모나마 다차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차에 장작불로 지피는 사우나를 만들어 건강을 다지며 즐기는 일을 모두들 부러워했다. 이런 상류계급 문화가 확산되면서 문화적 삶을 중심으로 하는 건전한 주말농장 다차가 발전해왔다.

1958년 후루시초프가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인민들에게 주말농장 다차 1동당 토지 150평과 주택면적 9평 정도를 무상으로 나눠주었다(그 이전에도 일부 시행한 정책). 이런 정책의 목적은 인민들에게 신선한 채소류와 농산물을?직접 생산해 자급자족하는 것과 근로정신을 길러 자립을 지키는데 목적을 두었다.

집회와 시위를 막는 정치적인 의도도 있었다. 실제로 다차를 가진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금요일 퇴근해 부지런히 다차로 향한다.

다차에서 신선한 채소재배와 취미생활에 도취된 사람들은 집회나 데모에 참가하라고 노동자조합이 충동질을 해도 넘어가질 않는다. 그만큼 다차는 사회안정과 가족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차는 상류문화를 자연스럽게 심어주는 촉매 역할을 단단히 하는 대단히 중요한 캠프이다.

모스크바를 위시해 대도시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밤까지 유흥업소와 오락장이 문을 닫아 밤거리가 어둡다고 한다. 그만치 사회가 들떠있지 않고 다차로 떠났다는 증거이다.

현직에서 은퇴한 노인들은 가족과 떨어져 다차로 가서 농사일도 하고 가축을 기르며 건강을 위한 취미생활을 한다. 주말에는 가족과 만나 어울린다.

2004년 10월 현재 러시아인들의 국민 1인당 GNP는 약 3890$이지만 지하경제의 비중이 약 56%이므로 실질적 GNP는 8000$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다차에서 생산하는 과채류의 생산량은 같은 면적의 경우 일반농가에 비해 보통 3~8배까지 된다.

한국도 다차를 벤치마킹하여 ‘주말레저농원’ 생활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왔다. <사진=orphantree blog>?

러시아 전체 농산물 총 생산량 중 다차에서 생산되는 비중은 감자 83%, 양파 71%, 양배추 62%, 오이 58%, 당근 49%이다. 이들 농산물은 직접 소비하거나 이웃에게 일부 나눠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길거리나 시장에 내다 판다.

이 생산비율은 가족단위로 정성을 다해 정밀 농업을 한 결과로, 러시아 농작물의 광역 생산성과는 관계없는 수치이다. 말하자면 다차 가족의 근면성과 다차 영농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다차가 러시아인들에게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10% 미만이지만 경제 외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1. 주말에 다차를 다녀온 월요일에는 범죄가 전혀 없다. 이것은 자연친화적 생활과 근로정신, 검소한 생활의 효과이다.

2. 다차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친지나 이웃과 정의 표시로 나눈다.

3. 다차 생활의 정신이 사회전반에 긍정적 영향을?미쳐 러시아인들의 삶 자체가 평화롭고 생태계와 친환경적이다.

4. 어른들이 집을 비울 때는 홀로 남은 다른 집 자녀들을 위해 이웃집에서 다차에 적극적으로 데려가기 때문에 이웃간 화합이 특별하다.

결국 다차는?경제적인 면보다 경제외적의 영향이 훨씬 크다고 여겨진다. 러시아인들의 다차 생활에 의한 심성순화는 러시아 전체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의 많은 가족들이 다차에서?신선한 야채를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러시아사회의 문화예술과 견고한 사회연대가 있다는 것을?깊이 깨달아야 한다. 한국도 다차를 벤치마킹하여 ‘주말레저농원’ 생활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적인 운동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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