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칼럼] 세월호 참사와 종교의 ‘황금률’

배철현의 나는 누구인가 ④
당신이 당하기 싫은 방식으로 상대방 대하지 말라

위대한 종교와 문명을 관통하는 강력하면서도 흠모할 만한 사상이 있다면 무엇일까? 저마다 자신들이 속한 종교나 문명이 우월하다고 착각하며 살지만, 위대한 문명들과 그들이 남긴 경전들을 묵상을 통해 살펴보면 이들에게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을 ‘황금률’이라 부른다.

황금률의 내용은 “당신이 당하기 싫은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말라” 혹은 “당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대로 상대방을 대접하라”이다. 동서양의 주요 종교들은 이 사상을 자신의 역사적인 환경에 맞게 터득하고 자신들이 속한 사회에 적용시켜왔다. 황금률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은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관에서 벗어나 ‘무아’ 상태로 진입하는 연습에서 시작된다.

인간들 간의 갈등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여러 세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들을 열등하거나 틀렸다고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이것들을 위장하기 위해 종종 종교를 이용한다. 이런 이들을 종교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특히 종교인들이 자신들만의 세계에 매몰된다면 왜곡될 수밖에 없고 다른 종교들이나 세계관을 틀렸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극악무도한 테러를 자행하면서도 그 행위가 “신의 뜻이다!”라고 외친다.

유대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경전 토라(Torah)에 이스라엘 하느님이 “북으로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남으로 이집트의 강까지 영토를 주신다”라고 약속한 내용을 축자적으로 믿는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와 웨스트뱅크에서 지난 3000년 동안 거주했던 팔레스타인들을 몰아내려 하고 심지어는 중동평화를 위해 노력하던 이스라엘 수상 이츠하크 라빈마저 암살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꾸란(Qur’an)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국제적인 테러를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오사마 빈 라덴은 자신이 조직한 알 카에다의 막강한 자금으로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와 9·11 미국대폭발테러를 감행한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왜곡한 세계관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폭력·살인·대량살상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근본적인 행위는 일부 극단적인 정신병자들만 하는 행위가 아니다.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들과 주교들은 자신들 관할 아래 있는 성직자들이 저지른 아동 성학대 스캔들을 못 본 체함으로써 수많은 여성들과 아이들의 고통을 무시해왔다. 몇몇 종교 지도자들은 마치 세속적 정치가들처럼 자신들의 종파를 찬양하고 상대종교에 대해 험담과 비하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이 근본주의 종교집단의 공개적인 신앙고백에서 상대방, 특히 자신과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는 찾아 볼 수 없다.

예수와 동시대인 힐렐의 교훈

오늘날처럼 종교와 문명의 핵심인 황금률이 이토록 간절히 요구되는 시대는 없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권력과 돈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소수에게 편중되어있고, 그 결과 분노, 불안, 소외, 굴욕이 점점 커져 소외자들의 정신분열적인 무차별적 폭력과 미움이 분출되어 모두를 슬프게 한다. 북경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오늘 일어나는 일이 이제 내일 서울이나 뉴욕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환경 재앙의 무서운 가능성에 직면해 있다. 과거에는 소수의 권력들이 국가단위에 부여된 절대권력을 가질 수 있는 전능한 존재였다. 우리 시대만큼 황금률이 필요한 적은 없었다. 우리의 종교와 도덕적 전통은 이 난제를 풀어야하는 어려운 시험에 직면해 있다.

기원 후 70년 유대인들은 다시 한번 국가적인 재난에 직면했다. 기원전 586년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 2세가 예루살렘을 부수고, 그들을 포로로 삼았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된 것이다. 성전이 기원전 515년 재건되었다. 그 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차례차례 받으면서 자신들의 생존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유대인들에게 창의적인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유대교 랍비들은 자신들이 간직해온 경전연구를 통해 지상에서는 어떤 세력도 파괴할 수 없는 ‘영적인 예루살렘’을 짓기 시작하였다. 기원 후 200년경 등장한 유대교 경전 미쉬나(Mishnah), 그리고 5~6세기 등장한 탈무드가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경전들을 공부하는 행위가 천상의 예루살렘을 위한 벽돌을 하나씩 쌓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들이 경전을 공부하여 경전에 대한 해석, 즉 ‘영적인 예루살렘’을 구축하면서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황금률’이다. 만일 토라의 내용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자비를 찾을 수 없다면 유대인들은 그 내용을 토라에서 과감하게 삭제하였다.

황금률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예수와 동시대에 힐렐이라는 위대한 랍비가 있었다. 1세기 위기에 빠진 유대교는 새롭고 참신한 방향을 모색 중이었다. 당시 유대교를 구축하려는 두 학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심마이라는 랍비가, 다른 하나는 힐렐이 주도하였다. 어느 이교도가 유대교로 개종하기 전에 심마이와 힐렐을 방문하여 마지막으로 토라에 대해 물었다. 그가 먼저 심마이를 찾아 “당신이 한 다리로 서 있는 동안 토라 전체를 암송할 수 있다면, 나는 유대교로 개종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토라 전체의 핵심을 간단히 말해달라는 질문이다. 그러자 위대한 랍비 심마이가 몽둥이를 들고 그를 내쫓으려 외친다. “네가 감히 그런 질문을 하느냐? 바다를 잉크삼아 그 내용을 붓으로 쓴다 해도 다 기록하기 못할 텐데, 그런 무식한 질문을 하다니. 너는 유대교를 믿을 자격이 없다!”

이렇게 쫓겨난 이교도는 다시 똑같은 질문을 들고 힐렐을 찾아 물었다. 그러자 힐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당신 스스로 생각하기에 혐오스러운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마시오. 이것이 토라의 전부이며 나머지는 그저 각주일 뿐입니다. 가서 이것을 공부하여 실천하시오.” 힐렐은 신의 유일성, 천지창조, 출애굽 혹은 613계명과 같은 교리를 언급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힐렐에게 그저 황금률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위대한 종교나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대한 종교와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다른 세계, 문명, 종교에 대한 배려와 존경이다. 그리고 배려를 장려하지 않는 종교와 문명은 가짜이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