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총화’ 6.10항쟁 아무도 기리지 않은 것도 메르스 탓인가?

 2012년 6월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 항쟁 25주년 국민행사, 2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범국민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 헌화를 하고 있다.

2012년 6월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 항쟁 25주년 국민행사, 21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범국민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이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 헌화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19년 9월11일 상해임시정부의 개헌 형식으로 한성정부의 조직을 계승하여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고,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하는 통합임시정부가 성립되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는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했다. 1987년 헌법에서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하였다.

3.1운동은 민족혁명이었다. 불과 10년 전에 망한 대한제국을 되찾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일합방 후 10년 동안 민족의 자주독립의식은 활연(豁然)히 깨었다. 조선과 대한제국에서 백성(百姓)과 신민(臣民)에 지나지 않던 민족(民族)은 비로소 국민(國民)이 되었다.

최남선이 기초한 기미독립선언은 웅혼한 기백과 장려한 사상으로 영국의 마그나카르타,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의 인권선언과 같은 대장정이었다. 이를 읽어본 일본 지식인들이 이런 사상과 문장이 있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다는 것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라고 차탄(嗟歎)하였다.

1960~70년대 의식 있는 고등학생들은 기미독립선언문 전문을 암기하였다. 이를 풀어내어 한글세대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지만 이는 궁색한 편법이다. 어렵더라도 이를 익혀 어휘를 넓히고 사상을 정교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말과 글의 탯줄인 국어교육의 핵심이다.

“이천만 각개가 인(人)마다 방촌(方寸)의 인(刃)을 회(懷)하고 인류통성(人類通性)과 시대양심(時代良心)이 정의의 군(軍)과 인도(人道)의 간과(干戈)로서 호원(護援)하는 금일(今日), 오인(吾人)은 진(進)하여 취(取)하매 하강(何强)을 좌(挫)치 못하며 퇴(退)하여 작(作)하매 하지(何志)를 전(展)치 못하랴.”

6.10항쟁은 시민혁명이었다. 6.29는 6.10항쟁에 따른 전취물(戰取物)일 따름이다. 그러나 4.13총선에 의한 여소야대는 국민의 분열을 가져왔다. ‘우리가 남이가?‘에 격분한 호남에서는 황색바람이 불었다. 오늘날 한국정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망국적 지역감정이 깊어진 것은 이를 조장하고 이용한 자들 때문이다. 건국 초기 조선과 일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호남의 인재는 이승만과 함께 건국의 주류를 이루었다.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 낭선 김준연(朗山 金俊淵) 월파 서민호(月坡 徐珉濠) 소석 이철승(素石 李哲承)…

지금 이들과 같은 무게를 갖는 호남의 인물이 어디에 있는가? 김대중 컨벤션센터, 김대중 도서관, 김대중 노벨 평화상기념관… 이처럼 모든 후광을 후광 김대중(後曠 金大中)이 독차지해도 되는 것인가?

통일은 주변 4국이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대한 긍지와 신념이 북으로 넘쳐흐를 때 통일은 기적같이 온다. 오늘날 정치에 간여하는 자들의 행태와 민낯을 보라. 그런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켜내고 발양(發揚)할 수 있겠는가? 메르스에 허둥대는 정부를 보라. 이렇게 문제를 푸는 것이 엉성한가?

민주화의 총화인 6.10이 이처럼 덤덤히 지나갈 수 있는가? 이것도 메르스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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