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미군에 시련 겪은 이라크 고대도시 바빌론 세계문화유산 등재
[아시아엔=연합뉴스] 메소포타미아(현재 이라크 일대) 문명의 중심지에서 번성했던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였던 바빌론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6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연 회의에서 “이라크 중남부 비빌주(州)의 주도 힐라 부근의 고대도시 바빌론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렸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정부는 1983년부터 WHC에 바빌론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 지 36년만에 성과를 거뒀다.
이라크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등재 찬반 투표를 앞두고 “바빌론 없이 세계문화유산 명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인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장(章)을 바빌론 없이 얘기할 수 있겠느냐”라고 호소했다.
WHC는 “면면히 이어진 제국의 터전이자 함무라비, 네부카드네자르 왕이 통치한 바빌론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창조력을 표현한다”며 등재 이유를 설명했다. 개표 결과 등재가 확정되자 이라크 대표는 “문명의 요람 바빌론으로 여러분을 모두 초대합니다”라며 기뻐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10㎢로 추정되는 바빌론 유적지 가운데 약 20%만 발굴작업이 이뤄졌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20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유지됐던 고대 왕국이다. 따라서 바빌론은 최고 4천년 역사를 간직한 고대 수도라고 할 수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공중공원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바빌론 유수'(약 2500년 전 바빌로니아 제국이 유다 왕국을 정복한 뒤 유대민족을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아간 일)의 무대였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가수 ‘보니엠’의 ‘리버스 오브 바빌론'(Rivers of Babylon)으로 지명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바빌론은 이라크의 굴곡진 현대사와 함께 시련을 겪었다. 바빌로니아 제국을 이상향으로 삼았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1989년 자신이 숭상하던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구약성경의 느부갓네살왕)의 궁궐터에 별장을 지었다.
축구장 5개 정도의 대지에 모래 벽돌 6천만개를 쓴 이 별장은 고대 신전 지구라트를 본떠 성처럼 지어졌다. 벽 하단에는 “이라크의 영도자 사담 후세인 시대에 바빌론의 영광이 재현됐다”고 써 자신의 ‘치세’를 과시했다.
이 별장은 4층 높이로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왕궁처럼 방 600개에 금으로 만든 변기를 설치했는가 하면,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았다. 당시 고대 유적을 자신의 별장으로 쓴 후세인의 무도함에 국제 고고학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이 이라크 남쪽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를 향해 북진했는데 하필 고대 이라크 도시 바빌론을 군사기지로 삼았다. 바빌론이 바그다드로 향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은 2005년 미군이 바빌론 유적지에 주차장과 헬기 이착륙장을 만들려고 자갈을 까는 바람에 이곳이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자이나브 마흐라니 미 컬럼비아대 고고학 교수는 2006년 “바빌론의 유적은 대부분 흙으로 만들어져 그렇지 않아도 진동과 강풍에 약한데, 매일 계속되는 헬기 기동과 군용차량 이동으로 고대 유적이 부서지고 있다”고 지적하는 보고서를 냈다.
유네스코가 2009년 낸 보고서에 따르면 바빌론 유적지는 미군 기지가 주둔했던 2003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곳곳에서 “땅을 파헤치고, 잘라내며, 긁어내고 뒤엎는” 방식으로 고대 유물이 훼손됐다.
바빌론 성문이었던 ‘이슈타르 게이트’와 고대 도로인 ‘프로세셔널 웨이’가 심하게 훼손됐고, 바빌론 도서관과 네부카드네자르 박물관, 함무라비 박물관에서 유물을 약탈하거나 파괴하는 일도 잇따라 일어났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후 미국은 유물 복원에 거액을 지원하고 바빌론 주둔 미군 총책임자가 유적 파괴 행위를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