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몸으로 실천하는 인문학
구순 바라보는 늙은이가 글을 쓰는 까닭
요즘은 인문학 강좌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인문학은 우선 인간 자신이다. 인문학의 언어 세계에 머물지 않는 인간탐구를 표출하는 일상어로서의 인문학을 말하고 싶다. 원론적 인문학은 순수인문학자에게 맡기고 ‘살아 숨 쉬는 삶에서 건져 올리는 실천하는 인문학강좌’를 새롭게 편다.
다양한 아웃도어 재미의 씨를 뿌리고 가꾸며 소꿉놀이 캠핑의 주말레저영농을 온가족이 함께한다. 노동으로 땀 흘려 행복해지는 목가적 생활을 몸 던져 뼈저리게 얻어내는 현장의 체험을 인문학에 녹여낸다. 아웃도어 생활의 풍경을 번뜩이는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여 보다 넓은 사회에 연대해 행복을 공유한다.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생활 현장에 살아 숨 쉬는 소재들을 자연과 사회전반의 다양한 현상들과 연계하여 인문학 이야기거리를 담아낸다. 책상머리 ‘인문학 위의(威儀)’보다는 생활전선의 애환이 뒤섞인 논쟁과 담론이 무성한 이야기는 어떤 장르로도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모닥불을 지피며 자아에 대한 꿈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감수성 잔치를 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인지할 수 없는 미지의 실제와 부딪히는 것이 인생이다. 이때 일상과 다른 근원적 인문학적 사유로 자기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새로운 체험을 통한 시각과 새로운 진술체계들이 자신을 실험하는 학문체계이다. 그래서 실생활을 통해 의문과 반란성을 근거로 문화결정론적이 아닌 문화자유론적 의지로 기술한다. 이론 체계와 자연풍경에 도취한 감동으로 구조적 세계를 나름대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새로운 시각의 창작을 펴낸다.
인문학을 입힌다는 것은 글쓰기의 전제다. 인간의 존재와 사유는 언어표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글을 읽고 그 맥을 자신의 것으로 읽어 내며 글 한 자락 쓰고 커피 한 잔 한다. 때로는 글을 쓰다 그 이상 끌고나가지 못하고 모두 무너트리고 갈기갈기 찢어버리기도 한다. 글을 잘 쓰려고 애쓰면 쓸수록 허우적거리게 된다. 글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러하다.
이럴 때는 내가 늘 산책에 나서는 집 가까이 찬바람 휘돌아 치는 퇴락하는 습지 길을 걷는다. 세상일을 버리고 오고가는 사람도 없는 조용한 가을 한귀퉁이를 밟는다. 그 발자국 잔해가 낙엽만큼이나 수없이 사라진다. 그렇다. 발자국 수만큼이나 생각을 지우며 무심하게 걷다보면 그만 시가 되고 글이 되는 길이 있다. 글은 이렇게 사람을 밖으로 내몬다. 그 재미로 나는 글을? 쓴다.
경험하고도 쓰지 못한 이야기라든가, 차마 할 수 없는 한쪽에 접어둔 이야기, 글재주가 없어 못쓰고 있는 이야기들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귓가로 눈앞으로 감각 곁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지나갔다. 이렇게 인생이 가고 세월도 가는데 연륜은 어디에 쌓이고 있는가? 책은 글을 통해 독자에게 알려주듯 내 가족들도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고 풍요로운 이야기거리를 안겨주어야 한다. 그 첫 걸음이 가족에게 ‘인문학을 입히는 이야기’ 잔치인 것이다.
각 지방마다 인문학 동호인 모임이 있다. 특히 거창은 옛부터 특색 있는 다양한 인문학 모임이 지역문학에 큰 역할을 해왔다. 요즘에는 고을문학을 넘어 전국규모로 영역을 넓히면서 높고 따스한 글밭을 일구며 큰 꿈을 쌓아 올리고 있다.
특히 서울의 인문학 상아탑 중심에서 맹렬히 활약하던 젊은 유망주 몇 사람이 화려한 도시의 문명을 버리고 과감하게 거창으로 귀농하여 흙과 뒹굴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인문학을 정신문화의 구심점으로 넓혀가는 봉사에 경의를 표한다. 그 사람 중의 일부는 학문 틀에 머물지 않고 자연과 함께하는 실천하는 인문학으로 발전하는 조짐에 나는 주목하고 있다.
그 사연은 이렇다. 오지 탐험을 하며 산에 가고 씨 뿌리며 캠퍼로 일관하고 있는 이 ‘올드 보이’를 거창의 인문학 회원들과 어울려 캠핑하며, 문학의 궤적을 남기자며 권유 해오는 마음이 바로 자연과 하나되는 실천문학을 향한 열망의 꿈일 것이다. 노병은 그네들과 같이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여생을 길 위에 나뒹굴며 글을 쓸 것이다. 나의 생은 지금부터이니까!!
나는 이미 사변적(思辨的) 인문학과는 사뭇 다른, 살아 숨 쉬며 움직이는 생물체처럼 원초적 행위 본능과 감각으로 실용적이며 생산적인 가치추구를 위해 산에 가고 호미질하는 일꾼으로 글을 가꾸어왔다.
이런 일을 해내는 수단으로 오토캠핑에 미쳐버렸고, 글재주도 없으면서 야지의 삶을 글로 남기기 위해 가당치도 않는 글을 조각 맞추듯 무던히도 고생해왔다.
이런 신상에 관련된 내용을 밝히는 까닭은 인문학을 배우려는 수강생들을 위해 전공한 분야가 다르더라도, 나이가 80이 넘었더라도, 하는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노력여하에 따라 인문학그늘에 기댈 수도 있다는 희망의 꿈을 안겨주고 싶어서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나는 언제 칼럼니스트의 목이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젊은 유능한 엘리트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오늘도 내일도, 90을 바라보는 나이에 늙는 줄도, 죽는 줄도 모르고 온 산하를 헤맨다. 머리로는 얻어내지 못하는 ‘자연 속으로’의 글 소재는 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흙에서 얻어낸 이야기거리를 사색의 풍경으로 손질해 우리마음 속에 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