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볼썽 사나운 재벌가 형제다툼

형제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처럼 부모 마음에 기쁨이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효도 중의 으뜸은 형제우애(兄弟友愛)라고 한다. 부모 입장에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부모라는 하나의 가지에서 나고 자라 서로 의지가 될 수 있는 형제간의 우애, 이것이 요즘 점점 성겨지는 것 같아 몸시 안타깝다.

필자는 평범한 가정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장남으로서의 권위도 누리고 대우도 받았다. 그러나 없는 집의 장남은 아마 희생이 더 많았던 같다. 어려서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면서도 자연히 가장의 역할을 떠맡아야 했다. 다섯 동생들을 다 공부시키며 모두 시집장가를 보냈다. 어찌 보면 큰형과 큰 오라버니인 필자가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가 아닐까 한다.

그런 필자가 아우들을 잘못 가르친 것 같다. 금년 추석에도 달랑 선물꾸러미 하나 보내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속으로 얼마나 서운하던지. 물론 각자 사정이 있을 것이다. 연휴를 맞아 외국여행도 갔을 것이고, 이제는 자기들도 일가를 이루어 어른 노릇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곧 마음을 돌렸다. “그래 바빠서 그랬을 것이야, 어디 몸이라도 아픈 것은 아니겠지?” 문득 어렵고 힘들게 살던 어릴 적 생각이 떠오른다.

오래 전 우애가 지극한 형제가 있었다. 형은 고등학교 1학년, 동생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형은 학교가 가까워 걸어 다녔고 동생은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생은 엄마가 주는 차비를 받고도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는 것이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라고 대답하곤 씩 웃고 말았다.

그 날도 엄마는 동생에게 차비를 주셨다. 형인 필자는 짜증이 나서 “엄마, 그 녀석 차비 주지 마세요. 버스 타지도 않는 녀석에게 왜 차비를 줘요? 우리 생활도 빠듯한데…” 하지만 엄마는 그 먼 길을 걸어다니는 동생이 안쓰러웠던지 형인 내 말은 듣지 않고 동생에게 차비를 쥐어 주면서 “오늘은 꼭 버스 타고 가거라” 라고 당부하셨다. 동생은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놀랍게도 불고기가 지글지글 불판에 구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무척 어려워 고기는커녕 세 끼 먹는 것을 감사해야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날 상 앞에는 가족이 모두 모여 고기를 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형인 필자는 얼른 들어가 고기를 입안에 잔뜩 넣으며 물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이렇게 비싼 걸 먹게요?” 그러자 엄마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무슨 날이긴, 네 동생이 형이랑 엄마 아버지 기운 없어 보인다고 차비를 모은 돈으로 불고기를 사왔구나” 아! 동생은 그 먼 길을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불고기를 오순도순 구어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걸었던 것이다. 그날을 회상하며 동생의 대견함에 목이 메이곤 한다.

얼마나 우애 깊은 형제간인가? 그렇게 도탑게 정을 쌓고 살아온 형제들이 피터지게 재산싸움 하는 것을 앞서 가신 부모님이 내려다보신다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실까?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재벌 삼성가와 CJ그룹 간의 법정다툼, 보기 역겨운 재벌자식들의 재산 다툼이다. 현대그룹, 한진그룹, 진로그룹 등도 다 마찬가지로 골육상쟁의 길을 걸었거나 걷고 있다.

명리학에서는 육친의 관계에서 형제를 ‘비견(比肩)과 겁재(劫財)’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비견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업자”라는 뜻을, 겁재(劫財)는 “재물을 서로 빼앗는다”는 뜻이다. 자신이 허약하고 무력한 환경에서 비견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때는 사이좋은 형제가 있으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늘고 약한 나뭇가지 한 개는 부러뜨리기 쉽지만, 여러 개를 빗자루처럼 한데 묶어 놓으면 부러뜨리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

반대로 자신이 강한 상황에서는 형제라는 것이 겁재(劫財)로 작용한다. 자기의 재물을 욕심내고 빼앗으려고 항상 기회를 넘보는 존재가 남이 아닌 바로 형제라는 것이다. 이때의 형제라는 겁재는 원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가난한 집 형제는 비견이 많고, 돈 많은 부잣집의 형제는 겁재가 많다는 사실을 재벌가의 재산 싸움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역겹기 짝이 없는 형제의 난이 또다시 금호가에서 일어났다. 금호가 형제들은 우애가 좋기로 소문난 집안이었다. 선친인 고 박인천 회장이 1984년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20년 동안 큰 형(박성용)이 둘째 동생에게, 둘째 동생(박정구)은, 셋째 동생(박삼구)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등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랐다. 고 박인천 회장은 유언으로 “돈보다 형제간 우애가 중요하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형은 동생을, 동생은 형을 챙기라”고 말했다. 그런데 형제간에 법정다툼이라니.

우리 형제는 넉넉하게 살지 못해 ‘비견’은 될지언정 ‘겁재’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형제간의 다툼은 ‘형제의 도’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형제는 한 부모의 기운을 받아 한 기운으로 자라난 사이다. 그래서 형은 아우와 우애하고 아우가 형을 공경함은 천륜(天倫)의 자연한 차서(次序)다.

그러므로 형제는 좋은 일에 같이 기뻐하고, 낮은 일에 같이 걱정할지언정 부당하게 이해를 다투거나 공명(功名)을 시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형은 형의 도리만 다하고 아우의 공경을 계교(計較)하지 말고, 아우는 아우의 도리만 다하고 형의 우애를 계교하지 말아서 그 천륜의 정의(情誼)를 길이 지키는 것이 바로 ‘형제의 도’다.

이번 추석에 아우들의 행동이 조금 서운했다 하더라도 필자는 형으로서 형의 도리만 다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으니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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