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황금의 문’ 세가지를 아십니까?
지난 6.4 지방선거에 말 한마디로 낙마한 사람들이 많았다. 적어도 지방의 단체장이나 교육수장을 꿈꾸는 사람들의 언사가 그리도 가벼운지? 인격을 도야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 나라와 지방을 이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이 낙선한 것은 본인이나 나라를 위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데이 셰퍼트의 ‘세 가지 황금 문’이란 글이 있습니다, 언어생활에 대한 충고다. “말하기 전에 언제나 세 가지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 다 좁은 문이다. 첫째 문, 그것은 참말인가? 둘째 문,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셋째 문,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 이 세 문을 지나왔거든 그 말의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크게 외쳐라!”
아쉽게도 오늘날 이 사회의 위기는 상당부분 잘못된 말에 기인한다. 진실을 확인하지 않고 말해 이웃을 곤경에 빠뜨리고 불필요한 말로 실수가 많고 가깝다는 이유로 거칠고 무례한 말을 내뱉곤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사상이자 인격이다. 좋은 말과 긍정적인 말 그리고 남을 높이는 말은 ‘은쟁반에 아로새긴 금 사과’ 같다고 했다. 아름답고 소중하며 마침내 그 말이 복의 근원이 되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엮어가기 위해서는 인격적이고 사랑이 담겨진 덕스러운 말의 문화를 가꾸어 갈 필요가 있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고집이 세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분이었다. 자신은 장로이기 때문에 교회의 모든 결정권이 있으며 오랜 신앙의 연륜으로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가장 가까우며 옳다고 하여 권위를 세웠다. 자기가 아니면 도무지 교회가 문을 닫고야 말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그가 지독한 인후염에 걸려 혀를 자르던지 1년 동안 말을 하지 않아야 될 처지에 빠졌다. 장로님은 어쩔 수 없이 1년 동안 입을 다물고 할 이야기가 있으면 글을 쓰거나 몸짓으로 해야 했다. 장로님이 입을 다무니 교회가 너무 조용했다. 모두들 의욕적으로 원하는 대로 일할 수가 있었다.
드디어 1년 후, 장로님의 병이 다 나아 말을 해도 되는 날이 다가오자 교인들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장로님은 놀랍게도 변해 있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쉽게 말을 했는지 깨달았소. 할 말을 글로 써서 주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이상하게 잘못 쓴 것 같아 구겨버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몸짓으로 어떤 일을 지시했을 때 못 알아채면 답답해서 직접 내가 일을 해버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말없이 일을 하면 할수록 즐거움이 넘쳐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느덧 필자 역시 세월이 흘러 원불교에서는 원로급에 속한다, 젊은 시절에야 세상물정 모르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듯이 큰 소리를 외치고 다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 들어 뒷전으로 물러서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다만 모든 일을 뒤에서 지켜보며 격려와 칭찬만 하면 된다.
원불교의‘권도 편’ 53장에 이런 글이 나온다.
‘심심창해수 구중곤륜산(心深滄海水 口重崑崙山)’이라는 말씀이다. “수행인은 마음을 쓰되 창해 수 같이 깊이 써서 쉽사리 헤아릴 수 없게 하고, 입은 곤륜산같이 무겁게 지킨다”는 뜻이다. 그리고 천만경계에 마음이 쉽게 동하지도 말고, 함부로 가벼이 말을 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라는 법문도 있다. 잘못하면 입이 재앙을 불러들이는 화문이지만 잘 쓰면 복문이 된다는 말씀이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 만사가 입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다. 입으로 먹을 것과 복도 들어오지만 화도 들락거리는 문이라는 뜻이다. 말을 잘못하면 재앙이 들어온다.
이 법문은(全唐書) ‘설시 편’(舌詩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당나라가 망한 뒤 후당(後唐)때 입신하여 재상을 지낸 풍도(馮道)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을 섬겼는데,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 그야말로 처세에 능한 달인이다.
풍도는 자기의 처세관을 아래와 같이 후세인들에게 남겼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安身處處宇(안신처처우) :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풍도는 인생살이가 입이 화근임을 깨닫고 73세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입조심 하고, 혀를 감추며, 말조심을 처세의 근본으로 삼았기에 난세에서도 영달을 거듭한 것이다. 입 조심이 얼마나 어려우면 이 말이 오랜 세월에도 이렇게 이어질까? 심신이 편안한 삶은 말을 삼가는 것이다. 입과 혀를 조심하며 말을 삼가는 것은 인간 세상이 존재하는 한 유구한 진리가 아닐까?
인간의 입은 잘 쓰면 황금 문이다. “그것은 참말인가?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