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청소년의 숨터·꿈터 ‘안성 로뎀나무학교’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2022학년도 1학기 입학식 <사진제공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로뎀나무학교와 단국대 러시아학과 학생들이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가 지쳐있을 때 로뎀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며 원기를 회복했듯이, 한국살이에 힘든 고려인 청소년들에게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진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안성 고려인마을 탐방수업의 일환으로 단국대학교 러시아학 전공 학생들과 찾았다.

마침 점심식사를 마치고 동아리 활동시간이었다. 얼마 안 있어 학생 20여명이 로뎀나무학교의 25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읍내 탁구장 등으로 이동했다. 막 수업이 시작된 ‘영화감상’과 ‘K-POP’ 동아리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기념촬영을 가졌다. 이후 교무부장 선생님 안내로 학교 소개를 받고 강의실 등을 둘러보았다.

 ‘한국에서 아시아를 찾자’ 프로그램에 참여한 안성 로뎀나무학교 학생들. 뒷줄 오른쪽이 필자. 

한국정부는 ‘코리안드림’을 이루려 한국에 온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를 위해 2014년 4월 재외동포(F4) 비자, 2015년 4월 방문취업(H2) 비자를 소지한 동포들에게 가족동반을 허용했다. 그동안 이산가족으로 조부모나 친지의 도움을 받았던 자녀들이 동반비자(F1)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 집거지 주변의 초·중등학교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났다.

서울 대림동 대동초등학교와 가리봉동 영일초등학교 등 중국동포사회 집거지의 초등학교가 어려움에 부닥쳤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민족학교 대신 한족학교에 다닌 동포 자녀들이 한국어가 서툴거나 아예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로 들어온 것이다. (사)동북아평화연대의 지원 아래 2014년 6월 구로구 도서관에서 중국어와 한국어 이중언어로 가르치는 주말어울림학교가 개설되었다.

학부모들은 평일에도 자녀들을 돌봐달라고 요청했다. 흑룡강성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한 문민 교사가 동포자녀의 한국학교 적응을 돕고, 나아가 중국대학 진학도 준비할 수 있는 보습학원인 서울국제학원을 같은 해 9월 대림동에서 시작했다.

고려인동포 집거지인 안산시 선부동에도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2014년 선일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들어 폐교를 생각했는데, 2015년 여름이 지나자 고려인 학생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 학교는 폐교 위기를 넘겼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경기도교육청이 지원하는 국제다문화혁신학교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고려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다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로 돌아갈 수도 있다면서 경기도 지원으로 러시아 볼고그라드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바 있는 한국외대 임현숙 교사에게 ‘러시아학교’를 요청했다. 마침내 2015년 6월, 임현숙 선생은 자신의 자녀까지 안산으로 전학을 시키고 선부1동에 노아네러시아학원을 시작했다.

노아네러시아학원은 한국에서는 학원이지만,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20분까지 러시아학교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9학년과 11학년에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의 러시아 초·중등통합학교(쉬콜라)에 가서 학력평가시험을 치른 후에 해당 학교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이미 러시아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이 나왔다. 또한, 한국에 정착하는 부모와 살기 위해 외국인으로서 한국 대학교에 진학한 학생도 나왔다. 더 늘어날 전망이다.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의 학생은 대부분 고등학교 학생과 그 이상의 연령대다. 기숙사를 운영하기 때문에 인근 안성과 평택, 아산과 천안 등 경기남부와 충남북부 외에 멀리 인천에서도 오고 있다. 25세가 되어야 정식 취업이 가능한 고려인 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은 학교 공부뿐인데, 한국학교에도 갈 수 없었다. “제가 한국에 와서 가장 잘한 일은 소학섭 목사님을 만난 일이에요.” 로뎀나무학교 학생들의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살이가 막막한 고려인 청소년에게 ‘원기’를 주는 로뎀나무 그늘이 된 것이다.

2022년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는 학교설립 3년 만에 공식적으로 ‘대안학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경기도교육청이 로뎀나무학교에서 6개월 공부한 학생에게 ‘학적(學籍)’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학교에 다니던 많은 고려인 학생이 여러 사정으로 현지 학교에서 학적 관련 서류 등을 준비하지 못한 채 한국에 들어왔다. 당연히 서류 미비로 한국의 고등학교에 편입할 수도 없는 실정을 경기도교육청이 배려한 것이다.

이제 로뎀나무학교에서 공부한 고려인 학생은 한국 고등학교 편입학도 가능해졌다. 2007년 중도입국한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로 개교한 광주 새날학교는 2011년 광주시교육청으로부터 위탁형 다문화대안학교 인가를 받았다. 로뎀나무학교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전략)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를 둘러보면서, 우리 러시아학과 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고려인 청소년들과 교류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가르친다거나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우리가 평택역까지 오면 차로 마중을 나온다고 했다. (후략)” (단국대 러시아학과 18학번 오형석)

위는 로뎀나무학교를 방문한 단국대 오형석 군이 제출한 소감글의 일부이다. 2013년 3월 고교과정까지 개설한 광주 새날학교 졸업생들은 이미 해마다 전남대학교 등 국내 대학교에 진학하고 있다. 대학 진학보다 기술교육을 통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고자 설립한 로뎀나무학교도 이제 대학진학까지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시설과 교사인력, 그리고 운영예산이 더 필요해졌다.

귀환 고려인동포가 늘어나는 안성을 비롯한 경기남부, 천안·아산 등 충남북부의 지방정부와 러시아 전공자를 배출하는 대학들도 중도입국 고려인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원·협력 방안을 마련할 때다. 이 점에서 단국대학교 러시아학 전공과 로뎀나무학교는 각기 러시아어 언어실습· 한국 대학생활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좋은 협력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