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유진룡 같은 재상 어디 없소?
사람이 행해야 할 바른 도리를 ‘정도’,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를 ‘정의’라고 한다. 난세의 영웅들 중에서 유독 시골의 일개 돗자리장사에 불과한 유현덕(劉玄德, 161~223)이 천하를 삼분(三分)한 촉한(蜀漢)의 황제로 어떻게 등극할 수 있었을까? 유비(劉備)는 말합니다. “정도는 불멸(不滅)하고 정의는 영원(永遠)하다. 천하가 나를 버릴지언정 나는 천하를 버릴 수 없다.”
유비의 인의와 충의, 신의와 자비가 있어 제갈량과 관우 장비 조자룡 같은 인재를 얻어 마침내 천하를 삼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세출의 인재들이 비록 한날 한시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함께 대업을 성취하고 함께 죽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상하관계를 의리와 인정, 신의를 분명히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비의 리더십은 인재를 볼 줄 알고,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았으며, 백성을 위해 싸울 줄 안 것이다. 삼국지에 보면 조조에게 쫓겨 백성들을 이끌고 성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백성들을 모두 데리고 가면 진군 속도가 늦어져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에서 부하 장수가 유비에게 말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죽고 맙니다.” 그러나 유비는 “그렇다고 해도 내 소중한 백성들을 두고 갈 수는 없다”고 답한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를 하였다. 존경심이란 자신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남이 세워주는 것이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의 <하관(下官)과 상관(上官)의 올바른 관계ㅍ라는 글이 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 ‘봉공편’(奉公編)의 ‘예제(禮際)’라는 조항에는 높은 지위의 벼슬아치와 낮은 벼슬아치, 즉 상관과 하관의 관계는 어떻게 하는 것이 본분인가를 자세하게 열거해 놓았다.
“하관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본분을 삼가 지켜서 상관을 섬겨야 한다”는 전제 아래, 하관은 의당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상명하복(上命下服)’이 하관의 본분임을 말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상관이 바르고 정당할 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내용이다.
옛날의 어전회의는 요즘의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다. 임금이 ‘수첩’에 적은 깨알 같은 글을 읽으면, 대신이나 중신들은 다시 수첩에 그대로 받아 적는 어전회의를 우리들은 본적도 없고 역사의 어떤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다.
상관과 하관들이 함께하는 회의에 대하여, “엄숙하고 공손하고 겸손하고 온순하여 감히 예를 잃지 않게 해야 한다. 하지만 화평하고 통달하여 서로 끼이거나 막힘이 없게 해야 정(情)과 뜻(志)이 서로 공감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 예의 바르고 엄숙·공손한 회의 분위기 속에서도 화합과 소통이 제대로 되는 회의를 다산은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국무회의는 상호 간에 의사가 통달되는 회의 분위기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아 여간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게 아니다.
다산은 분명히 말한다. “사대부의 벼슬살이하는 방법은 언제라도 벼슬을 버린다는 의미로 버릴 ‘기(棄)’ 한 글자를 벽에 써붙이고 아침저녁으로 눈여겨보아야 한다. 행동에 장애가 되면 벼슬을 버리고, 내 뜻이 행해지지 않으면 벼슬을 버리며, 상관이 무례하면 벼슬을 버려야 한다”라고. “그렇지 않고 부들부들 떨면서 오히려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황송하고 겁먹은 말씨와 표정이 얼굴에 나타나 있으면 상관이 나를 업신여겨 계속 독촉만 하게 되어 참으로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다산은 명언을 남겼다.
옛날 재상들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이 그립다. 판서나 정승들, 언제라도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해 버릴 자세를 유지한다. 임금에게 겁 없이 항의하던 당당한 모습, 요즘 TV 뉴스의 국무회의는 왜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