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중단시킬 방법은?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한창이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휴전과 개전을 거듭하면서도 이 전쟁을 계속해 끝장을 낼 태세다.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성서에 보면 유대인이 살던 곳은 팔레스타인 땅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로마에 지고 세계각지에 흩어져 살게 된다. 이들을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그럼 팔레스타인 땅이 누구의 땅인가? 남의 땅을 아랍인들이 뺏은 것은 아니지만 들어와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도 역사적으로 분명히 유대인들 땅이라는 것을 안다.
약 2000년 전 유대민족이 여러 국가의 침략으로 인해 전 세계로 유랑하게 된다. 그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와 살게 되고 2000년이 지난 현재 이스라엘이 정부를 수립하고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 영국 등이 이스라엘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고 분리구역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이 세워지자 주위의 아랍국들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했지만 군사력이 강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약 80%를 차지해 버렸다. 성서시대에는 이 땅에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 왕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땅은 ‘성지’로 불리며, 정도는 다르지만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에서 모두 팔레스타인을 신성시한다.
유대교 전통에 따르면,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은 하느님이 약속한 땅이자 가장 거룩한 곳으로 유대민족 독립의 중심지였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와 사도들이 생활하고 복음을 전파한 현장으로 중시된다. 이슬람교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와 관련된 일정한 곳을 거룩한 장소로 여긴다. 1920년대 초부터 시작된 시온주의자들의 이주 시기와 특히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진 이후에 이 지역을 중심으로 아랍 민족주의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이 7세기 이슬람제국의 정복 이후 이 지역에서 살아온 아랍민족의 고향이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플레셰’(‘펠리시테인의 땅’이라는 뜻)에서 나온 그리스어 ‘팔라이스티나’에서 유래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요르단강에서 서쪽으로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영국의 위임통치지역을 가리키는 공식명칭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이 다시 쓰이게 된다.
1967년 6월5일부터 10일까지 6일 만에 끝난 이스라엘의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이 아랍권의 13개국과 전쟁을 해 대승을 거둔 전쟁이다.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었던 ‘모세 다얀’ 장군은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지금 이스라엘 군대는 막강한 최신 무기로 무장을 완료했다. 이 최신무기는 이스라엘 전국에 긴급 배치된 바, 우리는 이 무기를 사용하여 아랍연합국을 몇 시간 내에 물리치게 될 것이다.”
당시 수많은 국가정보기관이 이 신무기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지만, 찾아낼 수 없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엿새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다얀 국방장관이 전쟁종료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는 단 세 시간만에 승리를 확신했다. 그것은 최신무기인 ‘불타는 애국심’ 덕분이었다. 우리는 이 애국심이라는 신무기를 활용해 단시일에 적군을 물리쳤다.”
당시에 듣기로는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다 해외에 나가 있는 아랍유학생들은 징집당할까 걱정해 숨거나 도망을 쳤다고 한다. 반면 이스라엘 유학생이나 청년들은 개전(開戰) 소식을 듣고 예외 없이 자진해 이스라엘로 돌아와 참전을 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땅의 크기에서 밀린다면 생각의 크기로 맞서야 한다. 생각의 크기에도 밀린다면 사랑의 힘으로 물리쳐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든 나라를 사랑하든 사랑하면 힘이 세진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사랑의 유무로 성장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옛날 전쟁에서 성을 빼앗은 장수가 여자들과 아이들은 살려 주려고 “이 성안에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보물을 한 가지만 가지고 나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소중한 것을 가지고 나가는데 한 여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덩치 큰 남편을 업고 나오는 것이다. 군인들은 명령을 어겼다고 둘 다 죽이려 했다. “훌륭하신 장군께서 소중한 보물을 가지고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물이 남편입니다.” 장군이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병사들은 둘 다 성 밖으로 나가게 됐다. 사랑의 묘약(妙藥)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보다 더 좋은 약이 없다는 말이다.
사랑은 핵무기보다 더 강한 무기다. 작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도 어쩌면 사랑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자기민족, 자기 국가, 자기 종교만 너무 사랑하는 소아병적인 사랑 때문일 것이다. 사해(四海)가 동포(同胞)다. 사생(四生)이 일신(一身)이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내 몸이고 내 형제들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큰 사랑, 즉 대아적(大我的) 사랑이다. 이를 일러 우리는 ‘삼동윤리’(三同倫理)라고 한다.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繫) ‘동척사업’(同拓事業) 즉 세상 모든 종교가 한 울안의 한 이치인 것이다. 세상 모든 생령(生靈)이 한 집안 한 권속인 것이며, 이 세상 모든 사업이 한 일터 한 일꾼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