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돈’에 대한 단상

2000여년 전 중국 서진 때 노포(魯褒)가 쓴(錢神論)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돈은 신물(神物)로 덕이 없어도 숭배되고, 권세가 없는데도 사람을 끌어당긴다. 왕후장상의 대문을 멋대로 드나들고 귀부인의 안방까지 잠입하는가 하면, 어떤 위험도 그 힘으로 극복하고, 죄 없는 사람도 죽인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정당한 소송에서도 이기지 못하거니와 평판도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낙양에서 득세 하는 권세가는 모두 돈을 사랑하며 그것을 끌어안았으며 돈만 있으며 인물의 우열에 관계없이 높은 관직을 돈으로 구할 수 있다.”

얼마 전 갤럽여론조사 기관에서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조사를 했다. 공통적으로 남을 위하여 돈을 쓴 사람들이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또 운동선수들에게 돈을 주었을 때 경기 결과에 돈의 많고 적음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돈을 가지고 남을 위해서 쓰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인 것이다.

그런데 왜 세상은 이렇게 삭막해지고 특히 자본주의 국가가 더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을까? 그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성향을 존중하고 개인이 돈을 벌어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인가를 베풀려면 나에게 돈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는데 정신이 팔려 시간을 허비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니 돈만 가졌다고 선행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돈이 없이 돈 벌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부자가 되기 어렵다.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은 그 돈을 자신이 잘 쓰고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자식이 이 세상에서 남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을 움켜쥐려는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면 빈부의 격차가 지금처럼 심하게 되고 살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반대로 공산주의는 그 발상은 좋으나 경쟁력도 떨어지고 사회계층 간에 격차를 줄일 수도 없고 특권층만이 호의호식을 하고 대다수의 서민들은 굶주리게 된다. 또 지금처럼 다양하고 역동적인 변화에 발맞출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결론적으로는 돈을 좇아가는 삶은 행복이 있을 수 없고 신기루와 같다. 왜냐하면 부자도 영원하지 않고 진리를 떠나서 사는 삶은 사람의 무지와 교만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행복은 사람의 손에 돈이 얼마나 들려져 있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내 자신이 누구냐에 달려 있다. 인생은 거래(去來)라 하였다. 즉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공덕이 쌓이는 것이다. 이렇게 베푸는 것이 돈의 미학이 아닐는지?

돌고 도는 것이라 돈이라 하였다. 어떤 사람이 속주머니에서 발견한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몇 달 전에 바로 ‘그 돈’이었음을 알았다. 친구 전화번호를 메모해 두었던 그 만원짜리.

의 잠언(15장 16~17절)에 이런 말이 나온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찐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