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리의 이스라엘] 지폐 도안 논란으로 본 유대인 출신 갈등
이스라엘 중앙은행이 새로 발행할 지폐를 놓고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도 여느 다른 나라들과 같이 역사적 인물의 초상 및 유물, 상징 등을 화폐 도안으로 사용하는데, 지폐에 들어갈 인물 선정에 의견이 분분하다.
2008년부터 새 도안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으나, 2012년 제안된 유대인 시인의 초상으로 최종안이 나왔으며 이중 50세켈과 200세켈 도안만 의회에서 승인됐고, 나머지 두 권종에 대해서는 여전히 격론이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제안된 인물들이 모두 아쉬케나지 유대인들로, 이를 두고 다른 출신의 유대인 집단에서 자신들의 조상이 배제된 데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국가 이스라엘?
이스라엘에 오는 이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이전에 매체를 통해 보던 유대인과는 다른 모습의 유대인들이다.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한여름에도 검은색 코트와 털모자를 쓰고 귀밑머리를 길게 꼬아 늘어뜨린 초정통파 종교인의 모습이 아니면 서구인과 별다른 차이를 찾을 수 없는 유럽인의 모습이다. 때론 좁은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매, 매부리코가 유대인의 전형적인 외모로 대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유대인의 한 부분일 뿐 전체를 대표하지는 못한다.
흔히 ‘유대인(Jews)’라고하면 단일 인종이나 민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생긴 선입견이다. 유대인의 조상인 히브리 민족은 역사상 자신들의 나라를 가진 시기는 몇 백 년에 불과한 정처없이 떠도는 유목민족이었고, 왕국을 세운 이후에도 주변 강대국에 의해 무너져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 수 밖에 없는 신세였다. 기원전 587년의 바빌론 유수와 기원후 70년에 로마에 의한 이스라엘의 몰락으로 흩어진 유대인들을 가리켜 ‘디아스포라(Diaspora)’라 부른다.
이렇게 흩어진 유대인들은 중동으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심지어 아시아로도 건너와 삶의 터전을 일군다. 그들은 현지에서 배우자를 얻어 살면서 세대에 걸쳐 인종적인 특징을 잃어버렸지만 종교적, 문화적 관습을 꾸준히 지켜나갔고 이들이 시오니즘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국가를 세운 것이 지금의 현대 이스라엘이다.
누가 유대인인가??
그렇다면 과연 유대인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정부에서 ‘귀환법(the Law of Return)’에 따라 이민을 허용하는 ‘유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유대교를 믿거나 그 율법을 따르는가에 상관없이 혈통적으로 부모가 유대인인 경우 당연히 그 자녀는 유대인이다. △조상 중에 유대인이 있었다면 그도 유대인이다. △전혀 관련이 없지만 유대교로 개종하고 그 율법과 관습을 따르는 사람도 유대인이 된다. 직계 혈통에 따른 첫번째 경우를 제외하고는 랍비에 의한 승인을 받아야 하며, 이 경우 대부분 정통파 유대교의 율법을 따를 것을 전제로 한다.
에티오피아에 살던 에티오피아 유대인(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이나 인도에서 삶을 이어가던 코친 유대인(Cochin Jews)이나 베네 이스라엘(Bene Israel) 등은 수 천년 전에 흩어진 유대인의 후손으로 많은 부분 현지 사회에 동화되어 살아왔으나 안식일, 정결율법(코셔? Kosher) 등의 종교적 생활양식을 지켜왔고 이로 인해? 인정받은 이른바 ‘잃어버린 지파(Lost Tribes)’이다. 이들이 조상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유대인임을 인정받은 부류이다.
이외에도 전혀 유대인 조상과 혈연관계가 없지만 유대교로 개종한 경우에도 유대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최근 한 기사를 통해 유대교로 개종해 이스라엘로 이민 온 일본인 목사 부부에 대해 알게 됐는데, 이와 같이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를 믿는 것처럼 간단하게 교적에 등록해 신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토라와 탈무드를 비롯한 각종 경전과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랍비와의 면접시험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 할 때, 같이 있던 독일 아가씨가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해 수년간 시도했지만 몇 차례 랍비와의 면접시험에서 떨어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봤다.
앞서 얘기한 먼 조상이 유대인인 경우나 개종을 통한 경우는 드문 경우로 차치하고서라도, 직계 유대인의 후손들도 조상들이 살던 지역에 따라 출신이 구분된다. 크게 아쉬케나지(Ashkenazi)와 세파르디(Shefardi), 그리고 미즈라히(Mizrahi) 유대인으로 나뉜다.
아쉬케나지는 유럽 출신의 유대인으로, 독일 등 중부 유럽에 뿌리를 두고 유럽 전역에 걸쳐 살던 유대인들을 말한다. 통계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 인구 중 400만 명이 아쉬케나지 유대인이고, 전세계의 유대인 인구 가운데서도 80% 이상을 차지한다.
세파르디는 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유대인이다. 크게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출신의 미즈라히 유대인을 포함하지만 15세기 이후 스페인 유대인의 교류가 단절되면서 서로 별개의 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쉬케나지 유대인의 시각에서는 아쉬케나지를 제외한 모든 유대인들을 통칭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에는 14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미즈라히는 히브리어로 ‘동방(Oriental)’이라는 뜻대로 중동 출신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주로 예멘,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을 통칭한다. 최근에는 모로코, 알제리, 수단 등 북아 지역의 마그레비(Maghrebi) 유대인도 포함해 미지라히 유대인의 범주에 둔다. 역시 140만 명 정도가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이 범주 밑에 세분화된 지역별 구분이 있고 각기 전통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스스로 이 중 하나의 범주에 속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이스라엘에 모여 살지만 그 사는 모습은 각기 다르다.
유대인의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시오니즘 운동은 박해와 탄압을 피해 그들만의 국가를 갖고자 하는 열망이 컸던 유럽에 있던 아쉬케나지 유대인들로부터 처음 시작됐다. 실제로 시오니즘 운동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들은 거의 다 유럽 출신이었고, 처음으로 팔레스티나 땅으로 건너온 이들도 모두 유럽으로부터 온 이들이었다.
그 이후 유대인 인구 600만 명의 국가로 성장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각 출신별 유대인들이 각자의 서로 다른 모습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마치 미국 안에 다양한 인종이 섞여 ‘샐러드볼(Salad Bowl)’을 이루고 사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이스라엘식 샐러드볼’을 이루고 살고 있다. 공통된 유대교의 종교와 문화로 이름을 붙였지만,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은 생활양식이 각기 다른 출신별 유대인 집단이라 하겠다.
다양한 출신의 유대인들… 그 안의 갈등?
‘유대인’이라는 하나의 범주에 묶어 놓았지만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고, 오랫동안 자신의 출신지별 생활양식, 그리고 종교적 성향에 있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이들은 서로 간의 갈등과 심한 반목마저 존재한다. 단순히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경제적 수준 차이로 인한 불만도 존재한다.
애초에 이스라엘로 건너온 아쉬케나지 유대인들은 부유한 출신들이 많았고, 또 초기 건국 당시 국가에서 무상으로 지원한 키부츠나 모샤브 같은 농경지와 여러 혜택들로 인해 현재는 넉넉한 부를 축적하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이후 원래 살던 곳에서의 낙후된 삶으로부터 도망쳐 온 세파르디나 미즈라히 유대인들은 건너올 때부터 사회의 하위 계층으로 편입되었고, 대부분 기능공이거나 상인이었던 그들은 초기 농업 위주의 정착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해 충분한 경제적 기반을 다지지 못했다.
초기부터 사회 경제적 차이를 가지고 있던 이들은 통혼에도 부정적이었다. 1950년대 후반에는 서로 다른 출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이이들의 비율이 14%에 불과했고,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도 30%를 넘지 못했다. 2004년 이스라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아쉬케나지 유대인이 미즈라히 유대인에 비해 대학 진학률이 두 배가 더 높으며, 같은 해 아드바 센터의 조사 결과에서도 아쉬케나지 유대인의 수입이 미즈라히 유대인보다 36%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점차 소득수준이 개선되면서 그 차이는 많이 줄어들었으나, 새로이 이스라엘 사회에 편입된 베타 이스라엘이나 인도계 유대인들이 다시 그 아래로 들어갔다.
현재 이스라엘의 최하위 계층으로 손꼽히는 유대인 집단은 에티오피아로부터 건너온 흑인 유대인들-베타 이스라엘-이다. 2009년에 페타 티크바의 한 학교에서 입학을 거부당한 사건이 이슈가 되었고, 최근 2012년에도 남부 이스라엘의 도시의 집주인들이 이들에게 세를 주는 것을 거부하여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90년대 말까지 이들의 기증 헌혈을 전량 폐기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고, 최근에는 에티오피아 이주 여성들에게 강제로 산아제한 주사제를 투약한 것으로 밝혀져 큰 논란이 벌어졌다. 실제로 10년 동안 이들의 출산율은 50%가 떨어졌다. 이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는 아랍계 이스라엘인보다 낮을 정도이다.
지역감정? 인종차별??
우리도 하나 된 한민족을 얘기하지만 출신 지역에 따른 지역감정이 분명히 자리잡고 있고, 특히 최근 인터넷상에서 한 지역을 두고 비하의 대상으로 사용하는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사회 풍조는 여전하다. 또 정부 인사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얘기가 ‘지역별 안배’로, 지역의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각 지역에서 불만의 소리가 없도록 하는 일종의 ‘배려’에 가깝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출신별 갈등도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슷한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 측면도 있다. 백인에 가까운 아쉬케나지 유대인이 상위 계층을 차지하고 남부 유럽 출신의 세파르딤, 중동 출신의 미즈라히, 그리고 인도계와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으로 갈수록 피부색이 검어지면서 사회 계층의 아랫 부분을 차지한다. 지리적으로 중동에 있지만 중동이 아닌 유럽의 국가이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자신의 뿌리에 가까운 이들을 낮추어 보는 것은 아닐까.
2013년 미스 이스라엘 월드 수상자는 이티쉬 티티 아이나우(Yityish Titi Aynaw)로, 최초의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수상자이다. 이를 두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선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제기되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움직임이 이스라엘 사회에서 다양한 출신간, 인종간의 인식을 새롭게 하고 갈등을 희석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