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보내며] (2) 김덕권 원불교문인회장 “행복하려면 꼭 용서하세요”
2014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세밑에선 지난 1년 동안 나와 인연을 맺은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고마운 분, 서운한 분. 즐거운 일, 슬픈 사연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나는 연말에 해야 할 일 가운데 용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용서는 나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주는 걸 말한다. 배신자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더 불편하다.
야망이 있는 한 젊은 회사원이 있었다. 이 청년이 회사에서 수억원의 공금을 빼돌려 달아날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이런 사실이 곧 적발되었다. “모든 것이 사실이냐?”는 사장의 질문에 젊은이는 “그렇다”고 답했다. 젊은이는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받아야 할 법적 처벌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장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내가 자네를 용서하고 지금 그대로 일하게 해 준다면 앞으로 자네를 믿어도 되겠는가?” 순간 젊은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물론입니다, 사장님!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사장이 “좋네. 나는 자네에게 조금치의 책임도 묻지 않겠네. 가서 일하게”라고 했다. 돌아서는 젊은이에게 사장이 말했다. “참 한 가지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네. 이 회사에서 유혹에 넘어갔다가 관대한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네가 두 번째야, 첫 번째 사람은 바로 날세. 한때 나도 자네와 같은 짓을 했지. 그리고 자네가 받은 용서를 나도 받았다네. 잘못을 회개하고 용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해 나는 사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네.”
용서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용서를 하면 우선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한 인간의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있다. 특히 세 가지 이유에서 그렇다.
첫째, 분노와 미움은 독이 되어 자신을 해치게 된다. 용서의 길을 몰라서 화병(火病)이 들어 죽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지독한 미움이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다. 하버드대의 미틀만 박사 연구에 따르면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심장마비를 일으킬 위험이 두 배나 높다고 한다. 화를 내는 것이 생명의 단축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여러 실험 결과로 입증되고 있다.
둘째, 용서해야 속박에서 자유로워진다. ‘용서’라는 그리스어 단어를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자신을 풀어주다, 멀리 놓아주다, 자유롭게 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상처가 영원히 아물지 못하도록 과거에 매달려 수없이 되뇌이며 딱지가 앉기 무섭게 뜯어내는 것이 ‘원한’이다. 용서를 통해서 ‘치유’ 받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자’다. 진실한 용서는 속박을 벗어나 자유를 준다. 용서를 하고 나면 자기가 풀어준 ‘포로’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셋째, 용서는 죄의 악순환을 끊는 길이다. 용서는 서로가 사는 상생의 길이다. 용서만이 복수와 원한의 사슬을 끊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게 한다. 용서하기 전에는 두 개의 무거운 짐이 존재한다. 즉 한 사람은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한 사람은 ‘원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그 두 사람을 모두 자유롭게 해준다.
예로부터 “훌륭한 정승이란 사람을 잘 쓰는 데서 비롯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것은 일을 잘 되게 하는 것도, 그와 반대로 일을 그르치는 것도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옳게 보고 적재적소로 등용하면 만사는 잘 되어가는 법이다.
진(秦)나라가 망하고 초(楚)나라의 패왕 항우와, 한의 유방이 천하를 서로 빼앗으려고 싸울 때다. 한신이라고 하는 숨은 인재가 있었다. 한신은 처음 초나라 군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자기가 훌륭한 전략을 세워도 항우가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않자 한나라 군대로 갔다. 그러나 한의 유방한테서도 자기 실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좀처럼 마련되지 않았다. 한신이 겨우 군량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았을 때, 우연한 기회에 정승인 소하에게 비범한 재능이 인정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한나라 군대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많은 병사들이 도망을 쳤다. 이때 한신도 자기 능력에 비해 낮은 직책에 불만을 품고 도망을 쳤다. 그런데 정승 소하가 뒤쫓아 와 한신을 데려갔다.
이 말을 들은 유방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무엇이, 한신을? 이때까지 도망친 장군이 10여명이 넘는 형편인데, 경은 그래 그 한 놈만을 찾아서 쫓아갔단 말이요? 그 이름조차 모를 한신을 그렇게 했다는 것은 곧이 들리지 않는데 거짓말은 아니오?”
소하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도망간 장군들과 같은 인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이름도 없는 한신이라고 하셨으나, 그것은 한신을 알지 못하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한신으로 말하면 지금 이 땅에는 둘도 없는 인물입니다. 대왕께서 지금의 영토로 만족하시려면 한신이 필요치 않겠으나 만약 동방으로 진출해서 천하를 다스리시려면 한신의 전략과 전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신을 용서하고 중용을 하시지요.”
한신은 유방에게 용서를 받고 대장군이 되었다. 한신의 영재(英才)는 이때부터 발휘되었다. 바로 용서의 위력이다. 용서야말로 사람의 능력을 옳게 발휘하게 되는 열쇠가 된다. 열 번 백 번이라도 용서하는 사람이 대인이고 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