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주의자’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요동치는 동북아 정세,?19세기 재연 보는 듯”
강창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민주당·3선·제주시갑)은 여야는 물론 정부 인사들과도 두루 친하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관계로서의 인간’보다 ‘사람 자체’를 좋아하며 스스로 ‘사람주의자’라고 말하는 것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기자는 강 위원장과 7월5일 낮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서 마주 앉았다.
-최근 펴낸 <여의도에서 이어도를 꿈꾸다>를 밑줄 쳐가며 다 읽었는데 ‘사람주의’란 말이 인상적이더라.
“한마디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얘기다. 평화, 생명, 시민, 감성 이런 말들이 어우러진 개념이라 할까? 홀로선 주체, 그게 바로 인간이며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주인 되는 사회가 사람주의의 핵심이다.”
재벌, 공룡멸종의 교훈 되새겨야 개혁
음식이 나오자 그는 소주를 시켰다. ‘음주인터뷰’가 시작된 것이다. 강 위원장은 “인간이 참 독하다. 아마 같은 종끼리 무한경쟁하고 죽이는 동물은 인간 외엔 없을 것”이라며 “80년대 일본 유학시절 저녁 사주시던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립다”고 했다.
“추기경님이 일제 때 징병 끌려가 며칠을 굶은 적이 있는데, 동료가 멧돼지 고기 맛 좋다며 같이 먹자더란다. 그걸 먹고 토하고 꿈자리도 사납고 하더라는 거다. 그런데 동료 한 명이 안 보이더라나. 추기경님은 어떤 짐승도 같은 종은 안 죽이고 안 먹는데 인간은 사형도 시킨다고 하십디다.”
-요즘 재벌들 행태에 대한 지적도 많고 개혁 필요성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위원장으로서 어떻게 보시는지?
“공룡 멸종이 좋은 비유가 될 거다. 공룡은 육식뿐 아니라 채식도 했다. 덩치 큰 놈이 짐승은 물론 풀까지 다 뜯어먹으니 먹이사슬이 끊어지고 마지막엔 먹을 게 없어 흙까지 파먹다 굶어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공룡멸종의 교훈을 모르는 대기업들이 많다. 다행히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돼 재벌 오너들도 국회 증인 출석을 피할 길이 없게 됐다. 사법부가 사회 변화와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어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한중 FTA에 대해선?
“나는 FTA 반대론자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시기상조론자’지. 농어촌에 자급자족 기반을 마련해 준 후 해도 늦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일본한테 배울 점이 많다.”
-강 위원장은 40년 이상 ‘제주4·3사건’에 천착해온 것으로 안다. 강 위원장께 4·3사건은 무엇인가? 심중에 언제나 제주4·3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맞다. 내 영혼은 온통 제주4·3사건과 맞닿아 있다. 4·3사건은 한민족 최대 양민학살사건이자 냉전체제기에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개입된 세계사적 사건이다. 1948년 봄, 토벌대에 의해 5개월간 하루 평균 130명 이상 모두 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후 만 31년이 지난 1979년에서야 처음으로 4·3위령제를 지냈다. 이어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 <순이삼촌>을 발표해 4·3의 아픔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1999년 12월26일 국회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고 4년 뒤인 2003년 10월31일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1972년 서울대 제주도학우회 회장을 하면서 처음 4·3의 진실을 접한다. 동문이었던 고광옥(동아대 교수), 문무병(시인 겸 제주도전통문화연구소장) 등과 제주도를 구석구석 누비며 4·3 원혼들을 만났다. 강 위원장은 “제주4·3사건은 난징 대학살, 타이완 2·28사건, 일본 오키나와 학살, 광주민주항쟁 등과 맥이 통한다. 그런 관점에서 동아시아에서 자행된 국가테러리즘의 하나라고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참 뜨겁게 살아왔다. 사람들과는 조약돌처럼 둥글게 살아왔지만 야만의 역사 앞에서는 뜨겁고 치열하게 부딪치며 살아왔다. 몸은 처절하게 부서졌지만 정신만큼은 더욱 단단하고 옹골지게 변해갔다”고 했다.
정치인 10개 유형 “책사·극사·낭사·요사…”
-기자는 ‘정치판’이라고 하지 않고 되도록 ‘정치권’이라고 표현한다. 정치가 중요한데, 깎아내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강 의원 책 곳곳엔 ‘정치판’이라고 돼 있더라.
“정치가 중요하긴 한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친구들도 있다. 일반인 수준을 밑돈다. 내가 정치인을 10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게 있다. 첫째 의로운 뜻을 세워 강하게 밀어붙이는 지사(志士) 또는 의사(義士)형, 둘째 말 잘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아나운서형 의원들은 연사(演士), 변사(辯士)형이다. 셋째 두뇌회전이 비상한 책사(策士)형, 넷째 카메라만 보면 환장하는 탤런트 같은 극사(劇士)형. 다섯째 겸손이 하늘을 찔러 귀신도 울리는 정치인, 그들은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입에 발린 좋은 말만 늘어놓는 첨사(諂士)형. 여섯째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멋과 풍류를 아는 이들로 낭사(浪士)형, 일곱째 힘깨나 쓰며 육두문자는 예사고 격투기까지 자랑하는 장사(壯士)형, 여덟째 머리가 비상하며 어느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내는 모범생으로 재사(才士) 혹은 박사(博士)형이 있다. 아홉째는 이간질 잘 하고 끼어들기 좋아하며 자신 이익을 위해선 살살거리지만 불리할 땐 홱 돌아서는 매몰찬 요사(奸邪)형, 마지막 열 번째는 럭비공이나 뇌관 풀린 수류탄 같은 이들로 돌사(突士)형이 있다.”
기자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라고 하자 그는 “나쁜 유형은 내가 다 기록해 놓고 있지만 아직은 밝힐 수 없다”며 몇 사람의 실명만 거론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사형에다 연사형, 김영삼 대통령은 장사형에다 지사형이고 JP는 책사형과 낭사형이다. 정동영은 지사·극사·연사형, 김한길 이강래는 책사형, 손학규 이종걸은 낭사·지사형, 새누리당 의원 중 남경필은 낭사·돌사형, 이재오는 지사형으로 볼 수 있다.”
애초 1시간30분 예상했던 인터뷰는 어느새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다음 일정을 재촉하는 비서의 전화가 걸려왔다.
-역사학자 출신으로 동북아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만나는 사이, 한편으로는 러시아와 일본 최고위층이 미국 용인 아래 긴밀히 접촉한다는 얘기가 있다. 남북한, 중국, 일본에다 미국과 러시아까지 몰려 있는 동북아 질서는 마치 19세기 중엽 이후를 연상케 할 만큼 급변하고 있다. 한편으론 시베리아에서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일본열도를 잇고, 중국대륙과 남·북한을 관통하는 철도건설 등 여러 가지 일들이 다각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우리는 NLL 갖고 여야가 정쟁이나 벌이니….”
-인생의 멘토가 있다면?
“돌아가신 천관우 선생님이다. 내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신 분이고, 주례도 서주셨다. 얼마나 후배들을 좋아하시는지 유혁인, 남재희씨 등이 고급 양주를 선물하면 그걸 남대문시장에서 소주로 몇 박스 바꿔서 당신도 드시고 우리들에게도 따라주셨다. 통일을 위해 도와달라는 전두환 대통령 권유로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을 맡으시자 주변에서 훼절(毁節)했다고 다 떠나 만년을 고독하게 살다 가셔 너무 안타깝다.”
강창일은 “섬과 뭍을 초월한 진정한 자유인이 내가 꿈꾸는 이상”이라고 했다. 그를 정계에 입문시킨 정동영은 “강창일에겐 ‘정면승부’란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말”이라고 했다. 기자는 헤어진 후 강창일은 어떤 유형의 정치인인가 생각해 봤다. 책사나 연사와는 거리가 멀고 지사·낭사·의사형에 가깝고 이따금 돌사형 기질도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