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대통령님 눈물 흘리지 말고, 그들 눈물 닦아주세요

불교에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넘어 피안에 도달하다. 또는 은산철벽을 뚫는다”는 말이 있다. 은과 철은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으로 손도 대어 볼 수 없고, 이도 안 들어간다는 뜻이다.

바로 요즘 우리나라 정국을 표현한 말이 아닐까?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한치 양보도 없이 극한대립을 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두렵다. 유가족 한 분이 40여일 단식투쟁 끝에 병원에 실려갔다. 40일 넘게 굶은 사람이 청와대를 향해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으나 공권력이 막아서 저지하는 바람에 길바닥에 쓰러지는 장면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다.

여당은 막무가내로 자신들 원칙을 고수하고, 야당은 협상을 통해 돌파구를 열어보려 하고 있으나 세월호 유가족의 강경대응에 이제는 옴짝 달싹도 못하고 자중지란에 빠져있다. 본래 세월호 참사는 이 나라 위정자와 기업 그리고 관료집단이 저지른 총체적 부실과 부정부패에서 나온 사태다. 그래서 대통령도 정부도 정치권도 이를 인정하고 나라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한 일이다.

대통령이 눈물 흘리며 세월호 유가족들 호소를 들어주고 나라를 개혁하겠다는 약속했다. 그런데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것인가? 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줄 아량이 없는가? 애초 약속된 개혁을 단행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이 ‘은산철벽’을 어찌하면 깨뜨릴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지난 8월14~18일 이땅에 머물다 가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프란치스코 교황과 100시간은 한국인에게 깊은 울림으로 남았다. 그 울림을 우리는 한 때의 해프닝으로 돌릴 수 없다. 그 은산철벽을 깨뜨리는 해법을 교황의 가르침에서 찾아보자.

첫째, 사랑하세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방문을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분은 떠나셨다. 이 땅에 머문 닷새 동안 그가 곳곳에 던지고 간 선물꾸러미는 모두 다섯개다. 꾸러미 속에는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안아주고’ ‘일깨우는’ 치료약이 들어있다.

마지막 선물 꾸러미에는 그분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담겨있다. 그 숙제를 일회성 이벤트로 끝낼 지, 아니면 갈등과 반목으로 얼룩진 한국병을 치유할 묘약으로 활용할 것인지는 곧 우리에게 달렸다. 그것은 “이제, 서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세요!”다. 세월호 유가족은 적이 아니다. 우리의 형제자매들이지다.

둘째, 깨어나세요.

교황은 화합과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인권을 말살하는 경제모델에는 단호하게 거부하라고 요구했다. 8월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교황은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 유혹에 맞서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8월17일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는 젊은이들의 역할을 역설하면서 “젊은이들이여 깨어 있어라!”고 강조하셨다.

셋째, 화해하세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한반도 평화’를 언급한 교황은 8월18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죄 지은 형제를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지 묻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가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답한 것을 인용하셨다.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위해 정직한 기도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해원(解寃)과 상생(相生)과 통일(統一)’ 화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넷째, 연대하세요.

교황은 8월14일 청와대 연설에서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연대의 세계화에서도 이 나라가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며 “연대의 세계화는 모든 인류가족의 전인적인 발전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교황은 방한 마지막 날인 8월18일 이웃종교 지도자들과 만나 “인생은 혼자 걸어갈 수 없는 길”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종교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자”고 당부하였다.

다섯째, 낮아지세요.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교회가 가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8월14일 천주교 주교단을 대상 연설에서는 “교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때 가난한 자들을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교회의 목적이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즉위 이후 줄곧 “낮은 곳을 바라보라” “교회 밖으로 나아가라”고 주문하고 있다. ‘소울’ 자동차와 힘든 사람들을 감싸 앉는 그분의 낮은 자세에 우리 위정자들과 지도층들은 뭐를 느끼는가?

여와 야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이 제각각 고집을 부리더라도 우리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던지고 가신 다섯 가지 처방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은산철벽을 넘어 중도(中道)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세상은 이분법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자기만이 정의라고 고집하는 것은 스스로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에고적인 장벽을 넘어설 때 은산철벽은 무너지고 이 땅은 우리가 그처럼 염원하는 낙원세상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대통령이 눈물 흘릴 때가 아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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