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세월호특별법, 국민화합 계기 삼길
우리 사회 편견이 최근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놓고 극한상황을 연출하는 것 같다.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 또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사실상의 근거 없이 지니고 있는 완고한 의견’이다.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실제 편견의 대상과 접촉하거나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편견을 가진 사람의 진리에 대한 개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진리란 도를 말한다. 그 도는 중도를 가리키며 중도적인 사상 없이 어느 한 쪽만 고집하면 바로 편견에 사로잡히고 만다.
편견이 굳어지면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게 된다. 모든 사물을 1 아니면 2, 흑 아니면 백, 나 아니면 너, 아군 아니면 적군. 이런 편향된 시각으로 구분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인총(人叢)이 얼마인데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세상을 모두 ‘나와 너’로만 구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적으로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싸고 벌이는 여와 야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노라면 편견과 흑백논리의 정점을 찍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이 간다. “내가 믿는 것을 비판하면 나의 적이다” 하는 것은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타인의 다양성을 수렴하지 못하는 독선적인 자세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유민 아빠의 간절함에 이제 생명을 살린다는 생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답할 때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윤근 정책위의장은 “세월호특별법이 무사히 닻을 내릴 수 있도록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요지부동이다. “야당과 유족의 동의하에 새누리당 몫 특검추천의원 2명을 추천한다”는 재협상안에서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는 기류다. 청와대도 똑같다. 세월호특별법은 여당과 야당이 풀 문제라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세월호특별법은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은 특별법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주지 않으면 죽음을 불사하는 극한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는 사라지고 극단적인 투쟁만 남아있다.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미지의 대륙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이 보았던 신대륙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사람이 “베네수엘라에는 귀가 너무 커서 땅에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묘사했다. 그리고 “아마존에는 발이 거꾸로 달려서 발가락이 몸 뒤를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심지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도 “쿠바에는 사람 얼굴에 닭의 깃털이 난 인어들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번도 아메리카 대륙을 가보지 못했던 페드로 안글레리아는 아메리카 역사를 기록한 자신의 저서에 “신대륙에는 꼬리가 너무 길어 구멍이 뚫린 의자에만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했다.
광복 후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사람들은 다리가 90도 이상 굽혀지지 않아 무릎을 굽히지 못해 의자에만 앉을 수 있고 쪼그려 앉을 수 없다”는 말이 떠돌았다. 이렇게 잘못된 상상으로 만들어진 편견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과연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학벌이나 사회적 지위, 외모나 재력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는가?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은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인격이다.
이같이 편견은 결국 세상을 망치고 인격을 파괴할 수 있다. 편견을 벗어나는 길이 중도주의다. 중도주의는 우파와 좌파 혹은 보수와 혁신의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인 정책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치세력은 일반적으로 중도파라고 하며, 정치이념으로 자유주의와 같은 입장이다.
극우나 급진은 오히려 국론분열과 혼란을 야기하며 국익에 이롭지 못할 뿐더러 국민에게 피로감을 준다. 그러나 중도 혹은 개혁적인 보수정치는 타협, 화해, 통합정치가 가능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점진적인 개혁의 보수정치를 해야 된다. 개혁이라는 단어를 반대파 숙청을 위하여 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또 다른 나치즘이고 공산주의이며, 독재정치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민들이 깨어나야 하고 정치는 예측 가능한 가운데 변화를 주어야 한다.
여와 야, 세월호 유가족 모두 한발씩 양보하여 중도의 길을 찾을 때가 왔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잘못된 국정운영과 공무원들과 기업들의 총체적 부실과 부정부패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도 눈물을 흘리며 잘못된 국정을 바로 잡으려고 국가개혁을 약속했던 것이다. 힘 있는 쪽에서 포용하지 않으면 꽉 막힌 정국은 풀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