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고려인마을④] 왜 그곳에 가봐야 하나?

용산고등학교 21회 졸업 52주년 기념 광주고려인마을 방문 (오른쪽 뒷줄 끝이 이천영 목사)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코로나19로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제주여행이 졸업 52주년 남도(목포, 진도, 강진) 여행으로 변경되었다. 칠순을 넘긴 친구들과 가족들이 광주고려인마을을 가볼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만, 리무진 버스 1대에 탈 27명이 모여야 했다. 귀경길 강진에서 풍성한 점심식사를 즐기고 여유 있게 상경하는 대신에, 일정을 재촉해야 하고 광주고려인마을 점심식사도 서둘러 먹어야 하는데… 다행히(?) 부부 11팀과 싱글 5인 등 27명이 함께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광주고려인마을을 가봐야 하지? 고려인마을이 전국에 15개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고려인마을이 생겼지? 강진 다산초당 관광을 마치고 한 시간 이상 광주고려인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버스 안에서 용산고등학교 21회 동창과 가족들에게 빠른 속도로 소개했다. 1860년대 초반 이후 살길을 찾아, 또 1905년 이후 국권 회복과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고려인동포사회.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이후 한국어를 상실한 채 살다가 1991년 소련의 해체와 한소(1990)·한중앙아시아(1992) 수교 이후 ‘코리안 드림’을 이루고자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이야기까지.

재외동포이지만, 법적으로 외국인인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들이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문취업(H-2) 비자 제도가 2007년 시행되면서 한국어 소통에 어려움이 없는 중국동포사회는 다양한 자조단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고려인동포는 한국인 활동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2009년 광주고려인마을에 고려인센터가 생기고 2010년 한글교실도 열었다. 광주광역시는 2013년 지자체 최초로 고려인 주민 지원조례를 제정하고, 광주광역시와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협약을 맺고 고려인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을 전개하여 2015년 고려인종합지원센터를 확대 개소했다.

광주고려인마을은 ‘귀환’ 고려인동포를 위한 ‘일자리·주거·의료·돌봄체계’를 하나하나 갖추어 나갔다. 광주고려인마을은 스스로 ‘역사마을 1번지’라고 한다. 대단한 자부심이다. 제3자가 보기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고려인동포의 지난 삶을 쉽게 알게 해주는 월곡고려인문화관이 자부심의 근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강진을 떠난 버스가 어느 사이에 동광주 톨게이트를 지났다. 지난 20여 년 광주고려인마을을 일궈온 이천영 목사에게 잠시 후에 도착할 것을 알렸다. 고려가족카페 3호점(고려가족식당)에 고려인의 일상음식인 고려국수와 샤실릭(양꼬치구이), 샐러드와 고려인도 주식으로 먹는 우즈베키스탄 레표시카(빵), 그리고 고려인이 만든 당근김치인 마르코프차도 충분히 준비해달라고 주문한 터였다. 오후 1시 조금 지나 식당에 도착했다. 식사를 마치고 마을투어에 나섰다. 광주고려인마을은 앞으로 1000만 방문객을 맞이한다는 비전 아래 이미 전문 마을해설사를 양성했지만, 이천영 목사가 직접 안내했다.

먼저, 고려인마을 주요 행사가 열리는 홍범도공원(구명 다모아어린이공원)으로 갔다. 고려인마을은 지역의 마을주민과 공동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 1주년과 광복 제77주년인 지난 8.15일 광복절을 맞아 장군의 흉상 제막식도 가졌다. 1920년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의 주역인 홍범도 장군도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되었고 고려극장의 수위로 생애 말년을 보냈는데, 생존 시에도 그는 고려인사회의 우상이었다. 광주고려인마을이 ‘역사마을 1번지’의 자존심에 걸맞게 한발 앞서 홍범도 장군을 모신 것이다.

홍범도 장군 동상(일행들 뒤에 흉상이 보인다) 앞에서.

다음으로 고려인종합지원센터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GBS고려방송에 들렸다. 2016년 마을방송으로 출발해 2022년 3월 지상파 라디오방송으로 승격된 고려방송은 한국어(70%)와 러시아어(30%)로 진행되며 주파수는 93.5MHz로 앱처럼 홈페이지(http://gbsfm.co.kr)에 접속하면 곧바로 청취할 수 있다. 또, 날마다 광주고려인마을 소식을 방문객들에게 카톡과 문자로 전달하고 있다. 아래는 11월 11일 아침에 고려방송 뉴스를 받은 현영석 한남대 명예교수가 필자에게 보낸 카톡메시지이다.

“광주고려인마을 방문 좋았습니다. 많은 조직과 시설물 설치, 유지, 경영 능력이 돋보임. 이런 것들이 모두 후원금으로 만들어지고 또 운영되나요? SNS, 방송, 출판, 홍보 능력이 매우 우수. 오늘 아침에 받은 <고려방송>, 특히 FM 방송 홈페이지까지 직접 청취. SNS 활용 동포지원 활동은 세계적인 우수 사례일 듯. 세계에 잘 알리면 좋겠어요. 해외언론 및 학회지 소개 등.”

고려인종합지원센터 앞에서

이어 이번 방문의 하이라이트인 월곡고려인문화관 방문에 앞서, 매주 화요일 운영되는 고려인광주진료소를 찾았다. 한방과 치과까지 고단한 삶을 사는 고려인동포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베푸는 광주시 의사들이 대단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월곡고려인문화관인데, 전시실이 비좁아 두 팀으로 나누어 한팀은 1층 상설전시관, 다른 한팀은 2층 기획전시실부터 보기로 했다. 1층 상설전시관 앞에서 시청한 고려아리랑은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 관장이 작곡하고 카자흐스탄 재즈 1세대 음악가이면서 고려극장 예술감독과 지휘자를 역임한 한 야코프가 작곡했다. 한민족은 가는 곳마다 아리랑을 불렀는데, 고려아리랑은 이제 ‘귀환’ 고려인동포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도 함께 애창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극장 90주년 특별전이 열리는 기획전시실에서는 전남대를 졸업하자마자 카자흐스탄에 가서 25년 동안 고려인을 위한 한글교육과 <고려일보> 기자로 헌신한 시인 김병학 관장이 직접 안내해주었다.

고려인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안산 고려인마을에도 고려인역사관이 있다. 그러나 광주 월곡고려인문화관은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상설전시관 외에 정기적으로 특별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전국의 고려인마을마다 고려인의 삶과 문화를 알려주는 자료가 전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려인동포들도 자신의 뿌리, 역사를 잘 모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지역의 한국인 주민과 외부 방문자의 고려인동포 이해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주 성건동 고려인마을은 고려인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고려인이랑 카페 내부에 고려인의 이주도 및 고려인 역사인물 등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인천 고려인마을은 도시재생 사업 예산으로 고려인역사관을 세울 계획이다. 김해 동상동 일원의 고려인마을도 김해동포센터가 직영하는 식당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준비하고 있다. 지역의 고려인마을마다 독창적인 전시를 기획할 수 있겠으나. 원본 자료를 소장한 광주고려인마을 월곡고려인문화관이 전시 자료(콘텐츠)를 제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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