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칼럼] ‘아레테’가 지도자 최고 덕목

소아시아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도시 에페소, 켈수스 도서관의 아레테 조각상 <사진=위키미디어>

배철현의 나는 누구인가 ⑥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딧세이아’ 등 통해 위대한 영웅 찬양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위대한 국가나 기업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한 나라를 창건한 왕이라고 해서, 혹은 한 기업을 창업했다고 해서 자식에게 그 나라나 기업을 물려주는 몰염치한 상황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종교인들, 특히 대표적인 대형 교회의 목사들 중 자식에게 넘겨주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있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전근대적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왜 21세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나? 왜 다른 동물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났는가? 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애쓰는 것인가? 서울대는 신입생들에게 입학 전 2박3일간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필자는 나름대로 ‘수재’소리를 들으면서 입학한 학생들에게 “너희들은 1%의 노력과 99%의 운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고 강의한다. 그 나이 또래 대부분은 아프리카나 중동 등 이름 모를 지역에서 99% 태어난다. 대한민국 같은 나라 혹은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에 태어날 가능성은 1% 미만이다. 서울대에 들어온 학생들은 자신의 운을 감사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는 150개 이상의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 도시국가는 고대 오리엔트의 정치 틀인 왕정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었다. 당시 소아시아(터키) 해변에는 그리스에서 이주한 이오니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등장한 페르시아제국이 이 해변도시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참주(僭主)제도를 정착시키면서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시작한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제국에 근본적인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왕정이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인간이 이 세상에 다른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그 신분은 공동체인 도시(Polis)에서 ‘아레테(Arete)’를 실현하기 위한 바탕이라고 생각했다. 지도자는 고대 그리스어로 ‘아레테’를 어김없이 발휘한 자들 중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런 과정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왕권을 자식에게 불려주는 행위를 ‘바바로스’ 즉 ‘야만적’이라고 정의하였다. 영어 단어 Barbarian이 여기서 파생하였다. 즉 ‘야만인’은 ‘아레테’가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이다.

<일리아스>의 주인공 아킬레우스가 죽은 헥토르의 시신을 말에 매달고 트로이 성문 앞을 의기양양하게 질주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아레테’ 갖춘 자 투표로 선출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레테’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의미한다. 굴뚝의 ‘아레테’도 있고, ‘황소’의 아레테도 있고, 사람의 ‘아레테’도 있다. 아레테는 그것이 무엇을 묘사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사물이나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고유한 아레테가 있기 때문이다. 아레테의 원래 의미는 ‘자신의 삶을 우주의 질서에 맞게 연결시킨 것’이다. 인간 자신이 시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묵상을 통해 깨달아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삶을 바로 아레테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크랫(Aristocrat)’이란 영어단어는 흔히 ‘귀족’으로 번역되는데, 숨겨진 본래 의미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깨달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며, 이들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하는 일이 천직이라고 깨닫고 묵묵히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이 모두 아리스토크랫이다. 기원전 750년 호메로스는 450년 이상 구전으로 내려온 서사시를 문자로 옮긴다. 고대 그리스에는 다소 난해한 음절문자인 선형문자 A와 선형문자 B가 있었으나, 그들이 수백년간 노래한 서사시를 기록하는데 적합하지 않았다. 이들은 페니키아인들로부터 배운 셈족 알파벳을 차용하여 이 노래를 적었다. 이 노래가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다. 이들은 각각 두 명의 위대한 영웅들의 아레테를 찬양하고 있다.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바로 아킬레우스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 영웅으로 아레테를 발휘한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함락시키러 갔지만, 아킬레우스 도움 없이 그 전쟁을 이길 수 없다. <일리아스>에 처음으로 등장한 ‘아레테’라는 개념은 바로 아킬레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용맹성을 의미한다. 후에 등장하는 그리스 교육과 그리스 올림픽은 바로 이 육체적인 탁월함인 아레테을 연마하는 장소이다. <오딧세이아>의 주인공 오딧세우스는 아킬레우스와는 다른 아레테를 지녔다. 그는 자신의 말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말솜씨를 지녔다. 그는 트로이전쟁서 아킬레우스처럼 죽지 않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향인 아타카로 항해하는 동안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사이렌과 같은 여신의 유혹을 대화로 설득하여 자신의 뜻을 이룬다. 아레테는 육체적인 탁월함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통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언변의 탁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아레테를 ‘인간 노력의 탁월함’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아레테를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에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레테는 자신이 최선을 이루겠다는 결심과 노력이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지속적인 마음이다.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는 확신, 이를 지속적으로 완성해 나가려는 겸손에서 아레테는 시작한다. 그리스 교육체계는 암기가 아니라 참여다. 매일매일 체육관에서 운동을 통해 육체를 연마하며 그동안 알지 못하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는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무아(無我)상태를 연마하여 정신적인 최선을 지향한다. 거기에는 사지선다가 없다. 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성적이 아니라 경쟁이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올림픽경기를 통해 경쟁하는 것처럼, 시·산문· 연극·음악·그림·연설을 통해 아레테를 연마한다.

시·연극·운동 등 통해 연마

아레테를 가장 많이 연마한 자들인 아리스토크랫은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적·정신적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타인의 다양한 마음을 진실로 이해하고 그들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바로 공부다. 이런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자신의 것처럼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이에 따라 공동체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여 자연스레 ‘존경’을 보낸다. 이 존경을 그리스어로 ‘티메’라고 부른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최선을 지향하는 노력이 바로 아레테이다. 스스로 최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레테는 떠나버린다. 오랜 연마를 통해 아레테에 이른 이에게 공동체는 존경심인 티메를 선사한다. 티메는 사람이 타인의 다양한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무아의 능력으로 그에게 서서히 쌓이는 신의 선물과 같은 것이다. 티메는 지도자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는 ‘야만인 지도자’가 많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여러 길 중에 하나는 아레테를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레테를 깊이 연마해야 티메가 오며, 티메를 지닌 사람이 지도자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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