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김무성 대표께 고함

[아시아엔]2014년은 갑오년(甲午年) 말띠해다. 말은 날쌔고 용감하고 전쟁 때는 훌륭한 병기로, 평시에는 농사일로 사람과 친하게 지내온 매우 신성한 동물로 상징되어 왔다. 그런데 말(馬)이 너무 많아서인지 요즘 정치인들이 말(言)로써 말이 너무 많아 수난을 당하고 있다.

바로 며칠 전 중국을 방문한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베이징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귀국 하루 만에 발언의 취소는 물론 대통령에게 사과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개 범부도 아니고 집권여당의 당수가 영 꼴이 말이 아니다. 왜 그랬을까? 가방끈이 모자라서? 아니면 너무 길어 주체를 못해서 그런 망발이 터졌을까?

말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말 꼬리 잡는 사람이라고 한다. 말띠 해에는 남의 말꼬리 잡고 늘어지지 말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품위 있게 듣는 귀를 귀하게 여기면 좋겠다. 그리고 말이 싫어하는 자는 말허리를 잡는 사람이라고 한다. 말을 중간에 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교양 없는 인간이다. 그런 사람은 가방끈이 짧다고 외치는 꼴과 같다. 말의 해에는 남의 말을 끝까지 다 들어주는 고상한 인내심을 길러 가면 좋겠다.

또 말이 싫어하는 사람은 말을 이리저리 돌리는 자라고 한다. 변명보다는 침묵이 훨씬 빛날 때가 있다. 구구한 변명, 구차한 말 돌리기보다는 자기의 실수와 약점을 부끄럼 없이 받아들일 줄 아는 책임지는 인생으로 변화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 또 말이 싫어하는 사람은 자꾸 말 바꾸는 자라고 한다. 자기가 한 말에 책임지는 인생이 자꾸 드물어지는 요즘 세상이다.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가 하루 만에 대통령의 호통으로 아이쿠 뜨거워라 하고 꼬리를 내리는 여당의 대표도, 은퇴하겠다고 했다가 쉽게 말을 바꿔 담임목사 자리에 버티고 있는 성직자도, 박사학위가 거짓으로 들어나면 사퇴한다고 했다가 그게 사실로 밝혀졌는데도 어물 쩡 말을 바꿔 없던 일로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한번 말했다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어떤 희생을 감수할지라도 그 약속을 지켜내는 용기가 있을 때 ‘남아일언 중천금’이 되는 것이다.

어느 덧 말띠 해도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이 해가 가기 전에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말조심하며 살면 좋겠다. 말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개헌 당위성을 주장하면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고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이왕이면 희망의 말, 살리는 말, 생명의 언어, 조금 더 나가서 경건의 언어, 거룩한 말을 입에 달고 살면 어떨까?

그리고 아첨하는 말, 남을 조롱하는 말, 간교한 말, 비방하는 말은 날려버려야 한다. 대장부가 한 번 뱉은 말은 당당하게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이 ‘남아일언 중천금’이다. 인격은 반드시 말로 드러나는 법이다.

말 덕분에 우리는 짐승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수도 있고 말 때문에 우리는 악마의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말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릴 수도 있다.

미국의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은 긍정의 힘을 발휘했던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는 열살에 양복점에 들어가 성실하게 일했고, 돈을 벌고 혼인한 후에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 존슨은 정치에 뛰어들어 주지사, 상원의원이 된 후 16대 대통령 링컨을 보좌하는 부통령이 된다. 링컨이 암살된 후, 미국 17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지만 상대편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자 존슨은 언제나 침착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말 한마디에 상황을 역전시켜 버린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예수그리스도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초등학교도 못 나오셨지만 전 세계를 구원의 길로 지금도 이끌고 게십니다. 이 나라를 이끄는 힘은 학력이 아니라 긍정적 의지요, 미국 국민의 적극적 지지입니다.”

그는 알래스카를 러시아에서 사들인 앤드류 존슨 대통령이다. 여당 대표가 차기 대권을 꿈꾼다면 이 정도의 배짱과 소신을 가져야 한다. 함부로 가볍게 지껄이는 사람을 어찌 믿고 대임을 맡길 수 있을는지? 예로부터 ‘구시화복문(口是禍福門)’이라 했다. 지도자의 언행은 좀 더 신중하고 무거워야 한다. 또 심“심창해수(心深滄海水) 구중곤륜산(口重崑崙山)”이라 했다. 지도자는 마음을 쓰되 창해수 같이 깊고 깊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이 하고, 입을 지키되 곤륜산 같이 무겁게 해야 한다. 안으로 큰 사람이 되어 갈수록 그 심량을 가히 범부들이 헤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다. 작은 그릇은 이 여당의 지도자 같이 곧 넘쳐흐른다. 그러나 큰 그릇은 항상 여유가 있어 태산교악(泰山喬嶽)같이 장중하다.

큰 바다는 백 천 골짜기 물을 다 받아들이되 흔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대원(大願)을 세운 사람은 공부와 사업 간에 흔적이 없는 법이다. 모든 사리에 통달하되 통달하다는 흔적이 없고, 만 중생을 구원하되 구원한다는 흔적이 없는 것이다. 무릇 크고자 하는 사람은 이와 같이 흔적 없고 소신이 투철한 대인이 되어야 대원을 성취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