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꿈은 이루어진다

[한 농부의 인생 이야기③] 철인 ‘조태진’, 흙에서 배운 기술은 계속된다

조태진 씨 농장 과수원 체리나무에 체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조 철인의 아들 조원경(36)은 유전자공학 박사가 되어 2012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다. 조 박사는 성균관대 건축공학과에서 건축과 조경을 복수 전공한 후 유전자공학 석사를 마치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2007년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아 귀국했다.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에서 ‘식물분자생물학 및 유전자조작 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다 젊은 나이에 서울대교수로 발탁된 것이다.

조원경 박사는 다른 교수들과 판이한 길을 걸어왔다. 서재와 연구실에만 있는 선비형 학자가 아니라 농촌의 빈한한 삶 속에서 농사일을 돕고 집짓는 건축공사 현장을 누비며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꿈을 이룬 기적의 전사다. 조 박사는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없는 미래가 촉망되는 용맹무쌍한 첨단과학자다. 그는 흙의 현장에서 초목과 함께 자랐고 누구보다 현장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길바닥 위의 행동하는 학자다.

조 박사는 아버지 조 철인이 농사 현장에서 얻어내는 농사기술을 실용적이며 인류에 도움이 되는 미래창조의 과학농법산업으로 이어주는 업적을 남길 것이다. 이제 이 한촌의 명물이 된 건물은 유전자농업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꽃의 전당으로, 치열했던 전투가 끝난 영광의 전적지로 기억되리라!

딸 조진경(33)은 어려서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어 관동대학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뮌헨대에서 식품공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수원 농수산대학에서 과수학과 석사과정 공부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초등학생 꼬마가 집짓는 인부로 동원된 지 25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공부에 열중하며 생태학적 유전자공학의 농사부문 발전에 마르지 않는 샘물을 퍼올리고 있다.

30년째 직접 기른 과실로 만든 잼

이쯤에서 조 철인과 부인 김향숙 씨의 모습을 들여다보자.

부인 조향숙씨는 그야말로 독일병정이다. 필자가 ‘독일병정’이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잠시도 쉴 새 없이 밭으로 과수원으로 집짓는 공사판을 누비며 억척같이 일을 해낸다.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하는 이중 삼중고도 겪는다. 요즘은 다행히 독신 여동생 김미정(48) 씨가 도와줘 큰 힘이 되고 있다. 미정 씨가 횡성시장에 낸 작은 가게에 농산품을 내다판다.

이렇게 고생을 겪으면서도 ‘독일병정’은 항상 면학하는 지성이다. 컴퓨터에서 농사기술정보와 농작물 판매를 위한 다양한 정보를 얻어 활용한다. 자녀의 인성교육과 자연중심의 열린 삶을 위해 아침형 인간에 동참한다. 조 철인은 자기는 무식하고 부인이 훨씬 교양이 많으니 부인과 이야기하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바쁜 핑계를 대며 빠지기 일쑤다.

30여 년 전 독일에서 수입한 체리, 푸름, 살구나무가 자라 매년 과실을 내니 부인이 잼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집에서 먹기도 한다. 그 맛은 시중의 상품과 비교도 되지 않는 명품이다.

지난 방문 때도 종류별로 4병이나 얻어왔다. 보물 취급하듯 빵에 발라 먹고는 있지만 음식을 넘어 독일의 풍미를 느끼는 기쁨이 야릇하다.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했을 때도 이런 자연 원형의 맛을 본 적은 없다. 조 철인 집에서는 독일에서의 습관대로 자주 아침식사를 빵으로 한다. 그런데 과수나무들이 겨울 냉해로 많이 상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부인에게 고생이 많았겠다고 말을 건네자, 말도 말라며 손사래를 친다. 한다면 하고야마는 남편의 고집 때문에 지독한 생활고를 이겨내며 집짓는 공사판에서, 밭에서 시달렸다고 털어놓는다. 왜 도망을 안 갔느냐고 농을 걸면, 조 철인이 가로막고 선수를 친다. “제 까짓게 나만한 게 또 이 세상에 어디에 있다고 도망을 가? 가봤자 금방 돌아올 걸!” 부인의 응수. “독일에서 이분을 만나 끌려오지만 않았어도 제대로 공부해 이 고생 안했을 텐데···!” 이 말은 모두 자식을 훌륭하게 길러낸 호사에서 하는 농담이다. 조 철인의 불같은 정열에 압도당해 온 식구는 이제 활짝 핀 희망의 노래, 땅의 노래를 부르며 수려 세기의 빛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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