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보내며] (3) 구순 박상설 캠핑호스트 “실험은 끝났다”

“꿈에서만 그리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실천을 해야지”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국민행복 프로젝트’의 초벌그림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고통과 즐거움을 같이하며 ‘새로운 공동체로 가는 국민행복의 길로 구상된 것이다. 실험은 끝났다. “이불 속에서 활개 치는 어설픈 백년하청, 백가쟁명은 가라.”

나는 종종 내게 묻는다. “사르트르는 서재를 박차고 왜 군중 속으로 들어갔는가? 피에르 부르디외는 왜 프랑스 지배계급의 문화적 권력양상과 형식주의를 고발하는 군중집회운동을 하였는가? 아인스타인은 반핵, 반전 데모에 왜 앞장섰는가? 대문호 괴테는 1년9개월간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어떻게 불후의 명작 <이탈리아 기행>을 썼을까?”

강원도 홍천 오대산 북쪽 자락 북한강 발원지 중 하나인 샘골에 ‘캠프나비 주말농원’이 있다. 계곡 물소리를 좋아하는 나는 이런 언저리에 자리를 잡는다. 비닐하우스 농막이 작은 밭과 숲 사이에 뒤섞여 해발 600m의 고랭지의 청정한 오지산골에 숨어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는 47년간 한결같이 주말에 농원에 달려가 텐트생활을 하며 밭을 가꾸고 산행을 한다. 숲과 길에게 삶을 물고, 국내외의 오지를 떠돌아다니며 길섶의 천덕꾸러기로 살아간다.

미친 듯이 거리로 나가 약장사나 서커스광대처럼 한판 벌리는 것이다. 올 가을엔 거창고와 거창중앙고 운동장에서 <아시아엔>과 <매거진N> 깃발 아래 노숙하며 전교생과 젊은 학생들과 뒹굴며 놀았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할 정도로.

아시아엔에 연재되고 있는 ‘박상설의 자연 속으로’ 칼럼 덕분이란 걸 나는 안다. 올 가을 초엽 아시아엔에 연재된 글을 바탕으로 나는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책을 출간했다. ‘국민행복프로젝트’를 목표로 언론의 벽을 넘어 학교로, 기업체로, 군대로, 제도권에서 소외된 후미진 곳으로 오늘도 달려가고 있다.

책이 나오자마자 독자들이 내게 사인을 받기 위해 먼 곳까지 달려온다. 홍천 샘골농원으로, 거창고와 거창중앙고로 1000리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노숙을 하고 있는 나와 얼싸 안는다. 책에 사인을 하려고 펴보니 깨알 같은 메모와 밑줄을 그으며 읽고 있는 게 아닌가? 90을 바라보는 이 노인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독자들은 나에게 연신 질문을 해대고 나의 캠핑장비를 낱낱이 풀어헤치며 메모를 한다. 장비 사용법, 기능, 가격, 브랜드까지 기록을 하는 거였다.

독자 가운데 환갑을 갓 넘긴 김영근씨는 즉석에서 무슨 일이든 당장 해치우는 통쾌한 행동가다. 그는 시사 문제에 대하여 모르는 게 없는 놀라운 정보통이다.

소설이나 영화만큼 가슴 짠한 사연도 있다. 거창에서 가을비가 내리는 찬바람 속에 운동장에서 캠핑을 감행한 후유증으로 악성감기에 걸려 몸을 가누지 못했지만 죽기살기로 강의를 마쳤다. 초죽음이 되어 저녁을 맞았는데 난데없는 전화가 날아들었다. 작년 2월 중순 추운 날씨에 거창의 한 농촌비닐하우스에서 “마지막 스승은 나를 산에 버리는 것이다”라는 제목의 내 강좌를 들은 분의 전화다. 김수경이라는 여성이 내 책 100권을 구입해서 “CEO 지인들에게 선물을 겸해서 ‘스터디그룹-살롱활동’을 하려는데 책이 품절돼 출판사에 신청해 놓았다”며 “책이 도착하면 사인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회사인데 책을 100권이나 산다는 말인가? 작년에 받은 명함을 찾아내서 인터넷에서 김수경CEO의 프로필과 SLS Company Co., Ltd를 검색해 봤다. 그리고는 서명과 함께 이런 글귀를 미리 지어놨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육지를 떠도는 삶은 고통스럽고 행복합니다. 고난과 희망을 껴안고 헤쳐 나가는 정열의 ‘에스파냐’ 旅心의 女心!! Agora의 완성도 높은 향연! 사업과 인문·예술을 아우르는 고품위의 사교문화 Salon은 저자와 심오한 담론으로 꿈을 이룹니다. 그리하여 일과 삶 사이에 지성과 자연의 사치로 여백을 즐깁니다. Fair, Real, Fun 경영을 모토로 하는 ‘SLS’ Modernism의 Bravo! 2014년 10월17일 박상설”

내가 꿈꾸던 세상을 실천하고 있는 분들을 발견한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리라. 꿈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꾸어야 실현된다고 했다. 저물어가는 갑오년, 아흔 노인 박상설의 지난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새삼 발견하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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