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고려인마을②] 포승읍 도곡리, 중국·러시아·CIS유라시아 잇는 ‘동포마을’로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지난 13일 오후 어린이공원에서 놀다 부상한 데니스(8) 어린이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간 후, 다시 마을투어에 나섰다. 박준우 이장이 먼저 안내한 곳은 2022년 3월 문을 연 벨리시모 디저트 카페였다. 자랑하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카페의 여주인 주타티아나는 포승 고려인마을 협동조합 감사로 일하는데, 모녀 3대가 통역봉사를 한다고 자랑한다. 마침 함께 사는 시어머니와 이웃 친정 동생 집에 사는 친정어머니 모두 가게를 돕고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딸 알리샤도 가게로 들어왔다. 함께 사진을 찍었는데, 시어머니는 부끄럽다고 끝내 사양했다.
타티아나 가족이 한국에 온 것은 2011년. 남편이 먼저 왔고 몇 달 후에 그녀도 왔다. 부부는 5년 전에 포승으로 들어왔다. 고려말(한국어)을 잊지 않고 사용하던 부모님 덕분에 타티아나는 한국어도 잘한다. 큰딸 알리샤도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동네 어린이 통역사다.
3대가 통역 봉사자이니 박준우 이장이 자랑할 만했다. 채예진 대한고려인협회 부회장은 미디어사람 채널 ‘고려사람 이야기’ 유튜브에 소개하려고 타티아나와 인터뷰도 했다. 주문한 홍차와 커피에다 직접 만든 쿠키도 가져왔다.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다음에 포승에 올 때는 벨리시모에서 맛있는 고려인 국수도 먹기로 했다.
마을을 돌다 보니 라두가(마트)와 차이코프스키(빵집) 등 러시아어 간판이 연이어 나타난다.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동포휴게실도 보이고, 고려인이 운영하는 올리바(꽃집)와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양꼬치 집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포승읍 도곡리는 중국동포타운과 고려인마을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박준우 이장은 “중국동포 상점이 점차 줄어들고 대신에 고려인동포 상점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평택시 포승읍 도곡리는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과 닮은 데가 있다. 한국의 대표 다문화도시 안산의 원곡동은 ‘다문화특구마을’이자 중국동포타운이다. 그런데 근래 원곡동의 중국동포가 이웃 빌라촌이나 아파트로 이사하고 그 자리에 고려인동포가 들어오고 있다.
포승의 중국동포도 자녀교육 등 더 좋은 삶의 여건을 찾아 안중읍 등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있다. 평택시와 시민단체가 더 노력하여 포승 도곡리 이주민 집거지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나아가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가 같은 ‘귀환 동포’로 서로 협력하면서 포승의 동포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1860년대 중반 조선의 함경도가 살기 어려워 두만강을 건넌 한인들. 그래서 중국동포의 연변 말과 고려인동포의 고려 말은 어휘와 억양이 거의 비슷하다. 함경도 육진 방언이 뿌리이기 때문이다.
왼쪽 중국으로 간 사람은 조선족이 되고 바로 위 러시아로 간 사람은 고려인이 되었다. 중국 용정의 명동촌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은 독립운동가들이 빈번히 왕래하던 곳이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伊藤博文) 저격에 성공한 안중근은 연해주의 고려인 지도자 최재형의 도움으로 거사를 치를 수 있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용정에서는 3월 13일,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3월 17일 반일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1920년 연변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러시아에 살다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2021년 8월 15일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고국으로 돌아와 지금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포승에서 중국동포와 고려인동포는 수년 동안 어우러져 살았다. 이제 제2의 고향인 포승에서 함께 삼일절 행사도 기념하고 비슷하면서도 달라진 음식문화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안산 원곡동은 ‘양꼬치 축제’도 함께 하고 있다. 귀환동포총연합회(중국)와 대한고려인협회도 평택항을 품은 포승읍 도곡리가 중국과 러시아·CIS 유라시아를 잇는 ‘동포마을’로 새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합력할 수 있으면 좋겠다. 평택시에만 맡기지 말고.