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적막한 밤에 영원을 생각하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 속에 이런 글이 있다.
‘누구를 위한 ‘나’인가. 나는 지금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 어린 아이들을 위한 나였던가. 내 아내를 위한 나였던가. 내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살아왔으며, 이제부터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또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만 산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내가 온통 누구에 의해서만 살아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를 위해 산 것이지 무엇이냐고 해버리면, 속이 시원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선명하게 풀려질 것 같지도 않다.’
오늘 하루 내가 왜 살아 있고,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허무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면 이 초라한 몸뚱이가 참으로 미워서 못 견딜 지경이다. 도대체 사람이란 것이 무슨 필요로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내가 나를 위해 살았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다. 더욱이 내가 누구를 위해 살았다는 것은 더욱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다.
내가 나도 남도 아닌, 그저 그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자연의 뜻을 받드는 것이 된다고 할 것이면, 여기 산다는 것이 의미를 갖게 된다. 의미를 가지고 산다, 의미가 있게 산다, 그 다함이 없고 끝이 없는 하늘의 뜻을 받들고, 자연의 뜻을 받들어 사는 것이 나의 삶이라고 한다면 나도 정말 살아가는 보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나도 또 삶을 뜻 없이 허비해 버린 것이 아닌지? 허구한 세월 그저 그렇게 저 푸르른 창공을 더듬어 살아온 것이 아닌지? 살아야 한다는, 정말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강요된 숙명일 바에는 이 시간에 굳은 의지를 다시 새롭게 해야 되겠다. 자연의 뜻을 받들어 살아가자고, 꿈을 안고 인생의 기지를 크게 펴보는 것이다.
고요한 밤이다. 적막이 끝없이 흐르는 깊어가는 밤이다. 시간이 영원에 맞서다가 차마 견디지 못하고 넘어져 버린 고요하고 쓸쓸한 밤이다. 시간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밤을 통해 영원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시간은 멈추고,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오로지 순수하게만 생각되는 밤이다.
비록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이 영원의 문 앞에 서서 다시 옷깃을 여며 본다. 잠시 끼었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이, 잠시 빛나고 사라지는 아침 이슬과 같이, 순간에 매여 허덕이는 하루하루의 생활이 내게는 너무나도 힘들고, 허무하다. 땀을 흘리고 애를 태운 일들도 모두 순간만을 위한 것들, 세월과 더불어 무너지고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일들뿐이었다.
다른 것들과 대립되거나 비교되는 조건 위에서 이루어지고, 생기는 일들은 모두 변조되고 사라지는 일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