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와이로(뇌물)’ 유래를 아시나요?

‘와이로(わいろ)’와 ‘사바사바(サバサバ,)라는 말이 유행하던 적이 있다. 무슨 일이든 공무원을 상대하려면 이 ’와이로‘와 ’사바사바‘의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일이 잘 돌아가지를 못했던 시절 얘기다. 이 와이로는 회뢰(賄賂) 또는 뇌물(賂物)의 일본어 발음이다.

우선 ‘사바사바’라는 일본말에 대해 알아보자. ‘국립국어연구원’에 있는 어떤 분은 이 어휘가 일본어의 サバサバ(사바사바)에서 온 것이라 단언한다.

사바는 정어리(鯖)를 뜻하는 것으로 정어리를 누구에게 뇌물로 준다는 뜻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국어사전에는 ‘사바사바’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한영사전에는 그 ‘사바사바’가 ‘paying a bribe 즉 뇌물로 값을 치르는 것’이라 하고, 한일사전에는 ‘內內に 不正な 談合を すること, 즉, 비밀스럽게 부정한 상의(相議)를 하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바사바’를 잘 해야, “그 친구, 인사성이 참, 밝네. 사람이 됐어!”라고 했다. 그래서 ‘출세’를 하는 데에는, ‘필수조건’이라고들 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떨까? 좀스럽게 사바사바 정도가 아니고 천문학적인 뇌물이 횡행을 한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사·자·방’ 얘기를 보면 서민이 보기에는 어림짐작도 못할 지경 같다. ‘사바사바’나 ‘와이로’는 그 ‘은밀한’ 특성으로 보건대, 우리말의 ‘숨어서 속으로 보내고, 숨어서 속으로 받는 것’이 압축된 말이다.

그런데 이 와이로는 일본말이 아니라 우리나라 말 ‘와이료(蛙餌料)’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와이료’의 뜻을 보면, 와는 개구리(蛙). 이는 먹이(餌)와 료는 되질할 료(料) 자라다. 한마디로 ‘와이료’는 ‘계량할 수 있는 값’ ‘개구리밥값’ 정도로 풀이된다.

‘와이료’의 유래는 이렇다. 고려 때 어느 임금이 백성들의 삶을 파악하기 위해 요즘 말로 민정시찰을 미복(微服)으로 갈아입은 채 잠행(潛行)을 하고 있었다. 임금이 궁성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 도착했을 때 날은 어둡고 배는 몹시 고파왔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있어 찾아드니 찢어지게 가난한 초가에서 선비가 낭랑하게 글을 읽고 있었다.

주인을 찾은 임금이 내가 지금 몹시 시장해 무엇이든 좋으니 요기할 것을 좀 달라고 청했다. 선비는 “지금 저희 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먹을 것이라곤 물 한 사발 밖에는 대접할 것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내려가시면 주막집이 있을 터이니 오늘밤은 거기에서 유숙하십시오”라고 했다. 임금이 선비 집을 막 나오려 하다가 그 집 벽에 이런 글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유아무와(有我無蛙) 인생지한(人生之恨)’

내용인즉, ‘나의 학문적 실력은 충만하나 개구리가 없는 게 내 인생의 한이로다’라는 뜻이다.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글귀라 임금은 무슨 뜻인지 선비에게 물었다. 별것도 아니라며 부끄러워하는 선비를 재촉해서 이글의 뜻을 임금님이 얻어냈다.

중국 우화에서 꾀꼬리와 뜸부기가 서로 다투는데 각각 자기 목소리가 훨씬 아름답다는 것이다. 둘만으로는 승부를 판가름 할 수가 없어 이웃 황새를 심판으로 내세우고 그 결과를 3일 뒤에 듣기로 했다. 자신이 만만한 꾀꼬리는 3일 동안 기다리고만 있었고 뜸부기는 황새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 꾀꼬리 모르게 매일같이 바쳤다.

3일 후 황새는 개구리를 뇌물로 바친 뜸부기가 꾀꼬리 목소리보다 더 좋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런 우화를 자신의 처지에 비추어 ‘有我無蛙 人生之恨’이라고 부패한 조정(朝廷)에 대한 자탄(自嘆)의 글을 쓴 것이라고 선비가 말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임금은 조정에서 실시하는 과거가 5일 뒤에 있다는데 그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때 선비의 대답은 “내가 십년을 한결 같이 옳은 답을 적어 냈으나 매번 낙방인 것은 개구리밥 즉 조정의 시험관에게 뇌물로 바칠 게 없어서 그렇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제는 과거를 포기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임금은 “나도 시골의 별 볼일 없는 서생으로 당신보다 더한 낙방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이번에 또다시 과거를 보러 올라가는 길이오. 나와 같이 한번 더 과거에 참가하시지요”라고 졸랐다. 결국 가난한 선비는 임금에게 설득되어 과거를 치르기로 결심하고 5일 후에 과거장을 찾아 갔다.

시제(試題)는 이러했다. ‘有我無蛙 人生之恨의 뜻은 무엇인가?’ 유생들에게는 처음 보는 생소한 글이었다. 그러니 결과는 가난한 선비의 장원으로 귀결이 되었다. 감격해 고개를 들어 보니 5일 전에 배고파 찾아왔던 그 시골 서생이 임금님의 용상에 앉아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난한 선비는 어진 성군을 만나 충성스런 신하로 천수를 다했다. 이 선비가 바로 고려 명종 때 문신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1168~1241)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래까지도 인간의 역사에는 변하지 않고 거듭되는 게 바로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욕이다.

그런데 지금 이 개구리밥 정도의 와이료가 아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도 와이료 때문에 기업운영을 포기할 정도라고 아우성이다. 나라를 망칠 정도로 횡행하고 있는 원전비리는 물론 국토를 지켜내는 군함이나 비행기 탱크까지 심각한 먹이사슬로 연관되어 있다. 4대강의 부실공사와 자원외교의 부정이 밝혀지는 날, 나라가 온전할 것인지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와이료가 없는 세상, 정의가 바로 서는 그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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