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성건동 고려인마을①] 유라시아 고려인이 ‘국제도시 경주’ 되살려내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경주시 성건동 고려인마을 중심거리 금성로에 카페 ‘고려인이랑’이 한달 넘는 준비 기간을 보내고 곧 문을 여는데 우선 간판을 먼저 달았다.
지난 6월 4일 세 번째로 경주시 성건동 고려인마을을 찾았다. 2018년 10월 첫 방문 당시 “경주에 고려인마을이?” 호기심반 놀라움반으로 갔다면, 2019년 10월 두번째 방문은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프로젝트 수행이었다. 두번째 방문에서는 경주 고려인마을 장성우 센터장 주선으로 고려인동포 교사들과 대화도 가졌다.
<동포세계신문> 김용필 대표가 경주 고려인마을 기사를 작성했고, 한국외대 주동완 교수는 성건동 고려인마을 탐방용 문화지도를 제작했다. 2021년 4월 간행된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다: 위키백과와 연결된 스토리 가이드북> 경주 고려인마을 편(204~211쪽)이 나오게 되었다.
세 번째 방문인 이번에는 삼국유사 전문가인 대구대 정호완 명예교수와 문화콘텐츠학 박사로 외국인에게 한국어?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윤랩(YoonLab) 윤애숙 소장이 동행했다. 마침 경북대 사회과학연구원이 간행한 <경주시 고려인 주민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2021.5) 보고서를 미리 받아 읽었는데, 경주 고려인마을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성건동이 가까워지자, 경주 지역 삼국유사 연구를 위해 성건동 주공아파트에 머물기도 했던 정호완 교수는 “대학촌인 성건동이 어떻게 고려인마을이 되었는지?” 윤애숙 소장도 “성건동 고려인마을이 첨성대, 대릉원 등과 함께 경주문화 탐방코스가 될 수 있을지? 고려인마을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을지?” 궁금해 했다.
두 차례 방문했고 탐방용 문화지도 코스도 개발했으니 ‘스토리 가이드’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년반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경주 외국인도움센터(2015)에 이어 고려인동포가 늘어나자 별도로 경주 고려인마을센터(2018)를 세웠고, 다시 경상북도 고려인통합지원센터(2020)를 설립해 운영하는 장성우 센터장에게 연락했다.
바로 답이 왔다. 장성우 센터장은 우리 일행을 고려인 카페 ‘고려인이랑’으로 바뀐, 알콩달콤 카페로 안내했다. 고려인통합지원센터 운영이 너무 힘 들어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고 고려인마을 카페를 운영하고자 막 가게를 임대했다고 했다. 장성우 센터장은 카페 앞 거리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가리키면서 내일(6월 5일) 카페 앞 금성로에서 글로벌 플리마켓이 시범으로 열린다고 소개했다.
현수막을 살펴보니 ‘성건동 특화거리 조성을 위한’ 행사이며, 경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주최하고 동국대 산학협력단과 경주시 외국인도움센터가 주관해 운영하는 행사였다.
광주광역시 월곡동 고려인마을(2019), 인천광역시 연수동 고려인마을(2020)이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되어 진행 중이다. 경주시 성건동 고려인마을은, 경주시에 앞서, 경주의 대표적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이 관심과 지원을 기울여왔다.
성건동이 특색있는 고려인마을로 가꾸어진다면 도시재생, 인구증가, 지역경제활성화, 일자리창출 등 지역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수원은 2020년부터 고려인 한글학교를 지원하고 있고 특히 올해는 고려인 사회적 협동조합인 바실라상사의 기초 자립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사실 성건동은 ‘대학생의 거리’였다. 경주여고도 인근에 있고, 동국대 경주캠퍼스가 지척이다. ‘동대사거리’ 대로변의 고려인 상점 ‘시린’은 간판에 우즈베키스탄과 대한민국 국기를 그려 넣었는데, 지난 5~6년 사이 성건동은 외국인이 거리와 골목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처음에는 중국동포가 많았으나, 2018년 무렵부터 고려인을 비롯해 중앙아시아 출신이 많아졌다. 인근 흥무초등학교는 고려인 학생이 30%가 넘어섰다.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 강사만 5명이다.
흥무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중언어교사인 이예카테리나(31세)는 병설 유치원에서도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카페 알콩달콤에서 만난 이예카테리나에게 알아보니 병설유치원에도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 강사가 자신을 포함해 3명이다. 경주 고려인마을에 자녀 동반 고려인 가정이 많아져 흥무초등학교의 고려인 학생수도 늘어났다.
다문화가정에도 속하지 못해 월 40만원 넘는 보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까닭에 손자녀를 돌보기 위해 고려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들어오는 것도 다른 고려인마을과 비슷한 양상이다.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도 성건동에 많아졌다. 2019년엔 보지 못한 세 상점이 눈에 띄었다. 모두 규모는 작으나 내부 시설을 잘 볼 수 있게 했는데, 특히 ‘탄드르 러시아빵집’은 커다란 중앙아시아 탄드르(화덕)를 설치한 점이 특징적이다.
‘레표시카’(우즈벡의 둥근 빵) 이름을 단 상점들이 인천 연수동, 안산 원곡동에 들어섰는데, 성건동에서는 아예 레표시카(빵)나 삼각형의 우즈벡 고기만두 ‘삼사’를 만드는 화덕인 탄드르를 간판으로 내걸고 있다. 중앙아시아 거리에 온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경주시 성건동은 이제 ‘유라시아를 품은’ 고려인마을이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온 귀환 고려인동포와 그곳에 러시아어로 소통했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사람뿐 아니라 중국동포와 베트남 사람도 성건동 주민으로 살고 있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는 현수막도 러시아어, 베트남어, 한어(漢語) 세 가지 언어로 쓰여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