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인습은 깨고 자연의 리듬에 맡겨라

[한 농부의 인생 이야기④] 철인 ‘조태진’, 그의 3층집 구조 해부

조태진 씨 가족이 25년째 짓고 있는 3층집.

틀을 깨고 이제껏 없던 이방인으로 일을 해치우는 철인 조태진 농부!

그를 보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와 나는 삶의 방식은 다르지만 그 속내는 같다. 내가 그에게 보여줄 것은 별로 없지만 그에게서 배울 것은 너무나 많아 그를 만나고 오면 그 약효가 1년은 간다. 그와 내가 어울리면 우리 둘은 완전한 다른 세상에 있다. 종행무진 의기투합하여 기존 인습을 망치로 때려 부수고 송곳으로 쑤셔대는 통쾌한 파괴자가 된다. 나는 그에게 중독되고 반해버렸다.

“삶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행동이다. 사과의 맛을 아무리 말로 설명해봐야 직접 먹는 맛에 비할 수 없다.”

한 인간의 진정한 삶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를 두고 사귀어봐야 한다. 비록 미완이지만 덩치 큰 3층집을 바라보며 속속들이 고생했던 회상과 앞날의 희망을 본다.

여기서 그 집의 규모와 기능을 살펴보자. 집 2층에서 곧바로 다이빙해 뛰어들 수 있는 큼직한 수영장도 파놓았다. 연구와 세미나에 몰두하다 마음 내키는 대로 풍덩 빠져 헤엄치게 하는 배려에서이다.

“우물을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현실세계와 학문세계간의 지식교류의 장으로?새로운 모델과 비전에 도전!”

그의 집은 북유럽의 게르만풍 요소를 지닌 고딕양식(Gothic Architecture)의 집이다. 독일 하이델베르그(Heidelberg) 라인 강변 언덕이나 바이에른(Bayern)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평화로운 그림 같은 집이다. 외관상 중후하고 육중한 느낌을 주는 안정감과 자연풍의 여백이 조화롭게 설계돼 멋스러운 풍경이다.

그처럼 생활이 어려운데도 집만은 비용에 관계없이 국제 수준급으로 짓겠다는 그 높은 안목과 열정이 놀랍다. 모든 건축자재는 견고하고 세련된 정품을 고집하며 특히 창틀과 창문은 독일에서 수입하고 내부마감재 목재는 스웨덴 원목을 확보해 놓았다. 방이나 거실에도 도배를 하지 않고 벽돌 무늬 그대로 노출시켜 단순-원색-자연미의 소박한 공간으로 꾸몄다. 방문자가 그 집의 고풍스러운 페치카(러시아풍 난로)를 보게 되면 은은하게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서 커피 한잔 들며 톨스토이의 인생론 책을 펼치고 싶을 것이다.

남의 이야기 따위는 관심 없어

그는 밥벌이의 지겨움을 넘어 허무를 껴안은 당당한 철인이다. 이쯤에서 조 철인의 면모를 보자.

왜 조 철인이 좋으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그냥 좋아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조 철인은 소탈하고 군더더기 없는 직설적인 말로 주위를 사로잡는다. 거칠고 그냥 내뱉는 소리인데 어긋남이 없는 진정성에 끌린다. 수식어를 쓰지 않고 주어와 동사만으로 정곡을 찌른다. 그는 늘 일에 파묻혀 말보다 행동이 앞선 소처럼 사는 사람이다. 잠시의 시간도 아까워 잡담이나 남의 이야기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맑고 꾸밈없는 자연그대로 옛 농부 모습이다. 나는 나태해질 때마다 그를 연상하는 버릇이 있다.

그가 세상을 뒤집어 놓을 듯 황당한 말을 할 때는 참으로 통쾌하다. 그의 외양은 꼭 과거 박치기 레슬링 선수로 유명했던 ‘김일 장사’를 닮았다. 강인하고 다부진 체력에 만사를 꿰뚫는 듯 날카로운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그의 풍모는 꽉 찬 듯 비어 있고, 단호한 듯 온화하다. 특히 내가 그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소신이 당당하고 무쇠 같은 고집쟁이라는 점이다.

그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번개 같은 육감으로 가려낸다. 그러고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마음에 들고 흐뭇하면 그 인연과 의리를 철통 같이 이어간다. 마음에 안 들면 단칼에 버린다. 그는 그만의 소신이 대단하다. 보편과 상식, 객관을 걷어치우고 자신의 편애와 믿음을 향하여 매진한다. 자신에게서 우러나오는 영감에 늘 귀를 기울인다. 그는 늘 생각에 잠긴다.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농사일을 하며 작물과 독대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에게는 외롭다든가 고독의 지루한 시공이 어울리지 않는다. 지루한 시간에 고뇌하고, 고독한 시간에 갈등한다. 때로는 모진 고통 속에 자신을 몰아놓고 응시한다. 그리하여 자기를 버린다.

그는 전략가이다. 삶을 관통하는 일관된 자세로 남과의 조화를 위해 심리적 전략을 도출한다. 여간해서 그 속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통속을 뛰어넘는 달관과 담대하고 침착한 천성이 도(道)를 다스렸다. 절벽에 몰리면 혼자 고뇌하고 삭혀가며 때를 엿보아 살길을 찾는다. 그 모진 고통의 인내는 그가 아니고는 절대로 감내하지 못 하리라!

기존에 주입된 모든 이데올로기와 길들여진 틀을 깨고 자유인, 자연인의 길을 걷는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것들로부터 살아 있는 가치를 스스로 깨우쳐 배우고 생명의 자연리듬에 맡겨 산다.

본래 인간은 수 백 년에 걸쳐서 자연의 질서와 합치되는 삶을 살아왔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 자연의 리듬과 조화시킬 때 조작되지 않은 자연풍의 삶이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길들여진 것들을 비판 없이 따르기만 한다면 그만큼 우리는 제약 속에서 구속 받게 되는 것이다. 그와 나는 끈질기게 이 길로 나아갈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