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룡 장관, ‘문화융성’은 개개인의 행복지수 높이는 일
“아시아문화 정체성 결집할 공간 필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형용사는 ‘나이스(nice)’일 것이다. 그를 오래 사귄 사람들은 그가 “말에 군더더기 없고, 행동이 깔끔하며 판단이 빠르고 정확하다”고 말한다.
‘매거진 N’은 유 장관을 5월31일 늦은 오후 장관 집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취임 이후 언론과의 사실상 첫 인터뷰라고 한다. 유 장관과 기자는 문자메시지만 이따금 주고 받고 1년 가까이 만나지 못했지만 며칠 만에 재회하는 듯했다,
-직원들이 유 장관 취임을 무척 반겼다더라. 요즘 장관을 힘들 게 하는 일은 무엇인지?
“여러 부처에서 모인 직원들이 배타적이지 않고 외부에 줄 대는 일도 없이 열심히들 한다. 참 고맙게 생각한다. 문화계쪽 요구가 많고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예산의 3분의 2 정도를 지원에 쓰는데, 일부 단체에 편중돼 온 면이 있다. 영화는 잘 되는데 스탭들은 배고픈 것처럼 ‘무조건 지원하지는 말자’는 게 문화부 입장이다. 지속가능한 곳에 일자리를 만들어 새로운 수요층을 창출하도록 지원하는 게 목표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국정지표로 내세운 것은 매우 인상 깊은 일이다.
“문화융성은 문화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확산돼 국민 개개인의 행복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나눔과 배려, 화해와 상생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광산촌인 삼척 도계고교생들이 광부 아버지와 자신들 얘기를 뮤지컬로 만들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이런 게 바로 문화의 힘이고 새 정부가 추진하는 문화융성의 목표이며 결과물이 될 것이다.”
-좌우명은?
“공직생활하며 ‘견리사의(見利思義)’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가슴에 늘 담고 있다. 또 공직에선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혜택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부당한 일이다. 혜택보다 책임을 더 지는 게 고위공직자의 길이다.”
그는 부임 후 조직의 보고방식을 개선하고, 특히 외부청탁 등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한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있다고 직원들은 전했다. 국회의원 등의 지역민원을 간부들과 협의하며 ‘특정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처리하도록 한다. 예전엔 좀처럼 볼 수 없던 일이다.
-한류의 지속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 게임, 음악 등의 인기는 유투브 등 저비용 실시간 비즈니스가 가능해진 환경적 요인과 경쟁력 있는 콘텐츠 덕분이다. 그러나 불법 복제, 불공정 계약, 콘텐츠 산업의 영세성, 창업자금 부족 등 과제도 많다. 표준계약서 마련과 저작권 보호, 콘텐츠 다양화, 창작자 중심의 산업생태계 구축 등에 주력하려 한다.”
-60, 70년대 ‘타임’이나 ‘뉴스위크’는 한국 대학생, 지식인들에게 서구선진국을 들여다보는 창이었다. 아시아기자협회가 주축이 돼 창간한 ‘아시아엔’과 ‘매거진N’도 동남아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이 같은 역할을 추구하고 있다. 한글과 한국어야말로 한류의 가장 중요한 소통수단이라고 본다.
“요즘 지구촌 젊은이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통해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어가 한류 확산은 물론, 세계와의 소통수단이 된 셈이다. 하지만 현지의 한국어 교원과 교재가 많이 부족하다. 현재 44개국 90곳에서 운영중인 세종학당을 2017년까지 200곳으로 확대하고, 누리-세종학당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다문화사회에서 한국의 문화정책은 어때야 하나?
“과거의 결혼이주민과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국사회와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어 교육과 문화콘텐츠 개발·보급이 바로 그것이다.”
-아시아문화의 공통분모는 뭐라고 보나?
“전통적으로 아시아는 물아일체(物我一體), 즉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자연관을 삶의 철학으로 삼아왔다. 아시아는 유럽사회보다 훨씬 차별화되고 분명한 자기 문화적 특성과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이를 자원으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같이 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이 집결된 공간이 필요하다.”
-중동과는 문화교류가 드물고 한류도 미미한 수준인 듯한데.
“중동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K-팝 열풍으로 한국문화에 관심이 높다. 최근 중동은 범아시아적 연대에 중점을 두고 있다. 대표사례가 ‘아시아협력대화’라는 국제회의다. 이를 통해 영화?미디어?출판?인류학 등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발맞춰 이란?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문화원을 설립할 계획이다.”
유진룡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 없이 장관에 발탁된 케이스다. ‘문화융성’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은 대통령이 최적임자로 진작부터 꼽고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유 장관은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 장관과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공직생활의 롤 모델”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에게선 업무추진과 공직자로서의 태도, 김 전 수석은 공직 은퇴 후 20년 이상 백수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너무 맘에 들어서라고 했다.
그는 장관직을 마치면 “탈북 학생들이 다니는 여명학교나 다문화단체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 대문장가 앙드레 말로를 문화부장관에 발탁한 프랑스가 떠올랐다. ‘문화부장관 출신이 수상에 오른 나라가 있었나?’ 하는 물음과, 부국강병은 경제와 정치가, 국격은 문화가 완성시킨다는 말도 머릿속을 몇 번 스쳐갔다.
기자는 인터뷰를 마치며 유 장관에게 만년필로 원고지에 “출근 땐 미소로, 활짝 웃음으로 퇴근하시라”고 적은 쪽지를 두 권의 책과 함께 건넸다. ‘아시아엔’이 발간한 수아드 알 사바 시인의 <쿠웨이트 여자>와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전했다. 인터뷰에 응해준 데 대한 감사표시로 ‘행운의 2달러’짜리 지폐와 함께. 얼굴에 미소가 활짝 퍼진 장관 얼굴이 언제나처럼 아주 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