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86세 할아버지와 서른살 손자의 筆談

박상설 선생이 모처럼 댁에서 자료정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 샘골 레져 농원에 야외활동 워크숖 강좌를 개설하려고 자료를 작성중이어서 이번 주는 나의 손자와 주고받은 메일 일부를 보냅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메일로 글을 주고받으면서 제 자신이 배울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기회에 너무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아무나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없기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배우고 느낀 것을 제가 더 크고 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제 자신의 깊이가 너무 얕고 지식이 엷어서 금세 증발해 버릴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그저 겉으로만 흉내 내는 수준이죠. 제 자신의 깊이를 알고 나니 너무나 부끄러웠고, 또한 지금의 제 자신을 알게 된 것이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예전에 종로 서점에서 할아버지가 만나자고 하였을 때, 만나는 장소 또한 신선한 충격이자 놀라운 일이였지만, 그날 저에게 ‘심약하고 나약한 제 자신을’ 찾아서 볼 수 있는 말을 해 주셨었습니다. 그날 저는 쥐구멍이라도 숨어들어가고 싶었죠. 언제나 칭찬만 받으면서 속은 없이 포장만 되어온 제 자신. 너무나도 부끄럽고 한없이 잘못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사실이 아닌, 알고 있지만 남에게 숨기면서 아닌척하고 그렇게 덮어만 두고 살아왔는데, 할아버지께서 단번에 일침을 놓으시는 말을 해주셔서, 그날 뒤로도 많은 생각을 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제 자신은 아직도 나약하네요. 그렇지만 계속 변해가려고 합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 있을 것 같습니다. 추천해 주신 방법처럼 책을 많이 읽고, 또 읽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자연에서 뒹굴면서 느끼면서 또 생각해 보는··· 제 자신을 혹독히 단련시키면서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이전에 공부란 점수를 따기 위한 공부였습니다. 경쟁해서 좀 더 높은 점수를 따서 이기는 것만이 공부의 목표였습니다. 제 기술을 익혀서 취직을 하는 것이 공부였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공부란 한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의 의미는인생을 좀 더 고민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이해하고, 삶의 지식을 늘려 나가는 것이 더 큰 의미의 공부라는 것을요,

이 또한 지금까지 하루도 헛되게 보내지 않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도 공부를 계속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하는 인생의 모습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 얕고 부끄러운 제 인생의 깊이와 지식을 더 두껍고 넓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면서 놀립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며, 춤추며 인생을 즐기지 못하고, 심각하게만 살려고 하는 재미없는 인간이라고 놀립니다. 하지만 위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좀 더 깊고 의미 있게 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제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키우기 위해서, 그 시간에 뜀박질을 하면서 운동을 하여 제 체력을 키우고,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알려고 합니다.

이제 30살.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야 어른의 시작을 진짜로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 글을 쓰고 생각하면서, 할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천 해주신 책은 빨리 읽어보겠습니다.

Bravo! Bravo!

진솔한 글 참으로 멋 졌다. 장문의 글을 쓰기에 힘들었겠지만 그만큼 훨씬 변신했을 거야. 한 인간의 내면은 하나의 우주라고 할 만큼 다양하고 광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일상의 대화만으로는 부족하고 구심점을 잡을 수 없다.

반드시 글로 남기고 그 글을 또 수십 번 다시 읽고, 되씹어 보며 또 다시 생각해야 창조적인 문화가 자기 것으로 된다. 한 예로 나에게 보낸 글을 또다시 수십 번 읽고 몇 일 후 또 읽어 보아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다. 이렇게 거듭하며 사색 하는 가운데 ‘Life plan’ 이 구축되어 나간다.

책 읽는 것도 한번 읽는 것으로는 아무 효용이 없고, 같은 책을 최소한 5회 이상 읽어야 하고, 더 좋은 책은 10~20 번쯤은 읽어야한다. 그리고 고전을 많이 읽어야한다. 예를 들어 룻소의 <에밀>, <사회 계약론>, <인간 불평등의 기원> 등 잠깐 생각해도 이런 책들을 줄줄이 토해 낼 수 있어야해.

그리고 나에게 자주 글을 보내라. 이번 글을 보니 마음을 진솔하게 풀어놓는 것이 돋보이니, 내친 김에 꾸준히 글을 보내라. 그러면 차차 논리적이며 확고한 자신의 생각이 정리되면서 철학으로 내면화 된다. 이게 바로 인간의 ‘상부구조’를 견고하게 하는 기초다.

TV 보고, 술 먹고, 뽕짝 부르고, 노래방 가고, 외식 좋아하고, 사우나 가고, 잡담 하는 등의 ‘하부구조’ 즉, 인간의 살덩어리에 살찌우고 신경 말초적인 쾌락에 빠진 하류사회 인간들과의 확연한 구분 말이다.

외할아버지께

제가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작은 기쁨이라고나 할까요?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선배이자, 조언자이자 스승이며 멘토 입니다. 많은 시간을 가까이서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고 있으며, 존재감 만으로도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건 할아버지가 언제나 몸소 모든 것을 실천하며 보여주고 있음을, 제가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이모, 외할아버지를 보면서 자라온 환경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쁨이 크며, 자랑스럽습니다. 언제나 저의 대화에서 할아버지가 빠지지 않고 있어요. 내가 본받고 살아가고 싶은 하나의 지표이며, 아직 깨닫지 못한 많은 것을 알고 배우고 싶다고요.

매번 보내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핑계거리도 되지 않을 속세의 삶이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e메일로라도 한번 답장 안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제 자신이 매달 보내주시는 글을 보면서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항상 마음속에 할아버지가 저에게 큰소리로 외쳐주고 있어서, 말씀 해주신 것과 보여주신 것들을 잊지 않고 살려고 발버둥 쳐봅니다.

제가 글 솜씨가 좀 없죠? 외국의 유명 대학교에서는 글쓰기가 지성인으로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뽑고 있더군요. 하버드대서는 글쓰기 강좌가 필수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과목의 담당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네요.

그러고 훌륭한 사람들은 언제나 글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 글을 공유한다고 하네요. 할아버지도 그런 것을 알고 글을 써주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너무 감동이었습니다. 아직은 제가 너무 부족하고 서투르지만 하나씩 조금씩 변해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변하고 발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산을 모릅니다. 단지 몇 번의 캠핑을 따라 다녔고, 샘골에서 주말농장을 경험한 것이 다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추천해주셨던 ‘Green Tortoise’는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죠.

자연··· 정말 많은 이야기 꺼리가 있네요. 누구는 자연을 종교로 바라보고 있고, 누구는 자연을 과학으로 보지요. 또 누군가는 자연을 돈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자연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이 있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아직은 잘은 모르지만, 자연에 대한 느낌만 받고 있어요.

이제 30살이 되었습니다. 정말 그동안 철없는 몸만 어른인 아이였죠. 육체적인 경제적인 정신적인 독립 없이 어린아이로만 자라나는 요즘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자라왔던 것 같습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인생의 철학이 뭐 길래 그렇게 찾으려고 할까? 뭐가 중요하기에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실까, 하고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때 저에겐 인생이란 대학에 가는 것이고, 취직을 준비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던 아주 작은 소인배였죠.

사회 생황을 시작하고도 처음 1~2년 동안은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그냥 바쁘기만 했죠. 위사람 눈치보고 일 배우고··· 책도 많이 안 읽고 살았습니다. 단지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만 학교에서 배워오면서 살았습니다. 그게 다인 것처럼 학교 선생님들은 가르쳤었고 한국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잉여인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그런 게 다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죠. 불과 1년전 입니다. 어느 날 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앞으로도 계속? 정말 한 순간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말씀하며 보여주고 했던 모든 것들··· ‘아, 이거구나. 이래서 자신을 찾고 철학을 가지고 살라고 하신거구나’ 글로는 표현하기에도 벅찬 감동의 순간이었으며, 대발견 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으며, 30년 동안 모르던 것을 뒤늦게 깨달은 부끄러움이 교차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이모가 왜 그렇게 나를 보고 답답해했는지, 왜 한국 사람들의 문제점을 그렇게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는지, 왜 젊은이들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바로 가까이 옆에 있는 사람만 봐도 단지 술에 연명해서 왜 사는지 모르고 삽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또는 이상주의자라고만 보죠.

무엇을 느꼈냐고요? 글쎄요, 알긴 아는데 아직 그걸 글로 표현할 만큼 성숙하진 않았나 봅니다. 디자인에선 이런 걸 ‘Concept’라고 하죠. 디자인 아포리즘, 내 자신을 잃지 않는 것. 내 자신의 확고한 철학과 이야기(Story)가 있어야 인생을 의미 있게 바라볼 수 있음을···.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자본주의 우선이 아니라 왜 사는지, 어떻게 죽을 것인지가 우선이며, 죽음을 두려워 하는 자세보단, 죽음을 향해 두려움 없이 멋지게 달려가는 인생이라면 뭐든 못할 것이 없고, 시간이란 단지 고정관념이라는 것을요. 인생에 있어 늦은 것은 없고 영원한 것도 없는 것···.

어쩌면 인생에는 속세의 시간이라는 개념을 빼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아직은 이 정도로 변화를 느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공부해 나갈 겁니다. 요즘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삽니다. 머리 위에 책을 두고 잠을 잘 정도죠. 거의 매일 점심시간과 퇴근 후 회사 내에 있는 정보자료실(도서관)을 찾아가서 책을 봅니다.

주말에 책을 읽을 시간이 많음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처음부터 TV를 사지 않았죠. 원래 TV를 보지도 않았던 습관 탓에 관심도 없었습니다. 대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거실에 만들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토론도 합니다. 책을 읽는 것이 지금 저에겐 큰 도움이 되고 있고, 하나의 즐거운 취미거리가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가 가장 즐거운 대화거리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자연으로 가는 것, 자주 가보지는 못하고 있지만, 샘골은 저에게 정신적인 장소가 되어가고 있네요. 지금부터라고 저도 땀 흘려 일 좀 해야겠어요. 이런, 짧게 답장을 쓰려던 것이 너무 길어졌네요.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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