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을 ‘정치 스승’으로 여기는 조윤선 장관
“수 만 명과의 소통도 한 사람과의 소통처럼 하고 싶다”
조윤선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 하면 얼른 떠오르는 단어가 ‘대변인’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시티은행 부행장을 지내다 정계에 입문해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대변인을 거쳐 인수위원회에서도 대변인을 맡았다. 기자와 조 장관은 대선 직후 그가 인수위 대변인에 임명되던 지난해 12월24일부터 이튿날 사이 다음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겸손, 불필요한 언급 자제, 콜백, 먼저 인사 이런 거 꼭 지켜 더 중책 맡길 축하!”(12.24 오후 6:09) “선배님 고맙습니다. 사랑 받는 정부로 출발할 수 있도록 겸허하게 성심 다하겠습니다. 푸근한 연말 되세요”(12.25 오전 3:59) “새벽 문자 잘 봤어요. 난 박 대통령이 귀걸이 안 하시는 게 참 맘에 들어요.”(12.25 오전 10:15) “박 당선인 새해 첫날 광주 방문하여 호남 민심을 어루만져 주길 바랍니다”(12.25 오후 10:11) “옙”(12.25 오후 10:12)
이후 신문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조 장관 귀걸이는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가장 신임 받는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박근혜 대통령의 평가마냥 ‘뭘 하나를 하면 깊이 들이 파는’ 성격에다 기자들과 소통도 잘하고 빼어난 미모 덕도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조 장관에게 “여성의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전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만들라. 일과 가정의 양립, 여성인력 문제는 전 부처와 연결돼 있으니 부처간 칸막이를 없애고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조 장관은 “관성대로 하지 말고 창의적으로 해달라는 대통령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귓전에 맴돈다”고 했다.
기자는 7월8일 오후 여가부 접견실에서 조 장관을 인터뷰했다. 하루 10여 개 일정을 소화하느라 30분도 내기 어렵다고 했지만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세계적으로 여성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도 미국 차기 대선후보로 예상된다. 정치인으로서 여성의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위머노믹스(womenomics)’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여성노동력은 세계경제의 역동적인 성장엔진이자 미래경제의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두터운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비례대표 여성 할당제가 도입됐는데도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아직 2012년 현재 15.7%에 불과하다.”
-중동국가와 아프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선 여성에 대한 차별, 심지어 학대도 자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대책이 없을까?
“양자적 지원과 동시에 유엔 등 국제기구와 손잡고 지역 여성들의 역량강화 및 인권보호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여가부가 진행 중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은 크게 세 가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 39개국에 여성직업 능력개발 교육훈련 지원, 베트남에 여성직업능력개발센터 구축 및 운영, 그리고 캄보디아의 성매매 피해자 지원프로그램 등이다. 유엔 여성 기여금도 올해 467만 달러(약 53억원)를 부담한다. 유엔이나 OECD, APEC 등 주요 국제회의에 참가해 분쟁지역 여성인권 보호와 여성 분야 협력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인류역사상 최초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이룩한 몽골의 경쟁력은 다른 문화 수용과 융합의 결과라고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다문화 자녀들에 대해 우리와 ‘같은 울타리’ 안의 ‘똑같은 국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데, 여가부의 복안은?
“국제화를 넘어 ‘다문화국가’를 향해 가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문화가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일반국민과의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다. 다문화를 둘러싼 우리 사회 인식개선과 사회통합을 위해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남과의 차이를 오히려 쉽게 받아들이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교과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여성 지도자 가운데, 박 대통령 외 롤모델로 삼거나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분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이유는?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경우 그 분의 추진력과 결단력을 닮고 싶고, 조정과 설득, 책임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도 롤모델 중 한 분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여러 차례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마음을 담은 섬세한 소통으로 수 만 명과의 소통조차 한 사람과의 소통처럼 느끼게 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박 대통령께서 정치 지망 후배들에게 ‘오로지 국민만 보고, 국민을 믿으면 된다. 그러면 국민들이 소박하게 보답해 주신다.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정이 쌓인다’고 한 말씀을 늘 새기고 있다.”
-국무위원으로서 부처 간 이해가 상반될 때 어떻게 수용하고 조정하는지? 예를 들어 ‘셧다운제’ 같은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와의 의견대립과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책추진 때 부처 간 추진방법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 큰 틀에서의 원칙, 수요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 현 정부는 모든 부처가 공개·공유·소통·협력 원칙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초기단계인 셧다운제는 계속 성과를 점검해 나갈 것이다.”
-주한외교 사절 부인들은 대체로 남편을 따라 활동하거나 겨울철 김장 담그기 정도밖에 언론에 노출되지 않고 있다. 이들과 함께 자국의 여성 혹은 가정문제 같은 포럼을 주도하면 한국의 여성지위 수준을 소개도 하고 벤치마킹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을 텐데….
“주한 외교사절 배우자들은 언론에 노출되는 것보다 훨씬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문화와 자선 부문 등에서는 외교사절보다 더 교류의 중심이 되고 있다. 앞으로 여성문제, 다문화가족 문제 등 관련해 주한 외교사절 부인들과 여가부가 함께 협력하고 협의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
-아시아 각국은 중앙아시아 몇 개국을 빼고는 여성 저널리스트 활동이 매우 활발하고 특히 한류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들에게 대한민국 여성부 장관으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의 직선 여성대통령이 탄생한 점은 역사적이고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한국의 집단지성 수준과 민주주의 성숙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규모 등을 감안할 때 경제활동 참여율이나 정치권한 등 양성평등 면에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여성대통령 탄생을 계기로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여성 전 일생을 통틀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해나가고자 한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지? 7월6일자 <조선일보> 북섹션에 휴가철 읽어야 할 책으로 <불평등의 대가>, <비엔나 1900>, <자기만의 방> 등 3권을 소개했더라.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최연혁)를 읽었다. 스웨덴에서는 국회의원직이 철저한 국민의 공복으로 힘겨운 직종으로 여겨져서 충원이 어렵다고 한다. 이같은 스웨덴 사회의 발전상과 양성평등의 면모를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어느 정도 제시하는 듯한 느낌도 좋았다. 내가 추천한 세 권의 책은 여성과 성평등, 문화와 관련된 것들이다.”
문화예술 쪽에도 특히 관심이 많은 그는 자신의 문화관을 담은 책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2007)와<문화가 답이다>(2011)를 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