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마을 안산 선부동②] ‘상전벽해’…땟골마을 도시재생 10년새 이렇게

선부2동 행정복지센터가 2020년 7월 땟골(고려인마을) 지역에 고려인의 민족정체성과 지역주민의 역사의식을 높이기 위해 세운 ‘마을소개 안내판’ <사진 임영상>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세계의 한민족’ 주말현장탐방 수업으로, 또 2019년에는 아시아발전재단 후원으로 안산시 선부동 고려인마을 등 수도권과 지방의 고려인마을을 찾은 바 있다.

2021년 7월, 동아노인복지연구소 일행과 다시 선부동 땟골 고려인마을을 찾았을 때 ‘마을소개 안내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선부2동 행정복지센터가 2019년 주민참여예산 청소년예산정책 제안대회를 통해 선정돼 세운 것이다. 안내판은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표기해 고려인과 지역주민 모두 쉽게 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고려인 소개와 정착 배경, 땟골 안내도 등이 들어 있었다.

서울 용산고 삼이회 회원들(왼쪽부터 김종부 백종한 심윤스 송재욱)이 10월 7일 이곳을 방문했다. 

지난 10월 7일 방문한 서울 용산고등학교 삼이회 친구들도 안내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선부동 땟골마을의 변화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2011년 4월 땟골 삼거리 지하방에서 고려인지원센터 (사)너머가 고려인야학을 시작할 때만 해도 땟골은 안산시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의 하나였다. 땟골이 ‘도시재생’의 현장이 된 것은 수년 동안 고려인동포를 지원해온 (사)너머를 비롯한 안산 시민단체들의 노력 덕분이다. 2012년 초기만 해도 땟골은 선주민(임대인)과 고려인 사이에 임대 기간과 언어소통 문제 등으로 생긴 오해와 갈등, 분리수거 등 갈등이 심각한 상태였다. 자칫 ‘소수민족 이주민’이 모여 사는 게토(ghetto)가 될 수도 있었다.

(사)너머는 2014년 5월, 안산시 평생학습관과 MOU를 체결하고 ‘땟골 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7월에는 지역의 선주민과 고려인들이 함께 하는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 알뜰시장인 ‘땟골 달시장’이 열렸다. 선주민과 고려인이 함께 참여하는 마을운영위원회가 구성되고 월1회 마을회의를 진행하면서 마을텃밭가꾸기, 바자회, 음식교류활동(한국 국수와 고려인 국시 등), 마을청소, 주민 대상 고려인 이주역사/ 마을공동체/ 협동조합 강의, 마을리더교육 등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2015년 7월, 땟골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인 고려인카페 우갈록이 경기도와 안산희망재단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우갈록은 단순한 커뮤니티 공간 이상이었다. 달시장으로 토대가 마련된 안산 고려인마을의 선주민과 이주민인 고려인 사이의 공존 노력이 확고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사회와 선주민들의 배려에 고려인들이 감사함으로 응답한 것이다.

고려인카페 우갈록 개소식(2015.7.18) 모습. <사진 너머 제공>

2016년 4월 5일 한류열풍사랑 후원으로 고려인카페 우갈록에서 개최된 한식寒食 명절 행사 또한 고려인의 마음을 묶어준 계기가 되었다. 한식은 소비에트 시기 고려인을 고려인답게 해준 고려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단순히 세시풍속 이상의 온 가족 행사였다.

한식행사 초대포스터. 

한국에 와서 한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한 고려인은 선주민이 차려준 한식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7년 이후, 한식 행사는 땟골의 고려인들이 서로 협력하여 치르고 있다.

2016년 10월, 안산시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고려인들의 지역사회 안정적 정착지원을 위해 고려인 밀집지역인 선부동 땟골 지역(단원구 지곡로 6길 37)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360㎡ 규모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고려인문화센터’를 준공했다.

현재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는 (사)너머가 위탁운영하고 있다. 지하 1층에는 고려인들의 이주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과 다목적 회의실, 지상 1층에는 사무실과 상담실, 소회의실, 지상 2층에는 안산시가 시행하는 다함께돌봄센터인 선부가치키움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만큼, 선부동 땟골 고려인마을에서 일하는 전임 및 파트타임 활동가들의 참여도 활발해지고 있다.

안산 고려인문화센터에 부착된 각종 안내판 <사진 임영상>

땟골에 고려인 상점들이 많아지고 또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거리가 깨끗해졌다. 아이 울음소리가 거의 끊어졌던 땟골에서 새 생명들이 태어나고 선부초등학교, 선일중학교를 다니는 고려인 학생들이 늘어났다. 안산의 가장 낙후지역 중의 하나인 땟골 고려인마을이 외형뿐만 아니라 삶의 온기가 느껴지는 동네로 도시재생이 이루어졌다.

리표시카(둥근빵)를 구워내는 탄드르(화덕). 

땟골 삼거리 한국인 수퍼마켓의 매출이 크게 늘어났고, 땟골을 찾는 외부 방문객들도 즐겨 찾는 식품점을 겸한 임페리아 카페, 러시아인이 즐겨 먹는 케이크인 토르트 맛으로 소문난 마리나 카페(인천 연수동에 지점까지 개설), 우즈벡 사람들의 주식인 리표시카(둥근빵)와 삼사(고기, 감자만두)를 즉석에서 구워 파는 탄드르(화덕)를 설치한 상점 등도 성업 중이다.

지난 7월 6일 동아노인복지연구소 김익기 소장과 안산시 신길동에 있는 하나요양원을 운영하는 윤정숙 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 땟골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했다. 고려인문화센터를 운영하는 (사)너머 김영숙 사무처장은 땟골에 고려인 어른이 많아졌으며, 요양보호사의 정기 방문을 받는 고려인 어른도 있다고 소개했다.

고려인문화센터 지하1층 고려인역사관을 찾은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김영숙 너머 사무처장, 윤정숙 동아노인복지연구소 연구위원, 김익기 연구소장(왼쪽부터)

자유 왕래가 가능한 재외동포(F-4)뿐만 아니라 최장 4년 10개월 체류가 가능한 방문취업(H-2) 비자를 받은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는 이미 한국에 정착한 귀환동포이다. 따라서 건강보험 가입자에 한해서 장기요양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요양시설 이용 이전에 고려인 어른들도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들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중국에서 살다가 귀환한 중국동포 노인들도 한국 노인들과 어울리기 어렵다. 이미 서울과 수원, 성남 등 전국의 중국동포타운 여러 곳에 중국동포 경로당이 운영되고 있다. 안산시 원곡동에도 세 곳 있다. 따라서 한국어 소통조차 어려운 고려인동포를 위한 경로당이 안산시 선부동을 비롯한 전국의 고려인마을에 필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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