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속으로] “저렇게 사는 게 참다운 인생인데!”
[한 농부의 인생 이야기①] 철인 ‘조태진’, 자연 속에서 자유인이 되다
여기 한 농부가 있다. 톨스토이나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은 아니라도 오직 땅만 파며 생의 불꽃을 지피는 농사꾼이 있다. 그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그가 도달한 침묵의 가치를 글로 싹 틔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을 인내하며 구원의 길을 걸어야 하기에 그 농부의 삶을 엿보는 여행길을 떠난다.
그의 이름은 조태진이다. 강원도 횡성에서 농사일을 하는 68세 농사꾼이다. 그를 보면 나의 허술함에 주눅이 든다. 한편으로는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진한 몸에 힘이 솟는다.
나는 그에게 ‘조 철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는 독일 국민들의 근면절약과 합리적인 생활양식을 보여줬다. 몸과 마음의 풍요는 자연을 섬기는 심오한 사유에서 온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어느 날 눈을 번쩍 떴다. 자신의 빈자리를 자연이라 부르며 아득하기만 했던 자유인으로 운명을 바꾸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조 철인은 한양공고 건축과를 졸업한 몇 년 뒤 유도 강사로 독일로 갔다. 부인 김향숙(59) 씨는 인천 박문여고를 졸업하고 유학차 독일로 갔다. 당시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둘은 독일에서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났고 한국에 돌아와 결혼하게 된다.
조 철인은 유도강사로 독일에 갔지만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독일인들의 사고방식과 사회 분위기는 한국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한국에서는 운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공부를 포기하지만, 독일의 프로운동선수는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운동을 공부를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 그리고 직업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과학적으로 체계화된 학습훈련에 몰입한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유능한 엘리트들이 선호하는 전문 직종이 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자극 받아 유도를 집어치우고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다른 길이란 ‘과수와 농작물을 재배 연구’하는 유전공학연구소에서 작물을 키우는 현장 일용노동자로 일하게 된 것이다. 조 철인은 이곳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인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소박한 생활과 인생에 대한 진지함을 느꼈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보며 숲을 그리는 사람으로 바뀌어 갔다. 생을 즐기는 여유와 공공질서 준수, 사회에 기여하는 평화로운 삶은 조국과 사뭇 다른 것이었다. “아~ 저렇게 살아야하는데. 저렇게 사는 게 참다운 인생인데!” 하며 연민했다.
그리고 시간을 금쪽같이 아끼며 두려움 없이 모험을 마다않는 성실하고 정직한 모습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아이는 4~5살이 되면 일상생활부터 자립교육이 시작된다. 먹고 입고 자는 일을 스스로 해야 하고 부모는 옆에서 지켜보며 말로만 거들어준다. 집안정리를 깨끗이 하기로 이름난 독일인들인데도 아이가 주위를 어지럽히는 것을 참아가며 자립심을 길러준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제일로 삼아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일을 찾는다. 전 국민이 10세 전후에 생의 진로를 미리 결정해 그 길로 간다. 18세가 되면 성인이므로 예외 없이 남녀불문 부모 집을 떠나 사회시민, 세계인으로 혼자서 일어선다.
한국처럼 자기 자식 능력은 가늠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전 국민이 일류학교 진학에 목숨을 걸고 매달려 소모전을 벌이는 일은 없다. 그러한 의식 구조의 수준 차이를 보며 부끄럽고 한숨이 나온다.
“아침에 깨어 어제와 같다면 죽어버리리”
조 철인은 노동자로 일하면서 유전공학식물학자들의 연구태도와 삶을 들여다보았다. 세계적인 학자들의 집요한 연구열과 인류문명에 공헌하는 문명의 꽃을 본 것이다. 그는 비록 유전공학을 배우지 못해 흙에 뒹구는 한낱 일꾼에 지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던 식물들이 싹을 틔우며 땅에서 솟아오르는 생명의 오묘함에 푹 빠져들었다.
‘식물분자 생물학’, ‘유전자 조작’ 등을 통해 종자를 개량하고 병충해를 예방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기초과학 분야 교수들의 연구를 조 철인은 노동으로 도우며 기술을 실질적으로 몸에 익히게 된다.
<식물 분자생물학 및 유전자 조작연구>란 무엇인가?
식물의 내병성, 내충성, 내재해성과 관련된 유전자를 분리 추출 한다. 기관 특이적 유전자, 신호 전달에 관련된 유전자 등을 분리한다. 이 유전자들의 발병조절기작을 밝히고 작물생명 현상의 본질규명과 함께 내병성, 내충성 등 내재해성 형질전환작물을 구축한다. 최종목표는 작물의 생산성 및 품질향상에 기여한다. (발췌자료)
그는 결심했다. 과수와 농작물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지금까지의 틀을 깨버렸다. 살아온 삶의 진로를 하루아침에 단칼로 바꾸었다. 결혼 뒤에 이뤄질 삼과 자녀를 키우는 먼 미래의 설계도를 미리 완성하고 한 세기를 내다보았다.
나는 ‘조 철인’을 떠올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허구와 사실을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그걸 걱정하지 않는다. 거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사람들은 본질과 현상은 잘 구분하면서도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 철인은 적당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아예 배우지 못했다. ‘슬로건’ 같은 것은 더더욱 만들지 못하며 모순에 눈을 감지 못한다. 땅에 씨를 뿌리면 싹이 난다고 믿는 것 말고는 믿지 않는다. 한다면 하는 고집과 자기 삶을 자기가 책임지는 것 외에는 모른다. 그는 자기에게 이렇게 시비를 건다. 아침에 깨어보니 어제와 같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선진국이 300~400년에 이룩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우리는 40~50년 만에 이뤘다. 하부구조인 경제와 산업화에는 겨우 끼어들었지만,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인문학적 사조를 가정의 상부구조로 일상화하기에는 아직도 요원하다. 문화는 흉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월반이 없다. 자각된 문화생활이 우러나오게 하려면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탁월한 안목으로 넓은 세상을 향해 도전해야 한다.
조 철인은 나중에 조국에 돌아와 유기농법으로 종자를 개량하는 생태적 농사를 벌였다. 국회의원이나 애국 말하기를 좋아하는 무리보다도 노동하는 고난이 애국공헌의 풍경임은 지당하다. 그는 자신을 ‘일꾼’이라는 외마디로 증거하며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헤쳐 나간다. 가장 빈곤한 맑은 가난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줌의 흙을 움켜쥐고, 나무여! 곡식이여! 물이여! 자연이여! 사랑이여! 모든 인류가 열망하는 드높은 미래의 식량전쟁을 ‘유전자공학으로’! 하며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