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함박마을②] 고려인 할머니와 용산고 ‘삼이회’ 합동 칠순잔치

함박마을에서 지난 6월 열린 칠순 잔치에 고려인과 용산고등학교 1970년 3학년 2반 졸업생 모임인 ‘삼이회’ 회원들이 함께 했다. 왼쪽부터 고가영, 공수영, 송재욱, 임영상, 마안나(카자흐스탄), 석이리나(러시아), 조병수(러시아), 백종한, 심윤수, 박봉수씨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삼이회(三利會) 6월 모임을 ‘칠순 잔치’로 인천 함박마을에서 고려인동포와 함께 가지면 어떨까? 삼이회는 1970년 서울 용산고등학교 졸업생들이 2017년 만든 3학년 2반 반창회 모임이다. 백종한(2017~18년), 심윤수(2019~20년)에 이어 필자가 2021년 반장을 맡았다.

인천 함박마을에서 ‘귀환’ 고려인동포를 섬겨온 박봉수 디아스포라연구소 소장께 연락했다. “사정이 가능한 백종한, 심윤수, 송재욱, 공수영, 임영상 등 퇴직자 5명과 고려인 연구자인 고가영 교수(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 등 총 6명이 참석하는데, 고려인문화원 강의실에서 ‘고려인동포가 만든 음식’으로 칠순을 함께 축하할 수 있을지?” 물으니 가능하다고 했다.

마침 칠순인 마안나(카자흐스탄)와 조병수(러시아) 할머니, 그리고 음식솜씨가 좋은 석이리나(러시아) 세분이 고려인의 잔치음식인 쁠롭(복음밥)과 고명이 가득한 고려 국수, 당근채 등을 손수 준비했다.

6월 3일 오전 11시부터 1시간 남짓 마을을 둘러보았다. 전선의 지중화(地中化)로 전봇대가 없고 간판도 잘 정비된 함박마을! 한때 학생과 외국인노동자가 많이 사는 슬럼화된 원룸촌이었지만, 지금은 고려인 상점만 50곳이 넘는 수도권의 대표적인 고려인 삶터가 되었다.

러시아어 레표시카(빵), 멜니차(방앗간), 차이하나(차를 마실 수도 있는 식당) 등 무슨 물건을 파는 곳인가를 알 수 있는 간판을 보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냄새가 물씬 풍긴다. ‘명소’로 떠오른 것이다.

12시 조금 지나 고려인문화원에 도착했다. 백종한 초대 반장이 준비한 ‘음식 비용’을 박봉수 소장께 전달했다. 이어서 인천 함박마을에 사는 귀환 고려인동포의 한국살이(박봉수 소장)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고려인동포 이야기(고가영 교수)를 들었다. ‘한국어를 상실해서’ 고려인동포의 삶을 직접 들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박봉수 디아스포라연구소 소장이 조병수(따찌아나), 마안나, 석이리나 동포 등이 함께 한 자리에서 함박마을 고려인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손주를 돌보러 오신 고려인동포 할머니의 국수가 아주 맛깔스러웠습니다. 단칸방에 월세로 거주하며, 자녀들이 인력시장에서 노동을 제공하며 살아야 하는데…말은 통하지 않고, 자녀교육 문제 등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책적으로 국가가 아젠다(agenda)로 잡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고 이분들이 한국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위 글은 <폴란드의 사계>, <올리브 오디세이> 수필집을 쓴 공수영 작가가 단톡방에 올린 것이다. 한국 내 이주민 집거지의 모습을 ①보고! 이주민의 음식을 ②먹고! 이주민의 한국살이를 ③듣고! ‘세 가지가 이로운’ 삼이회(三利會) 행사로 가졌는데. ‘가족 사랑’으로 대한민국에 들어왔고 형편만 가능하면 정착하고자 하는 귀환 동포 노인의 삶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2020년 3월 간행한 <고려인 디아스포라, 우즈베키스탄 아리랑요양원 10년의 기록>(조철현 저) 책을 최근 읽었다. 2010년 3월, 한국정부가 타슈켄트주 시온고 고려인마을에 세운 고려인을 위한 요양원이라 반갑고 궁금했다.

<고려인 디아스포라, 우즈베키스탄 아리랑요양원 10년의 기록>(조철현 저)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해 정착한 고려인사회는 고난의 삶만큼이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특별했다. 특히, 조상의 묘를 찾는 4월5일 한식(寒食)날은 철저히 지켰다.

따라서 돌봐줄 가족이 없는 ‘고려인 홀몸노인을 위한 아리랑요양원’은 운영자인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임직원뿐만 아니라 타슈켄트를 찾는 한국인 방문객과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모두에게 ‘가족’이 되었다.

‘자식 사랑’으로 한국에 온 고려인 노인들은 낮에 한국어를 배우거나 봉사활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한국 노인(?) 방문객이 자신들과 함께 칠순 잔치를 갖는다고 하자 너무 기뻐했다. 잔치 날에 나눠 먹는 쁠롭(볶음밥)에도 고기를 듬뿍 넣었다. 한 끼의 든든한 식사로 많은 고명이 올라가는 국수, 중앙아시아 현지인들도 좋아하는 당근채 김치도 넉넉히 준비했다. 우리가 맛있게 먹자 준비해온 비닐봉지에 남은 음식을 빠짐없이 싸주기까지 했다.

고려인 할머니가 손수 만든 당근채

조상의 나라에 다시 돌아온 ‘귀환’ 동포 노인에게 다행히 한국정부가 출신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재외동포(F4) 비자를 주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이에게는 요양센터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국어 소통이 어려운 고려인동포가 동네 노인정을 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고려인마을마다 동포를 위한 노인정도 필요하지만, 노인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건강하면, 젊은 고려인 부모들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어린 손자녀들도 한국생활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건강한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다. 중국동포타운도 마찬가지지만, 고려인마을의 노인복지를 위한 실태 조사와 실현 가능한 정책을 도출할 수 있는 연구도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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