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깐돌이’ 나라

Cyber web에 실린 세계에서 작은 나라, 10개의 나라를 보며 나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괄호 안 숫자는 인구 수)

<1.바티칸 시국(900명) 2.모나코 공국(36,000명) 3.나우르 공화국(9,500명) 4.투발루 공화국(12,373명) 5.산마리노(30,167명) 6.리히텐슈타인(34,761명) 7.마셜 제도(65,000명) 8.세이셀(87,476명) 9.몰디브 공화국(396,334명) 10.세인트 키츠데비스(49,100명) ‘깐돌이 나라’

나는 인구 한명의 샘꼴 레저농원의 ‘자유인+자연인’ 나라사람입니다. 면적은 1,000평이고 장소는 오대산 국립공원 북쪽에 위치한 광원리 산1번지 1,500만평의 대한민국 국유지 경계선에 알박기한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입니다.

국체는 왕국이니, 민주공화국이니, 공산국가니, 사회주의국가니 하는 복잡하고 자유 없는 구조적 국체가 아니라 Anarchism의 Lawlessness를 국체로 하는 ‘Anarchy+Bohemians’ in Paradise 노동을 먹고사는 레저나라입니다.

나의 사회적 지위코드는 ‘노숙자’ ‘자급자족’ ‘독립적 생산자’ ‘뜨내기’ ‘고독의 위로’ ‘숲에 길을 묻다’ ‘자연에 미친 노인’ ‘주말이 수도 없이 많은 卒翁’ ‘거지여행’ ‘제로 스트레스 달인’ ‘가슴이 시키는 걷기’ ‘동해안 양양에서 서해 강화까지 뚜벅뚜벅 걷는 白痴翁’ ‘서바이벌의 야망’ ‘모험과 도전의 반항’ ‘문명에 대한 조롱’ ‘인간 공장에 대한 냉소’ ‘자연주의 맹종’ ‘지구는 하나지만 세계는 만들기 나름’ ‘자연인 & 자유인으로 살고 죽기’ 때론 광풍질주하고 또는 싱그럽게 안식의 시간을 반추하는 소박한 일상의 풍경을 그립니다.

그리고 등산화 끈을 매며 “아아!! 이제 출근이다!! 어디로 갈까? 출근? 나는 세계로 출근한다!!”라고 중얼 댓습니다. 몇 일전 나와 지면이 있는 젊은이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외국에서 길을 잊으면 어쩌려고요?” 깐돌이··· “‘지구위에 있지’ 어디에 있어!!” 하였습니다.

내가 꿈꾸는 꿈

내가 바라는 꿈은 무엇일까? 노인에게도 꿈이 있을까? 나는 인생의 후반전이 아니라 골인 선상에 있다. 슬픔도 기쁨 되는 꿈을 알고 싶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내 마음을 함께 싣고 다니는 조그마한 캠프이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고통과 기쁨을 나눈다. 캠핑이 다름 아닌 나의 고향이다. 고향은 흩어진 나의 꿈을 마무른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다. 늘 꿈과 함께 흘러간다.

인생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꿈을 좇아가는 여로이다. 캠핑은 여로의 도구이다. 캠핑에 꿈을 싣고 되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이 아닌 자연에 맡겨 꿈이 되는 것이다.

노숙을 하기에는 나이가 지나치게 많고 미래의 꿈보다는 지난날의 회상에서 기쁨을 찾을 나이지만 나는 줄곧 캠핑의 꿈을 앞날에 바친다. 꿈에 꿀맛 보듯 늙는 줄도 모르고 지나친 꿈들을 다시 꿈꾼다. 초라한 캠프는 이 늙은이의 꿈을 읽어줄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변화를 뜻하고 늙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없을 때 끝나는 것이다. 꿈이 없는 것은 실패를 꿈꾸는 것이다. 행운은 있는 법, 그러나 그 행운은 요행을 바라지 않고 꿈을 향해 힘껏 뛴 사람을 위한 꿈의 보상이다.

사소한 안락의 휴식이 두렵다. 꿈을 이야기하지만 꿈은 안락 하고자하는 자기를 타자화하는 부류이다. 삶에는 정지가 없다. 자리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피동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흔들 때 인생을 실험하고 꿈을 희망하며 또 다른 꿈을 향해 실험한다.

그래 꿈은 실험이다. 詩人들은 꿈을 실험이라 하지 않고 환상으로 꾸몄다. 자아는 늘 理想을 향해 달린다. 닿을 수 없는 무지개를 헤맨다. 무지개를 꿈이라고 한다. 허나 무지개는 광의 프리즘 합성색채일 뿐 우리가 원하는 소망의 꿈은 아니다. 안락의 휴식은 없다.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고통의 근원은 인정 받고 싶어 하는 자연적 욕구와 의식적 욕구가 주범이다. 이것은 상대적 빈곤감에서 받는 고통의 가중치이다. 한편 소통이니 공감의 시대라며 사회적 화해를 내세운다. 꿈은 이 틈바구니에서 갈등한다.

삶을 깊게 들여다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인정받고자하는 욕구의 연속이다. 이 욕구를 꿈이라고도 하지만 이미 사회에 형성되어 있는 사회구조자체가 개인의 삶의 꿈을 암묵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그래 나는 나만의 꿈꾸는 캠퍼가 된 것을 ‘내가 꿈꾸는 꿈’이라고 하였다.

내가 꿈꾸는 캠퍼의 불꽃!! 깐돌이 박 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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