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명원 기획 배철현 교수의 외침 “호기심 없으면 과거에 매인 좀비일 뿐”

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상황들을 심문하면, 내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새로운 미션이 서서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모든 과학(科學)은 한 가지 목적이 있다. 자연(自然)에 대한 이론을 밝히기 위해서다. 여기서 자연이란 인간 본성에 대한 자연일 수도 있고 우주와 삼라만상이라는 자연일 수도 있다.

나에게만 주어진 미션을 알아가는 과정(科程)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과학(科學)이다. 그 미션을 통해 여러 과학자들이 우주의 탄생과 진화, 인간의 본성과 문명의 과정을 설명해왔다.

[아시아엔=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건명원 기획자]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산다. 내가 걸은 발자취가 기반이 되어 나를 규정한다. 인간은 그런 의미에서 ‘과거지향적’이다. 우리는 과거의 천재들과 거장들의 어깨에 올라서서 내일 바라보려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순간’이다. 우리는 위대한 인물들과 발견들에 대한 자서전을 읽고, 그들의 역사를 탐구하고 비판한다. 그러는 동안 ‘지금’은 흘러간다.

왜 우리는 우주와 자연, 그리고 자기 자신에 관한 독창적인 관찰을 탐구에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가? 왜 우리는 과거의 어떤 현상이나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傳統)에 맹목적으로 매달려 자기 자신에 대한 철학이나 시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과거 성인들의 천재성을 관찰하지 않고, 그들의 사상이나 종교라고 만들어진 교리나 규율들에 복종하면서, 정작 오늘 이 순간에 우리 마음 속에 움트고 있는 직관을 통한 철학이나 종교를 무시하는 걸까?

우리가 밖으로 나가면 그 순간에 충실한 나무, 꽃, 시냇물 등이 우리를 반긴다. 이들은 유유자적하며 한 순간도 가만 있지 않고 역동적으로, 파괴적으로 자신을 변모하고 있다. 인간도 매일 매일 변하고 있지만, 문제는 우리의 생각은 어느 순간에 고정되어 변하기를 의도적으로 거절하고 있다. 만물은 우리를 부르고 있다. 매 순간 변화라고.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특징이다.

왜 우리는 과거의 마른 뼈들 가운데서 어슬렁거리며 그 안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 순간의 비밀을 찾으려는 것인가?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근대의 등장을 억압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의 것들을 답습하고 학습시키는 학교, 그것들을 규제하기 위한 경찰,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자들을 감금해 버리는 감옥.

우리가 실제로 경찰에 발각되어 교도소에 감금된다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배운 세상에 대한 의견과 편견으로 스스로가 자신의 새로운 순간을 감지하려는 성향을 규제하는 경찰이 되었고, 자신의 자유롭고 천재적인 생각들을 감금시키는 교소도가 되었다.

예수, 붓다, 공자, 아인슈타인, 괴테를 비추었던 태양은 오늘도 우리를 비춘다. 근대와 현대사회, 특히 민주화-산업화-정보화를 거쳐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우리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수 많은 도구들을 쉽게 접한다.

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생각들이 인문, 과학, 예술분야에서 넘쳐나고 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종교로 만들어야 한다. 이 시대에는 묻지 못할 질문이 없다. 우리의 호기심이 우리 자신을 가장 선명하게 응시하는 현미경이다.

당신의 호기심은 무엇인가? 호기심이 없다면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그저 과거에 살고 있는 좀비에 불과하다.

내가 처해있는 이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관찰은 이집트 성각문자와 같이 해답이 없어 보이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첫 번째 단초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 상황은 보편적인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풀어야할 첫 번째 장애물이다.

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상황들을 심문하면, 내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새로운 미션이 서서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모든 과학(科學)은 한 가지 목적이 있다. 자연(自然)에 대한 이론을 밝히기 위해서다. 여기서 자연이란 인간 본성에 대한 자연일 수도 있고 우주와 삼라만상이라는 자연일 수도 있다.

나에게만 주어진 미션을 알아가는 과정(科程)을 잘 정리해 놓은 것이 과학(科學)이다. 그 미션을 통해 여러 과학자들이 우주의 탄생과 진화, 인간의 본성과 문명의 과정을 설명해왔다.

가장 추상적인 진리는 가장 현실적이다. 실재와 현실에 관한 탐구가 바로 학문이다. 이 진리탐구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면, 그 이론은 자기 나름대로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증거를 지닌다. 그 이론으로 현상을 시험하고 설명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가진 언어로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삶의 내용들, 언어, 잠, 정신이상, 꿈 등을 완전히 설명하지도 못했고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자, 내 자신을 직시하기 위해 자신에게 시간과 장소를 집중하는 솔리튜트(solitude)의 상태를 습관화하자. 내가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지 않지만 솔리튜드하지 않다.

만일 우리가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밤하늘의 별을 보자. 밤하늘의 별이 발사하는 별빛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과 사물로부터 구분해준다. 그 별빛은 숭고함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그 선물은 바로 내 자신이 바로 그 ‘별’이라는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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