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숙인’ 만난다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 4박5일간의 울림이 컸다. 성직자는 군림하러 나온 것이 아니다. 어리석고 불쌍한 중생들을 섬기러 나온 것이다. 더군다나 명동성당에서 출국 전 마지막 미사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용서와 화해’를 당부했다. 교황은 “오늘의 미사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한 가정을 이루는 이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라고 강조했다.
교황께서는 미사에 참석한 12개 종단 수장들에게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 넘나들라”는 간곡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 말씀을 듣고 종단 수장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억대의 연봉, 최고급 승용차와 호화 주택, 자녀들 외국유학비까지 성직자들이 누리는 이 호사스러움은 진정 섬김의 자세일까?
미국의 대형교회 근처에서 한 노숙자가 초라한 행색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교인 중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 사람은 불과 세 명에 불과했고, 초췌하고 남루한 차림의 노숙자는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에게 “음식을 사려고 하니 잔돈 좀 달라”고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예배시간이 되어 노숙자는 성전 맨 앞자리에 앉으려 하였으나 예배위원들에게 끌려 나오고 말았다. 그는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석에 겨우 눈치를 보며 앉았다. 이윽고 설교시간이 되었다. “오늘 새로 우리 교회에 부임하신 스티펙 목사님을 소개합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죠.”
교인들은 모두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새로 부임한 목사를 찾아 일제히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성도들은 경악했다.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노숙자가 강단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가 바로 이 교회에 새로 부임한 스티펙 목사(노숙자)였다.
그는 노숙인 차림 그대로 강단에 올라갔고 곧장 <마태복음> 25장 31~40절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과 염소’의 비유로 누가 양과 염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스티펙 목사가 말씀을 마치자 회중은 무언가에 심하게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놀라운 회개의 역사(役事)가 일어나고 있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어뜨리는 교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스티펙 목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에는 교인들은 많으나 제자는 부족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제자 입니까?” 라는 말을 남겼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 것 이상으로, 이웃과 함께 그리고 그들 옆에서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인 수 1만명의 미국 대형교회에서 ‘예레미야 스티펙’이라는 목사가 노숙인이 된 이야기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사이트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의 대형교회나 종단 성직자들은 스티펙 목사의 외침에 부끄럽지 않은가? 그래도 양심에 찔리지 않는다면 그런 성직자들은 ‘여호아(아해)’를 자칭하던 유병언 목사와 무엇이 다를까? 유병언은 목사 신분으로 천하를 다 가질 듯, 수천억의 재산을 모으느라 배가 중심을 못 잡아도 사람만 많이 태우라 하여 300여명을 바다 속에 수장(水葬)시켰다.
저 혼자 살겠다고 한 대에 수억원 하는 최고급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수십억 현금과 권총을 챙겨 골방에 숨어 가슴 조이며 살겠다고 발버둥쳤다. 유병언은 자기가 써놓은 자서전에 “사람이 죽으면 일주일 내에 구더기가 들끓고, 2주일 내에 탈골(奪骨)되어 하얀 백골로 간다”고 하였다. 마치 그 말을 자기 육신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구더기가 들끓는 하얀 백골로 풀밭에 누웠다. 천오백만원짜리 점퍼를 입어도, 수백만원짜리 운동화를 신어도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방문은 우리에게 엄청난 울림과 충격을 몰고 왔다. 특히 각 종단 성직자들과 교인, 교도, 신자들에게 성직자의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 몸소 시범을 보였다.
“성직자는 격식이 없어야 한다. 가식이 없어야 한다. 진솔해야 한다. 그리고 낮은 곳에 임해야 한다.” 어느 시골할아버지처럼 손자 대하듯 아이들을 좋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손만 흔들어도 함께 웃어 줄줄 아는 교황의 파격(破格)이 우리 가슴 속에 따뜻한 온정이 솟아올라 식을 줄을 모르게 했다.
소탈하다는 것, 겸손하다는 것,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고 있다는 것, 그 무엇도 꺼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청빈함과 검소함으로 살아온 일생! 크고 화려한 것보다 작고 아담한 것을 좋아하는 것, 소외된 사람들을 챙기는 것,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로해 줄줄 아는 것, 더구나 시작과 끝맺음을 성공적으로 완수해낼 수 있는 교황의 건강과 정신력이 그 무엇보다 돋보였다.
“평화의 전제조건은 용서로 시작한다”는 교황 말씀 한마디는 위정자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교훈으로 새겨들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