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청년은 실업중] 취업 못하면 인생 선택할 권리도 없다?
해가 바뀌면서 졸업시즌이 다가 오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아시아 청년들은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기 힘들다.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첫발을 내딛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취업하기 힘든 현 세태를 풍자해 한국에선 취업준비생이란 씁쓸한 신조어가 나왔고,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아시아 청년들이 취업난으로 고통받고 있는가? 또 어떤 연유로 아시아 청년들은 졸업과 동시에 구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아시아엔>이 짚어본다. ?-편집자
영화·드라마·소설 속 아시아 청년실업
[아시아엔=김아람 기자] 문화콘텐츠는 시대상을 반영해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에 <아시아엔>은 아시아 청년실업과 취업난을 다뤄 청년들의 공감을 얻은 콘텐츠들을 소개한다. 한국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주제들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2014년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드라마 <미생>(연출 김원석)은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을 다뤄 이 시대 청년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청년들 사이에선 취업에 허덕이는 자신과 친구들을 ‘미생’이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현상도 생겼다.
“요새 불황 아니냐, 불황. 우리나라 백수 애들 착해요. 테레비에서 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부수고 난리를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애들은 다 지 탓인줄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러는 건데. 야, 넌 너 욕하고 그러지마, 취직 안 된다고. 당당하게 살어.”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감독 김광식)에서 삼류건달 동철(박중훈 분)이 회사 부도로 직장을 잃고 치열한 취업경쟁에 다시 뛰어든 세진(정유미 분)을 향해 한 말이다. 이 영화는 ‘갑질’하는 면접관, “취직 못하면 시집이나 가라”는 근시대적인 아버지 등을 조명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2015년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5, 감독 안국진) <열정 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 감독 정기훈) 등의 영화들이 청년실업과 취업난을 다뤘다. 웹드라마 <취업전쟁>은 2014년 중국에 진출해 취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의 아픈 청년들을 달래줬다.
코미디 프로그램들도 어려운 취업현실을 풍자하기 바쁜 걸 보면, 한국에서 ‘청년실업’은 단연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인 듯 하다.
오랫동안 저성장 침체기를 겪은 일본에서도 청년실업과 취업난은 영화, 드라마의 단골소재였다. 이를 다룬 드라마 두 작품을 소개한다. 첫번째로 살펴볼 작품은 <늦게 피는 해바라기~나의 인생, 리뉴얼~>(2012, 연출 이시카와 준이치 外)이다.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고 시골마을 계약직 자리를 얻은 청년 코다이라 죠타로(이쿠타 토마 분)와 의대졸업 후 지도교수로부터 원하지 않는 시골병원 부임을 제안 받은 니카이도 카호리(마키 요코 분)라는 두 청년이 시골마을 시만토에서 겪는 일들을 따뜻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첫방송 오프닝에서 주인공 코다이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나를 받아들여주는 곳에 갈수밖에 없다. 설령 그 앞에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이 오프닝은 일본의 취업빙하기를 단적으로 드러낸 장면으로 꼽힌다.
두번째 작품 <프리터, 집을 사다> (2010, 연출 코노 케이타)는 첫 직장을 3개월만에 관두고 프리터 생활을 하던 주인공 타케 세이지(니노미야 카즈나리 분)가 아픈 가정사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게 된 세이지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취업한지 3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세상은 내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다른 알바들 역시 오래 하지 못했다. 인생이 점점 꼬여가는 것 같다. 가족들 앞에선 알바를 하며 취업준비도 열심히 한다고 당당히 말해놓긴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부모님께 죄송하고 눈치가 보인다.”
이 작품은 2013년 한국에서도 <백수알바, 내 집 장만기>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바 있다. 드라마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프리터는 1987년 처음 일본에서 등장한 신조어다. 15∼34세 청년 가운데 자발적 의사 혹은 취업난으로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일본의 청년취업난을 상징하는 ‘아픈 단어’다.
전세계에서 청년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중동은 엄격한 문화 규제를 시행하는 보수적인 정권으로 인해 청년실업을 중점적으로 다룬 콘텐츠가 드물다. 그럼에도 이집트에선 청년실업을 다룬 두편의 소설이 출간돼 중동 청년들의 공감을 샀다. 단편소설모음 <실업처방전>(2010, 아말 까이리)과 <실업자>(2011, 나사르 이라크)다. 전자는 이집트의 실제 청년실업난을 옴니버스 식으로 풀어냈고, 후자는 이집트의 한 구직청년이 겪는 취업난의 현실과 연애 등을 과감히 그려내며 많은 중동 청년들에게 힘이 됐다.
지금까지 소개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청년들의 현실이다. 이야기속 주인공처럼 현실의 청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자리를 찾아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