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지성사’ 넘어 재외동포·문화콘텐츠 연구에 바친 36년
‘역사학도’로 출발해 응용역사학인 ‘문화콘텐츠학’ 개척?
임영상 교수 정년퇴임 ‘역사와 문화콘텐츠’ 소책자 펴내??
[아시아엔=편집국] 과거 대학에서는 교수가 정년퇴임을 맞을 때, 동료교수와 후학들이 두툼한 정년퇴임기념 논문집을 간행해 증정하는 퇴임행사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퇴임교수를 포함한 학과 교수 및 제자 교수들이 공통의 주제로 글을 쓰고 이를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경향이 있다.임영상 교수는 퇴임을 3년 앞둔 2015년 3월, <경기신문>에 월 1회 칼럼을 쓰면서 3년 후 이를 묶어 자신의 정년퇴임기념 소책자로 묶어 내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칼럼을 크게 △재외동포 △문화콘텐츠 두 주제로 정하고 연재에 들어갔다.
#한국외대생들 큰 사랑 받은 ‘서양문화사’, ‘러시아지성사’ 강의
1982년 3월 만 30 나이에 한국외대 교양학부 교수로 부임한 임영상 교수는 지난 36년간의 학교생활 중에 많은 학생을 만났다. 그는 1982년 시작한 ‘세계(서양)문화사’와 1983년 시작한 ‘유럽지성사’ 교양과목을 10년 이상 가르쳤다. 이 대학에 1984년 3월 사학과가 신설돼 교양학부에서 사학과로 소속이 바뀌었지만 수강생들은 늘어만 갔다.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대학의 교양과목은 △문학 △역사 △철학이 중심이었다.
따라서 외국어를 전공하는 외대 학생들은 역사, 특히 민주화와 산업화를 먼저 이룩한 서양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임 교수는 ‘서양문화사’ 강의를 중간고사까지는 通史로 고대 서양에서 르네상스시기까지 강의하고, 이후에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강의에 이어 지식인과 사회개혁을 주제로 ‘개혁적인 영국의 페이비언 지식인’과 ‘혁명적인 러시아 인텔리겐치야’를 소개했다. 학생들이 기억하는 강의내용은 바로 후반부였는데, ‘유럽지성사’ 강의는 아예 영어교재로 러시아지성사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역사와 문화 아우른 지역학 연구
임영상 교수가 역사에서 문화, 나아가 문화콘텐츠로 연구 방향을 돌린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그는 “1994년 개교 40주년을 맞은 한국외대는 그동안은 ‘한국사회에 세계를 알게 해준 창(窓)’이었다”며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 이제 한국외대는 ‘세계에 한국사회와 문화를 알리는 창’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임 교수는 1994년 4월부터 매월1회 학내의 역사와 문화 전공 교수들과 함께 ‘세계역사문화연구회’를 시작했다.
타 전공 교?강사들과 연구회를 진행하면서 그는 역사에서 문화, 특히 2000년 새천년이 되면서부터는 문화콘텐츠학 연구로 관심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1997년 외대의 세계역사문화연구회 교수들이 함께 출간한 <음식으로 본 서양문화>와 <음식으로 본 동양문화>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기획이었다.
문화사적인 측면에서 각국의 식관습을 연구한 것인데, 음식문화연구가 지역학의 중요한 분야로 크게 부각된 것이다. <음식으로 본 동?서양연구> 책자는 당시 세계 각 지역에 1년간 파견하여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던 삼성뿐 아니라 식품영양학 전공 교수와 해외탐방을 떠나는 학생 및 일반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끈 연구였다.외국어대 교수들은 다시 2002년에는 <종교로 본 서양문화>와 <종교로 본 동양문화>를 간행했다.
그러나 2004년 4월, 한국외대의 세계역사문화연구회는 ‘세계역사문화연구회 10년’을 갈무리하는 제60회 콜로키움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미 각 지역연구소마다 연구발표모임 등이 활발해지면서 교?강사들의 연구회 참석이 줄어들은 것이다. 연구회를 마무리 한 후, 임영상 교수는 방일권 박사와 함께 <한국외대의 지역연구와 세계역사문화연구회 10년, 1994~2004> 주제로 10년의 연구회 활동을 정리, 발표했다.(<이문논총> 제24집, 2004.12)
#응용역사학으로서의 문화콘텐츠학 연구
2000년 5월 임영상 교수는 전국역사학대회 분과모임에서 서양사가 아닌 자유패널 분과(정보화시대의 영상역사학)에 참여한 이후 영상문화, 나아가 문화콘텐츠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호서대 김교빈, 경기대 강진갑, 건국대 김기덕, 중앙대 박경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현, 한신대 신광철 교수 등과 함께 한국 대학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시작한 첫 세대다.
임 교수는 1996년 가을학기에 외대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상과 문화: 영화로 읽는 유럽문화’ 유료특강의 시행, 2000년 가을부터 외대 내 어문학?사학?철학 교수들과 함께 준비한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의 설립(2002년 3월)과 인문대 사학과와 철학과, 또 용인(글로벌)캠퍼스 어문학 교수들과 함께 시작한 학부 문화콘텐츠학 연계전공(2004년 9월) 개설에 적극적으로 참여, 외대 문화콘텐츠 전공의 창립자 증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와 같은 외대 내의 경험을 2004년 12월 한신대에서 개최된 인문학과 문화콘텐츠 학술회에서 ‘역사학과 문화콘텐츠’ 주제로 소개했다. (<한신대인문학연구> 제5집, 2004.12)
#국내외 ‘코리아타운’의 역사기록과 ‘위키백과’ 구축
2000년 여름부터 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 연구팀은 재외동포재단,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용역을 받아 구소련 고려인연구를 시작했다. 이미 일부 대학에서 1990년대 초반부터 연구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10년 뒤진 연구였으나, 외대 연구팀의 고려인 연구는 순수 학술연구에 그치지 않고 영상콘텐츠(다큐)의 제작 등 문화콘텐츠 연구와 접맥을 시키면서 진행했다. 한편, 임 교수는 2008년 가을 오사카 코리아타운 방문을 계기로 ‘삶의 한국학’의 현장인 코리아타운 연구에 눈을 뜨게 되었다.
CIS 고려인과 중국 동북의 조선족사회뿐 아니라 일본의 오사카와 도쿄, 가와사키 코리아타운, 미국의 뉴욕과 LA 코리아타운도 직접 방문하면서 현지의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도 수행했다.그 성과로 <코리아타운과 한국문화>(2012)와 <코리아타운과 축제>(2015)가 출판되었다. 또한 최근까지 한국외대 대학원 BK21+에스닉?코리아타운 도시재생 특화전문인력양성사업단 단장(2016.3~2017.12)을 맡으면서 해외의 코리아타운뿐만 아니라 국내의 코리아타운(중국동포타운, 고려인마을)에 대한 연구와 현장답사, 그리고 위키백과 구축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wiki.hufscon.com)
#정년 맞아 펴낸 글모음 ‘역사와 문화콘텐츠’
2015년 3월부터 매월 1회 <경기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임영상 교수는 가능하면 직접 경험한 것을 적고자 노력했다. 주제는 재외동포와 문화콘텐츠로 한정하고자 했는데, 자연스럽게 한류와 해외한국학, 디지털인문학 등으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막상 한권의 소책자로 묶는 과정에서 ‘임영상의 외대역사: 역사 교수에서 문화콘텐츠 교수로’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외대의 지역연구와 세계역사문화연구회 10년, 1994~2004’, ‘역사학과 문화콘텐츠’의 두 글을 제1부로 묶었다.(역사문화연구회, 역사학, 문화콘텐츠 주제) 제2부는 재외동포, 한류, 역사기록 주제로 2017년 11월까지 <경기신문> 칼럼에 실린 총 33편 중에서 23편을 골라 실었다. 또한 2010년부터 지역학 및 문화콘텐츠학으로 ‘용인학’을 시작한 것을 기록하기 위해, 제3부는 2012년까지 <용인시민신문>에 쓴 칼럼 6편과 2017년 출간된 용인학 공통교재에 실은 글을 용인학과 용인문화콘텐츠 주제로 묶어 실었다.
#교수에서 NPO 활동가로
임영상 교수는 지난 해 12월7일 사학과의 ‘역사와 문화콘텐츠’ 강의 마지막 수업시간에 ‘코리아타운과 역사기록, 위키백과’를 주제로 고별강의를 하고 이어서 조촐한 퇴임행사를 가졌다.
임 교수는 이 자리에서 “1982년 3월, ‘빚진 자’의 마음으로 ‘교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외대 학교생활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이후의 삶은 ‘지식’을 나눌 세상으로 나아간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세상은 가리봉동과 대림동의 중국동포타운, 안산과 광주의 고려인마을 등 한국에 정착하고자 하는 귀환 재한동포들과의 삶이다. 이제 3~4년이면 한국 대학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시작한 첫 세대들이 하나둘씩 학교를 떠날 것이다.
임영상 교수는 인문콘텐츠학회(2007.1~2008.12)와 재외한인학회(2011.1~2012.12) 회장을 역임하면서 △재외동포재단 △한국콘텐츠진흥원 △용인시 △경기문화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재청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여러 기관의 용역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