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산속 지나가며 옛일을 소곤거린다. 나를 지탱할 수 없게 괴롭혔던 어디엔가 있을 고뇌의 잔해들이 낙엽을 흩날리며 향연을 벌인다. 이제는 그 사연을 듣고 싶다. 나는 가을에는 오지 산골의 혼자가 된다. 바로 이거여야 하며 책과 들국화, 구절초, 지천에 널려있는 야생화가 나를 홀로이고 싶게 한다. 그리운 것들에게 다가서는 무기는 기약 없이 떠도는 것···.
혼자라야 멍하니 가을빛 쐬며 자유인 된다. 그림자 길게 그을리는 노을속 발길 닿는 대로 숲도 품고 들판에 뒹굴며 억새 비탈 들풀에게 하룻밤 노숙을 허락 받는다. 그들의 길 위 표정에서 나를 본다. 요즘 산엔 나뭇잎이 끊임없이 진다. 잎이 지는 이때가 그냥 좋다. 하지만 왜 좋은지 모른다. 곧 단풍이 물들고 모든 들풀과 나뭇잎은 사라져 갈 것이다.
나목(裸木)들은 제 몸에서 떨어져 나간 낙엽을 내려다보며 울고 있을까? 시원해 할까? 낙엽은 죽음으로 가득 찬 이별로 운다. 이것을 사람들은 가을이 깊어 간다고 한다. 가는 가을은 왜 다시 오지 않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나부끼는 갈대와 이름 모를 들풀 그리고 저 달빛은 알고 있을 것이다.
개(犬)의 개다움이 있듯 그네들의 그만의 것이 있을 뿐 모두 사람들의 착각인 것을 안들 무엇 하나. 그저 그들이 좋을 뿐. 어스레 노을 지는 하산 길목 풀벌레소리 와락 나를 덮치는 시린 마음 쓸쓸한 산을 본다.
이제부터 밤의 길이가 깊어질 것이다. 갑자기 차가워진 긴긴 밤을 견디다 못해 한잎 두잎 흔들며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욕망의 꿈을 접는다. 물들어가는 단풍과 꽃은 여전히 아름다운데 사람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삶은 힘든 사업이다. 인간들은 모두 저러하구나···.
곧 남쪽으로 떠날 철새들의 여행길을 사람들은 근심 않는다. ‘생각-사고’는 인간만의 것이고, 동식물의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동물은 행동 뿐의 생존이다. 사람과 동물은 생각과 행동이 서로 단절된 적과의 공생이다. 루소는 일찍이 불평등한 자연을 갈파하며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서술했다.
때로는 집을 버리고 야생의 자연에 눕자. 현대건설 정주영 전 회장의 C.F. “해봤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인간을 슬프게 하는 것은 밥벌이의 지겨움이 아니라 그것을 핑계 삼은 생활형 인간의 세속화, 그 천박함이다.
인생은 짧고 가을은 가고 무덤은 다가온다. 삶은 ‘가치들과의 투쟁’이다. 이 가을 ‘Simple life 성전(聖典)’을 끼고, 들판으로 나가 밤을 지새워 별을 세자. 들국화는 긴긴 가을밤 풀벌레소리 사연을 들으며 사그라진다. 들판의 황금물결이 인간의 촉촉한 시선으로 자기네들을 보아주길 흔들고 있다. 나만의 착각인가. 착각은 휴식이고 이완(弛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