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생강나무 향’서 쇼펜하우어를 발견하다

오늘의 병든 물질문명을 생각하며,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행동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살랑 봄바람에, 생강나무 꽃 향이 산골짝을 진동시키는 이 즈음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 하나가 산과 그 언저리에 사는 생태계에 눈을 뜨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겨울의 끝자락인 이른 봄날 깊은 산에 들면 온통 나무들은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유독 노란연두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점점이 꽃이 달려있는 나무를 만나게 된다. 생강나무다.

시골마을에서 가끔 눈에 띠는 산수유 꽃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흡사하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데 작은 꽃가루가 가지에 총총히 붙어 핀다. 꽃이 예쁘거나 화려 하지 않고 수수하고 소박하다.

그런데 산수유 꽃은 향이 없는데 생강나무 꽃은 신기하게도 연한 생강향을 낸다. 보라, 그 향기가 얼마나 그윽하고 싱그러운지!

나는 해마다 3월에 들면 생강나무 꽃 향이 그리워 안달이 난다. 3월 첫째 주 산행에서 기어코 좁쌀알 만한 꽃망울을 만났다. 아직은 꽃이 어려 향이 없다. 그 다음 주 또 달려갔다.

생강나무 군락지를 찾아 향수축제를 마음껏 벌였다. 오묘한 향기에 취해 어찌 할 줄 몰라 했다. 이런 재미가 산골에 있다니!
산에 들어 잘 살펴보고 귀 기울이고 냄새 쫓으면 늘 새 소식이 온다. 모든 것이 새롭고 처음 보는 것처럼 아기 눈이 된다.

매번 새로운 꽃, 새로운 풀잎, 새로운 나무를 만나게 된다. 하도 많은 식물들이라서 여러 번 만난 사이인데도 이름을 도무지 알 수 없어 애를 먹기 일쑤다. 가끔은 식물도감을 뒤져 새 친구를 얻는다. 우리 일행 중에 한 예비역 장군은 산에 들면 모든 나물 약초에 조회가 깊고 웬만한 나무의 이름도 척척 박사다. 나는 늘 생각한다. ‘그래야만 하는데’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하여는 먼저 심성이 바라야 된다는 것을 늘 깨우친다.

생강나무 꽃이 지면 진달래 꽃으로 봄이 절정에 이르고, 나무 잎 새가 푸릇푸릇 돋아나고 어느새 철쭉꽃 질 무렵에는 여름 문턱에 이른다.

이렇게 꽃피는 계절의 질서가 손님으로 와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
하지만 산행에서 마냥 즐거워하는 중에 나는 생뚱맞게도 “곧 추석이 올 거”라며 어깃장을 놓았다. 참으로 덧없는 세월이고 놓치기 싫은 봄이며 꽃들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자리가 있고 우리 삶과 어떤 형태로든지 연관되어진 자연이 가르치는 길을 거역할 수는 없다.

나는 앞으로 3번의 생강나무 꽃 향을 맡으면 90세가 된다. 나의 욕심은 90세는 채워야 하는데 하고 어제도 오늘도 늘 산에 있다.

지친 나그네를 위로하는 해맑은 새소리에 상념 잊고, 봄의 산골짝은 새소리로 생기가 넘친다. 봄의 새는 쉴 새 없이 짖어대며 짝을 찾아 둥지를 튼다. 새 소리만 들릴 뿐 여간해서 눈에 띠지 않는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는다. 단순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는 새가 있는가 하면 현란한 다양한 소리를 내는 새도 있다. 그 중에서도 끊일 듯 이어질듯 애처롭게 이어지는 가냘픈 소리에 심금을 울린다. 새는 나뭇가지나 잎을 물어다 둥지를 튼다. 높은 나뭇가지 사이에 집을 짓지만 그래도 폭풍우에 견디어낸다. 새는 행복하다. 자유롭게 날고 마음대로 먹이를 낚는다.

끊임없이 일해야 하고 그것도 일거리가 없어 백수로 헤매야 하는 우리네 인간. 하지만 저 새들은 놀듯 살면서도 돈이나 밥, 자식 공부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겠는가! 산에 들어 가끔 이렇게 부질없는 푸념도 해본다. 새는 인간보다 높은 차원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 (범우사 발행, 212쪽)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동물이나 식물을 보면 금새 마음이 밝아지고 저절로 즐거워진다. 특히 개와 자유를 얻은 모든 동물, 즉 새나 곤충 같은 것, 그리고 수목을 봤을 때 그렇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인간을 보면 거의 언제나 혐오를 느낀다. 왜냐하면 약간의 예외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다 가장 서투른 그리고 가장 흠이 많은 실패작···. 추한 육신과 천한 욕정과 속된 야망, 온갖 어리석음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는 외모와 부자연스럽고 타락한 생활에서 오는 천박하고 횡포한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그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자연의 품에서 동식물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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