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부처님 닮은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청 영감>>(Annuario Pontificio)은 교황직을 다음과 같은 호칭으로 표현한다. ‘로마의 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들의 계승자, 서방교회의 최고 성직자, 서방의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주교, 로마의 총대주교, 바티칸시의 군주’. ‘포프’ 혹은 ‘파파’(약자로 PP.)는 공식적으로 덜 엄숙한 뜻으로만 쓰인다.
교리적으로 교황은 사도들의 우두머리였던 성 베드로의 계승자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교황은 로마 주교로서 신앙과 도덕 그리고 교회 치리(治理)와 통치에서 모든 교회에 최고의 사법권을 갖는 분이다. 이러한 교황 수위권(首位權)의 2가지 근거는 신약성서에서 베드로의 대권을 표현하는 여러 수식어들과 역사상 로마 교회가 차지해온 위치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는 주교들의 역할을 규정하면서 하나의 몸인 주교들의 권위는 그 머리가 되는 교황의 권위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견해를 유지했다.
이번에 방한하신 프란치스코(1936~) 교황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66대 교황이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스페인어, Jorge Mario Bergoglio)’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태생으로 화공학자와 나이트클럽 경비원으로 잠시 일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생이 되었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예수회의 아르헨티나 관구장을 지냈다.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2013년 2월28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스스로 교황직 사임한 후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다수의 표를 얻어 작년 3월13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에 선출된 그는 교황으로서의 자신의 새 이름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서 ‘프란치스코라’고 명명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면서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또한 시리아 태생이었던 교황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최초로 탄생한 비(非)유럽권 출신 교황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항상 검소함과 겸손함을 잃지 않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용을 촉구하며, 여러 가지 다양한 배경과 신념,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이 오갈 수 있도록 대화를 강조하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소박하고 격식에 덜 얽매인 생활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과거에 전임자들이 사도 궁전에 거주했던 데 반해 프란치스코는 성녀 마르타 호텔을 자신의 거주지로 선택했다.
그는 교황직에 선출될 당시에 교황 선출 자가 전통적으로 착용하는 붉은색 교황용 ‘모제타’를 입지 않고, 전례(典禮)를 집전할 때에도 화려한 장식이 없는 검소하고 소박한 제의(祭衣)를 입는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순금으로 주조해왔던 ‘어부의 반지’를 도금한 은반지로 교체하였으며, 목에 거는 가슴 십자가는 추기경 시절부터 착용하던 철제 십자가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교황 치고 세상의 존경을 받지 않은 분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독 취임 1년여 만에 전 세계적인 존경과 추앙을 한 몸에 받는 것은 이렇게 소박하고 소외받는 많은 사람들의 편에 서신 것이 그 원인이 아닐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부처님 말씀과 같은 말씀이다.
“우리는 매일 세수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고 멋을 내어보는 이 몸뚱이를 ‘나’ 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육신을 위해 돈과 시간, 열정, 정성을 쏟아 붓습니다. 예뻐져라, 멋져라, 섹시해져라, 날씬해져라, 병들지 마라, 늙지 마라, 제발 죽지 마라 등등. 하지만 이 몸은 내 의지와 내 간절한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살찌고, 야위고, 병이 들락거리고, 노쇠 하고, 암에 노출되고, 기억이 점점 상실되고, 언젠가는 죽게 마련입니다.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내가 내 것인가? 자녀가 내 것인가? 친구들이 내 것인가?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닐진대, 누구를 내 것이라 하고, 어느 것을 내 것이라고 하던가? 모든 것은 인연으로 만나고 흩어지는 구름인 것을! 미워도 내 인연, 고와도 내 인연, 이 세상에서 누구나 짊어지고 있는 고통인 것을!
피할 수 없으면 껴안아서 내 체온으로 다 녹입시다. 누가 해도 할 일이라면 내가 하겠습니다. 스스로 나서서 기쁘게 일하자. 언제 해도 할 일이라면 미적거리지 말고 지금 당장에 하자.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 쏟읍시다. 운다고 모든 일이 풀린다면 하루 종일 울겠습니다. 짜증 부려 일이 해결된다면 하루 종일 얼굴 찌푸리겠습니다. 싸워서 모든 일이 잘 풀린다면 누구와도 미친 듯이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일은 풀려가는 순서가 있고 순리가 있습니다. 내가 조금 양보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배려한 그 자리, 내가 조금 낮춰 논 눈높이, 내가 조금 덜 챙긴 그 공간, 이런 여유와 촉촉한 인심이 나보다 더 불우한 이웃은 물론 다른 생명체들의 희망공간이 됩니다.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정말 눈물겹도록 고맙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은 정말 고마움과 감사함의 연속입니다.”
어찌 이런 교황의 깨달음이 부처와 다르겠는가. 온 몸에 부스럼으로 뒤덮인 병자를 껴안고, 어느 이슬람교도의 더러운 발에 입 맞추든 교황의 모습에서 살아있는 부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질풍노도와 같았던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적이 있다.
“젊었을 때는 험한 바위산의 시냇물처럼 모든 것을 앞으로 밀어내려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흐르는 강물처럼 순해졌다. 나이가 들어 보니 삶은 고요한 물 같은 것임을 알게 됐다.”
교황은 겸손하고 친절하게, 우리들에게 “여유 있는 삶을 살아보라”고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